일본 체류기 – 요코하마 편 [3]

 땀흘리며 열심히 올라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사실 얼마 올라가지도 않아 정상이라는 표시가 나오는 바람에 그런 고통도 별로 계속 되지는 않았다. ‘항구가 보이는 언덕’ 이라면 깎아지는 절벽과 그 배경으로 펼쳐지는 절경들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 스코틀랜드의 해안이나 쉬리에서의 제주도의 절경은 접어두고라도, 센프란시스코나 시드니처럼 항구로 유명한 도시의 경치 만큼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올라가보니 말그대로 항구가 있을 뿐. 저 멀리로 보이는 베이 브릿지라는 유명한 다리만 있을 뿐 영 볼 것이 없는 상황. 오히려 랜드마크 타워의 전망대나 대관람차에서 보는 경치가 수십배 멋지겠다.

 

날씨마저 우중충해서 멀리 보이지도 않는다.

 

 요코하마가 원래 산업도시로 발전해서 그런지, 요즘 개발된 미나토미라이 지구 외의 항구 부분은 이러한 공장과 컨테이너 박스들을 수출하기 위한 부두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이 ‘항구가 보이는 언덕’ 오른쪽으로는 끝도 없는 이런 부두들이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언덕에 올라온 것은 단지 이 광경만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이 언덕에는 과거 개화기 시절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외국인들이 지은 건축물과 그들이 남긴 흔적, 그리고 그들의 묘지까지 넓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이국적인 모습을 찾아서 이 곳 까지 올라온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은 국제 불꽃 놀이 축제로 많은 관광객들이 몰릴 것을 예상하고 그들이 이 언덕까지 올라와서 불꽃놀이를 볼 것을 걱정한 나머지 많은 건물들이 개방을 안한 것. 즉, 언덕위에서 불꽃놀이가 잘 보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건물들은 모두 폐쇄를 했더라.

 

전형적인 서양식 정원이다.

 

 아쉬운대로 그나마 개방 한 것들만 모두 둘러보기로 하고, 건물들은 둘째치고라도 서양식 정원을 쭉 둘러보기로 했다. 지그재그로 꽤나 멋을 부린 정원. 이러한 서양식 건물들의 대다수는 단지 전시용으로 내버려둔 것이 아니라 보수를 거듭해 실제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으로 만들어서 주거지로 활용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중의 몇몇, 대사관이라던가 공공기관으로 활용되던 것들은 정부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개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좋은 점은 이러한 건물들이 모두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는 점인데 자유롭게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보거나 창밖을 내다보거나 나무계단을 올라가보거나 하는 일이 가능했다. 나도 들어가서 유일하게 셀프사진을 찍고 놀고 한 곳이 이러한 집들. 아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적당히 손대고 만지면서 놀 수 있었다;

 

옛 집주인들의 무덤.

 

 우리나라의 무덤은 봉분이 있고, 상석이 있고 좌우로 커다란 날개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있고 꽤나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기 마련인데, 서양이나 일본식의 무덤은 딱 사람하나 누울만한 공간에 직사각형으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져 있다. 또 거주지와 그리 거리를 두지 않아서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조그만 공원묘지가 조성되어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야마노테센을 타고 돌다가 철로 옆으로 조성된 묘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서양과 일본이 비슷하고 우리나라가 크게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유교 문화권의 특징인 것인가. 위 사진은 서양식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무덤이다. 항구에 배가 떠나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기위해 높은 곳에 집을 짓고 산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곳에서 죽어서 타향에 묻힌 것이다. 무덤의 규모로 미루어 보건데 상당 수의 외국인 들이 이 곳에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침 공원묘지가 폐장할 시간이어서 오래 들어가 있지는 못하고 바로 나와야 했다.

 

지진으로 무너진 집터.

 

 근세에 들어서 최대 규모라는 관동 대지진은 이 곳까지 영향을 끼쳐 쑥대밭을 만들어 놨나보다. 다수의 집들이 파괴되었는데 대부분 복구되었으나 위의 집은 주인의 사망으로 복구되지 못하고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세월의 풍파로 무너진 부분도 있겠으나, 지진이 얼마나 심했으면 기초만 남기고 집이 저 모양이 되었을까 -ㅅ-; 일본만큼 지진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민족도 없을 것 같다. ‘일본 침몰’ 같은 영화가 그러한 내제된 두려움을 건드려서 흥행하고 원작 소설도 꾸준히 인기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야 지진을 실제 체험할 기회가 별로 없지만, 일본은 툭하면 약한 지진던 발생해서 TV를 보다보면 어느 지방 지진 발생 같은 긴급 메시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있었던 5주간은 별다른 지진은 없었던 듯. 묘한 아쉬움이랄까; 다행스러운 일인건가.

 

위의 정원과 묘하게 비슷하다.

 

 가운데로 물이 흐르고, 양 옆으로 길이 있고. 비슷한 구성의 정원 모양이 수도없이 발견되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다. 저 위의 건물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것 처럼 보여서 뭘까하고 올라가봤더니, 실외 수영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날도 더운데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서 정말 수영복을 구입해서라도 수영을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주말에 여름인데도 수영장에는 어린아이들 몇몇만 놀고 있을 뿐 사람이 전혀 없었는데. 원래 한산한 것인지 오늘이 불꽃놀이 축제라 다 그걸 보러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정말 평소에도 이런 모습이라면 부럽다 -ㅅ- 꽤 괜찮은 시설과 규모의 수영장이 이렇게 여유 있다니. 일본이 인구가 많지만, 그 만큼 꾸준하게 발전시켜온 문화 시설 같은 것은 정말 부러운 일이다. 오사카에서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일주일을 머물면서 다양한 레파토리를 연주할 계획이라는 것을 듣고 눈물나게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달랑 한번 연주. 그것도 음향효과라고는 전혀 고려될 수도 없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모아놓고 왠 클래식 소품만 연주하다가 가버리니 말이다. 그것도 엄청난 가격에.

 

작은 유럽을 벗어나면 작은 중국이 기다린다.

 

 건물과 묘지, 정원들이 다소 지겨워질 무렵해서 언덕을 내려오면 바로 아래는 중화거리. 차이나타운이다. 화교의 손길은 항구도시라면 어디를 막론하고 뻗어있는데 이 곳도 마찬가지. 각종 만두를 파는 상점과 중국 음식점. 중국 의상 가게. 중국의 절. 작은 중국이다. 꽤 다양한 물품들을 말고 있어서 구경거리도 꽤 있다. 우리나라 인천의 차이나타운은 왠지 짜장면과 탕수육을 팔기 위한 거리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이 곳도 뭔가 팔고 있는 것은 같지만 살만한 것들이 꽤 보였다. 우리나라 양반김 같은 것도 잔뜩 가져다 놓고 팔던데.. 그걸 왜 차이나타운에서; 지나다니다 보면 몇몇 가게 앞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뭔가 사 먹는 모습이 눈에 띤다. 돈에 여유가 있다면 먹었을 만큼 맛있어 보이던데.. 아쉽다. 뭐, 나중에 미국에서 중식을 못먹은 아쉬움을 채웠지만 말이다. 결국 나는 맥도널드에서 빅맥으로 늦은 점심을 때워야 했다. 맥도널드도 아수라장이던데 이렇게 사람 많은 맥도널드는 평생 못볼 거라고 생각한 기억이 있다. 줄 서있으면 주문 받는 사람이 와서 물어보고 나중에 카운터에서 번호를 불러서 찾아가는 변칙 시스템으로 팔더라. 일본에서 셋트메뉴를 시켰다면 꼭 한마디 해주자. “캐찹도 주세요.” 안그러면 얘네는 안넣어준다.

 

이제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햄버거로 주린배를 달래고 시간을 보니 5시는 넘었고, 하지만 아직까지 불꽃놀이까지는 꽤나 시간이 남아있어서 그 시간은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활용해보기로 했다. 일단 아까의 야마시타 공원으로 가서 자리를 찾아봤으나.. 이건 뭐; 입장이 불가능한 상황. 입구에서 기가 질려서 포기하고 미나토미라이 지구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많은 구역이 이미 입장이 통제된 상황. 얘네는 이런 다수의 인파를 한두번 통솔해 본것이 아닌듯, 사람이 많이 몰리는 구역을 잘 알고 있고, 어떤 길을 통제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다소 불편했지만 확실히 교통의 흐름은 막히지 않고 있는 상황. 결국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서야 적당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선택한 곳은 신호등 컨트롤러 위. 이미 사람들로 앞이 가득차 있는 상황에서 돗자리도 없고, 높은 곳에서 봐야겠고 해서 애라 모르겠다 하고 소화전같이 생긴 그녀석 위에 올라가서 봤다. 뭐, 꽤나 편한한 자리였다. 왠 흑인들이 돌아다니면서 돗자리 2000엔씩에 팔고 있던데 그런거 사서 땅바닥에 앉느니, 옷이 좀 더러워져도 높은 곳이 훨 낫지.

 

요코하마의 불꽃놀이는 예전에 올린 포스트에서 미약하나마 볼 수 있다.

http://www.linus.pe.kr/home/tt/entry/요코하마-불꽃놀이-2006-영상

 

 불꽃놀이를 보면 늘 걱정되는 것이 “피날래를 볼 것이냐 말 것이냐.” 불꽃놀이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지만 피날레를 보면 한꺼번에 몰리는 사람들 때문에 역까지 걸어가기도 힘들어질테고, 안보고 미리 가자니 아쉽고.. 요코하마 때에는 끝까지 보는 것을 택했다. 오사카에서는 중간에 빠져나왔지만. 다행히 경찰관들이 아주 잘 통제를 해줘서 역까지는 별 무리 없이 갈 수 있었다. 역까지의 길 중간에 경찰들을 배치하고 커다란 판의 앞뒷면에 “멈추세요/걸어가세요”를 각각 적어서 호루라기 신호에 맞춰서 뒤집으면서 사람들의 흐름을 통제하고 있었다. 역시 굳 아이디어. 역에서 집까지 가는 전철이 그야말로 초만원이어서 불쌍한 모습으로 왔지만 뭐 그래도 불꽃놀이를 본 다음의 마음은 기쁨으로 들떠 있는 것이다.

 

 일요일은 조심스러웠던 것이 다음날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데 혹시나 지각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일찍 귀가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만약, 그러한 제한만 없었다면 야경을 충분히 구경하고 싶었을 만큼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도시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일본은 이제 당분간 가고 싶지 않아.” 하고 비행기를 타고 떠나올때 생각했지만 요코하마를 생각하면 미련이 남는다.

 

– Fini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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