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구마모토, 히로시마

구마모토 성을 보러 가기로 한다. 일본 여행을 역사와 유물을 중심으로 다니면 성, 절, 신사, 정원, 성, 절, 신사, 정원을 반복하게 된다. 이럴 때는 색다른 볼거리를 찾게 되는데 네이버 같은 대한민국 포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대다수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광고 글로 의심된다. 인플루언서라는 분들도 공짜로 인플루언싱을 해주진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구글 맵에서 ‘sightseeing spot’을 검색한다. 경험상 한국인이 덜 가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볼거리들을 추천해주곤 한다.

구마모토 성 까지는 나가사키에서도 봤던 오래된 노면 전차를 타고 간다. 노면 전차를 아직도 생산하고 있을까? 전기차 시대에 아마 아닐 것이다. 일본의 구형 기차들은 단종되면 부품이 다시 생산되지 않아 오래된 기차에서 여분의 부품을 빼내어 돌려 막기를 한다고 한다. 이 것이 큰 사고의 원인이 된 적이 있다고도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오래된 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비쌀 지경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면 전차란 녀석은 승하차도 불편하고, 탑승 인원도 적고, 정해진 노선만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한 대중교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이 휘어지는 저상 전기 버스 등 탈 것이 훨씬 나은 대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나 저기나 뭔가를 바꾼다는 것은 여기나 저기나 쉽지 않겠지.

노면 전차는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양쪽에 마주 앉는 곳이 있고, 가운데 두 명 정도가 설 공간이 있다. 사람이 많을 때는 가방을 앞으로 맨다던지, 내릴 곳 한 정거장 전에 앞 쪽으로 이동한다던지 하는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역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혼란스럽지 않고 모두가 자기의 다음 위치를 알고 있는 듯 움직인다. 나는 그런 규칙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니까 적당히 자리를 띄어 앉는다. 폭이 좁아 마주 앉은 사람은 조금 과장해서 쎄쎄쎄를 할 수 있어 보인다. 시선이 자주 마주쳐서 민망하기도 하다. 다행히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아 모두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구마모토 성은 2016년의 지진으로 많은 곳이 무너져내리고 현재도 보수 공사 중이다. 성벽이나 천수, 건물 등이 무너져 내렸는데 이를 모두 보수하고 개관 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성 입구 위로 거대한 공중 통로를 설치하고 관광객들은 그 위로 돌아다니게 하였다. 추가 붕괴할 수 있는 위험한 곳에 관광객의 접근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인 것 같지만 굽이굽이 걷지 않아도 되고 성벽을 위쪽에서 조망하기에는 이쪽이 더 나은 듯 했다. 무너진 곳은 임시로 콘크리트를 부어 추가 붕괴를 막아 놓았는데, 아마 하나 씩 복원해 나가지 않을까 싶고 복원 공사를 위한 기부를 받고 있었다. 위 사진은 옛 벽의 경사가 너무 완만하여, 급경사로 만들기 위한 추가 공사를 한 흔적이라고 한다.

세계의 오래된 랜드마크 건축물을 보면 그 당시 사회 전체가 어떤 것에 매진 했는지 상상이 된다. 피렌체의 두모오 성당이나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간 돈으로 적어도 수년간의 빈민을 구휼 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시 사람들은 대신 위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선택을 했다. 여기 동원된 수만명의 사람들은 단순히 누가 시켜서, 혹은 돈을 받기 위해 이러한 건축물을 만든 것이 아닌 것이다. 그 들은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여 현생 혹은 내세를 살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돌을 깎고 쌓았던 것 같다. 구마모토 성벽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성을 쌓은 것은 무사 계급의 사무라이들이 아니라 그들이 부리고 있던 양민들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돌을 깎고 나르고 쌓았던 것은 본인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다. 무사 계급의 유지나 그들에 대한 복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시대는 전쟁이 잦고, 패배의 댓가는 잔혹 했을 것이다.

구마모토 성의 내부는 옛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두번이나 방문했던 오사카성과 마찬가지로 겉모습은 그럴 싸 했지만 내부는 박물관 같은 모습이다. 스마트폰 앱을 다운 받으면 한국어 안내도 지원해주고 있었다. 안내 내용은 영어나 일본어에 비하면 훨씬 부실 했다. 구마모토까지 방문하는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에 당연한 일이겠다. 내가 방문한 성 중에는 히메지 성과 마츠모토 성이 내부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성을 관리하는 일도 꽤나 힘든 일인지 기둥을 해체했다 다시 새 것으로 교체하고 복원하는 대공사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성을 축조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선봉에 서서 한국을 침략했고 울산왜성 등 한국에서도 성을 쌓았다. 이때 얻었던 여러 차례의 축조 경험을 집약한 구마모토 성은 일본 성 중에서도 최고의 기술과 견고함을 자랑한다고 한다. 실제 메이지 유신 때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당시 최신의 무기로도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덧붙여 정유재란에서 패배 후 퇴각할 때 울산에서 많은 한국인 포로들을 끌고 갔는데, 그들이 구마모토에 정착한 울산정(울산마치)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도 역사적인 왜인촌이 있을까? 동부이촌동이 그것일까?

구마모토 성을 둘러보고 노면전차에 몸을 실어 다시 역으로 향했다. 밤에 잠들때 마다 욱신거리는 다리 때문에 내일은 더 편한 일정으로 다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침에 다리의 통증이 없어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오늘도 히로시마로 가서 걸어다녀야 할 일정이 잔뜩이다. 시간이 없고 마음이 급하다. 구마모토 역 안에 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10시와 11시 사이,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명품 가방을 든 날씬하고 세련된 수트 옷차림의 중년 아주머니와 둘이 식사를 했다. 기업의 임원처럼 보이는 이런 분도 요시노야에서 토핑이 없는 규동을 먹는다.

구마모토 역 대합실에서 잠시 대기했다.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 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간 걸까? 50세 이상 이용가능한 대합실과 50세 이하 용 대합실이 나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1분도 늦지 않게 도착한 신칸센에 올라 히로시마까지 달려간다. 남쪽으로 내려온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 시모노세키 해협을 지하로 뚫고 혼슈 섬으로 진입한다. 신칸센을 타면 상상했던 물리적 거리와 이를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 개념에 혼란이 생긴다. 서울-부산 간 거리는 되어 보인다. 사악한 가격이지만 약 한시간 40분이면 히로시마에 닿을 수 있다.

히로시마에 내리면 규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규슈는 동양인 관광객, 특히 한국과 중국인이 대다수였다면, 히로시마나 오사카, 도쿄는 서양 관광객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 신칸센 1등석 그린샤의 요금은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기본적인 신칸센 요금이 우리나라의 KTX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고 느끼는데, 여기서 1등석은 30% 정도는 더 내야 한다. 오늘 아침 달려온 구마모토-히로시마 구간도 15만원은 족히 든다. 신칸엔은 사실상 비행기와 경쟁한다. 따라서 신칸센 1등석은 기업 고위직이나 대표,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업무를 위해 탄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나 같은 배낭에 반바지, 샌들 차림의 여행객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히로시마 구간 부터는 가족 동반의 서양 여행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아마 모두들 JR패스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리라.

숙소는 Guesthouse akicafe inn라는 삼만원 남짓의 도미토리 룸을 예약했다. 신칸센은 그린샤를 타지만, 숙소는 최하급이다. 시설이 좋지 않고 비싸더라도 많이 걸을 수가 없기에 최대한 역 근처의 숙소를 잡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떠나야했기 때문에 역에서 먼 숙소를 잡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오로지 위치만 보고 선택한 숙소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 최악의 숙소가 되고 말았다. 아직 체크인은 이른 시간이라 배낭을 숙소에 두고 서둘러 히로시마 평화기념 박물관으로 향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라 역에서 가는 버스들이 잘 되어 있고 미리 만들어 놓은 파스모 패스를 편리하게 이용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난 곳이다. 특히 절반 이상은 서양 사람인데,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을 찾아오고 있다. 누구는 승리를 기념하려고, 누구는 단순 호기심으로 찾아 왔을 것 같다. 여기서 모두들 원자폭탄의 피해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껴보면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들은 어린이 원폭 피해자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며 눈물 짓고는 한다. 폭탄은 군인만 골라서 살해하지 않는다.

나가사키보다 규모는 훨씬 크고 둘러볼 전시품도 많았지만, 나가사키 전시관보다 낫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아마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전시를 기획한 사람의 메시지보다는 더 직접적인 참상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싶다면 나가사키 쪽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주로 한국인은 어떤 피해를 입었고 왜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여 관련 전시물이 있다면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전시관에서 유명한 원폭 돔으로 가는길의 왼쪽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있으니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위령비 앞에 생수를 놓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피폭시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는 후일담을 듣고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주기 위한 기원인 것 같다.

애매한 시간에 먹은 요시노야 김치 규동 밖에 먹은 것이 없어서, 히로시마풍의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보고자 했다. 멀리 걸어갈 수 없어 근처의 나가타야 라는 곳을 검색해서 들어간다. 의외로 혼자 온 사람은 없고 일본인도 별로 없어 보인다. 혼자 왔다고 말하니 카운터 석으로 안내해주었다. 철판에서 직접 만들어 주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생각보다 만드는 시간이 꽤 걸리고 다 만들어 지면 이제 먹어도 된다고 말해준다. 하루종일 배고픈채 돌아다녀서 맥주 한잔과 먹는 오코노미야키는 정말 맛있었다. 흔히 한국이나 오사카에서 먹는 오코노미야키는 양배추와 밀가루 반죽? 등으로 베이스를 만드는데 여기는 우동이나 소바 중 하나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혼자 먹기에는 정말 많아서 여자 셋이 온 분이면 두 개만 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어로 주문하면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못한다고 생각하고 직원끼리 방심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 완성된 오코노미야키를 건네어 주면서 피자를 떠 먹을 수 있는 것 같은 조그만 철제 스푼?을 주는 것을 깜빡했다. 나는 그런 것을 주는 줄도 모르고, 공용 철판에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있었더니, 상급자가 내가 들리도록 ‘저사람 저러고 먹고 있잖아.’ 라고 질책하니 직원이 나에게 스푼을 가져다 주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이른 저녁 혹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원폭돔을 보러 간다. 원폭이 폭발한 곳은 원폭돔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곳 상공이라고 한다. 따라서 주면의 목조 건물들은 즉시 폭풍에 의해 다 무너졌지만 당시 유일한 석조 건물 (상공회의소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었던 이 건물의 골조는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이후 이를 보존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보존하기로 결정한 이후로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많은 보수를 했다. 덕분에 모든 것을 쓸어버린 히로시마 원폭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공중에서 이놀라 게이가 유명하다면, 지상에서는 원폭돔이다.

원폭 돔에서 다시 히로시마 성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오전에 구마모토 성을 본지라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다다르니 이미 관람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처럼 바삐 걸어온 다른 관광객들도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돌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부 관람은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걸어왔지만 그래도 코 앞에서 입장 불가라고 통보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히로시마 성은 전쟁 후에도 미군이 임시로 주둔 했던 흔적들이 있다. 배낭 여행자만 둘러볼 수 있는 성 구석구석을 둘러보고는 숙소로 향했다.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고, 하교하는 고등학생과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숙소 까지는 이 길을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다. 걸어갈 체력이 남았으니 걸어가기로 한다.

생각보다 기진맥진해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더 이상 무엇을 먹을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으므로 오는 길에 이제는 익숙하게 생수 한 병과 빵 하나를 샀다. 영어에 능숙한 아가씨가 체크인을 해주었다. 배게와 침대 시트를 나한테 준다. 내가 직접 씌워서 쓰라고 했다. 잠시 나와서 방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굳이 왜 직접 보여주려하는지 의아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도미토리 룸은 옆 건물 3층에 있다. 체크인을 할 수 있는 까페 건물을 나와 옆 건물로 아가씨를 따라 들어갔다. 3층이니 엘레베이터는 없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집이 무겁거나 크다면 쉽지 않겠다. 올라가서 발견한 좁은 방에는 어찌나 많은 침대를 넣었는지, 두 사람이 마주보고 지날 공간이 없다. 그 정도가 아니라 왼쪽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와 오른쪽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나란히 마주볼 공간이 없어 서로 교차하며 사다리를 설치해놨다. 내가 배정 받은 가장 안쪽 침대의 2층으로 가기 위해 온전히 바닥을 걸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사다리를 장애물 넘듯이 넘어서 건너가야 했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퀴퀴한 땀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내 침대 옆에 이 방의 유일한 창문이 있고 조그만 선풍기를 달아서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 그래, 이 것이 내가 원한 최저 수준의 여행이다.

히로시마는 외국인 배낭여행객이 많아 이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커튼이 처진 침대가 많았다. (사람이 쓰고 있다는 뜻) 나는 내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미리 짐을 싸고, 씻고, 그리고 방에 더 땀 냄새가 가득차기 전에 잠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씻고, 빵을 하나 먹고 내일 출발해야 하는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고, 입을 옷을 발 아래, 아니 옆에 개어 놓고 (워낙 침대가 작아 내가 누우면 발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다) 잠들었다. 오늘은 지옥불 위에서도 잠들 수 있을 지경이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구마모토, 아소산

4일차 여행, 이제 규슈의 남쪽으로 내려간다. 짧은 일정 때문에 규슈 일주 같은 계획은 다음으로 미루고 북규슈 레일패스로 갈 수 있는 가장 남쪽 도시인 구마모토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구마모토에서는 구마모토 성과 스이젠지만 구경하기로 하고, 오전에는 아소산을 일정에 넣었다. 하카타역에서 구마모토행 신칸센을 타는 것으로 아침 일정을 시작한다. 아침 8시가 안되어 숙소를 나왔다.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는 비수기라 그런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샤워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수 있었다.

아소산은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는 활화산으로 활화산이 없는 한국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광경을 선사한다. 하지만 후쿠오카나 구마모토 관광객들에게 방문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후쿠오카에서 출발한다면 후쿠오카에서 신칸센을 타고 구마모토까지 이동 (50분) 후 아소역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1시간 반) 중간의 히고-오즈 역 등에서 갈아타야 할 수 있다. 아소역에서는 아소산조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하고 (35분), 마지막으로 아소 산조 터미널에서 화구 근처까지 운행하는 셔틀을 타야한다. (5분) 걸어갈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서양인은 걸어가고, 대부분의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중국인은 셔틀버스를 타는 것이 흥미롭다.

후쿠오카에서 쉬지않고 달려가도 3시간은 걸린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를 온전히 써야 한다. 배차가 넉넉하지 못해 기차 시간표, 버스 시간표 등을 잘 맞추지 않으면 중간에 30분 기다리는 일은 흔하니 꼭 유의해야 한다. 구글맵 등으로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여 전날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것이 좋다.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팁을 주자면 아소역의 코인락커보다 아소 산조 터미널의 코인락커가 훨씬 저렴하니,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도 좋겠다.

신칸센은, 이미 두 번을 타 보았다고 그리 흥분되는 일은 아니었다. 어제는 새로 개통한 나가사키행 카모메를 탔고, 오늘은 개통한지 20년 된 구형 규슈 신칸센을 탄다. 확실히 열차가 오래되었다. 그래도 그 속도는 여전하여 구마모토까지 수 많은 마을을 배경으로 돌진한다. 아마 대구에서 부산 정도 거리가 될 것이다. 구마모토 역에서 빨간색 열차로 갈아탔다. 갈아 탄 열차는 아소역 직통 운행하는 열차였다. 좋은 계절, 여름방학 동안에는 관광열차가 다니는 구간이라고 한다. 관광열차는 아소보이?라는 이름으로 오이타까지 규슈를 횡단한다고 한다.

갈아탄 구형 열차도 지정석 권을 예매 했는데 주위에 중국 관광객이 많았다. 소수의 서양 관광객(의외로 혼자 오는 서양 관광객이 많다), 더 소수의 한국 관광객, 다수의 중국 관광객, 통근이나 등학교 목적으로 타는 일본 사람들이 내가 탄 열차의 한 객차에 모여타고 출발했다. 신칸센을 타다 느릿느릿 마을을 휘감는 열차를 타고 달린다. 빨리 달릴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자동차, 가로수, 꽃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서두를 것 외에는 빨리 가는 열차를 탈 이유가 없다.

기차는 꾸준히 고도를 높여서 고원의 산 지형으로 들어간다. 몇 년전의 구마모토 지진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붕괴한 산의 사면, 끊어진 다리 등도 지켜볼 수 있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기존 다리를 철거하는 것도 돈일 테니, 끊어진 채로 관광 할 수 있도록 남겨 놓고 옆에 새로 다리를 하나 만들었다. 오즈-히고 역을 지나서 호히선으로 접어 들어서는 스위치 백 형태로 운전한다. 정차 후 차장이 기차를 가로질러 뒤 쪽의 운전석으로 걸어가 열차를 후진 시키고, 다시 어느 정도 가서는 다시 앞 쪽의 운전석으로 걸어가 열차를 전진시켜 몰고 간다. 예전에 우리나라 영동선에서도 이와 같은 열차를 한번 타 보았는데, 이제 우리나라는 선로 평탄화 작업이나 터널 개통으로 없어진듯 하다.

이윽고 아소 분지로 진입하는데, 험한 산지 지형을 뚫고 올라오니 또 다시 넓게 펼쳐진 평야가 나타났다. 오른쪽에는 아소산이 나타난다. 이제 다 왔다. 아소역에 열차는 멈춰서고 사람들은 줄지어 아소산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러 오른쪽의 버스 터미널로 이동한다. 티켓은 자동판매기를 통해서 사도록 되어 있는데,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은 사용이 서툴기 이를데 없다. 점원이 한 두명이라도 나와서 도와주면 좋을 텐데. 내 앞에 줄 선 두 명의 중국인 아주머니 들은 한참을 돈을 넣었다 뺏다 하면서 기계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절대 이런 상황에 나서지 않는 난데 버스를 놓칠까봐 걱정되어 내가 돈을 집어 들고 구매를 도와주었다.

아소산은 바이커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굽이 굽이 와인딩 로드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고, 굳이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올라오는 사람도 많이 없어 보기에도 바이크에 애정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 떼를 지어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도 배에 바이크를 실어 규슈 곳곳을 누빈다고도 한다. 한국에 더 이상 갈데가 없다면 훨씬 넓은 땅을 가진 일본에서 타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일 것 같다. 듣기로는 차를 일본으로 가지고 가서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소산정상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분화구까지 가는 버스가 운행한다. 시간이 없다면 타고 올라가는 것도 방법이고, 시간이 많고 충분히 걸을 수 있다면 굳이 탈 필요는 없어보인다. 대부분 타고 올라가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양 휩쓸리기 좋다. 나는 갈때만 타고, 내려올때는 걸어서 내려왔다. 5분의 짧은 탑승을 마치고 내리면 유황 냄새가 고약하다. 하와이의 볼케이노 국립공원에서의 그 냄새지만 이쪽이 훨씬 광범위하고 농도가 짙다. 너무 분출이 심해지면 근처의 접근을 차단한다고 한다. 건강에 좋을리 없어 보인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유투브에 아소산을 검색해 보았는데, 갑작스러운 분출에 재빠르게 도망치는 사람들의 1인칭 시점 동영상들이 흥미로웠다.

오래 있을 시간이 없다. 다음 내려가는 버스를 타야 열차 시간을 맞추고 구마모토로 돌아갈 수 있어 3시간을 달려 보러온 정상의 풍경을 10분만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풍경을 충분히 보지 못해 아쉽지만 아소산만의 고유한 풍경이나 느낌이 딱히 보이지 않아 아쉽지는 않다. 20분 정도 걸어내려가는 길은 시간 조절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일본의 기차, 버스 시간표는 정확해서 절대 먼저 출발하거나 늦게 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포토스팟이 있었는데 역시나 여기도 혼자 카메라를 세워놓고 인스타그램 릴스를 열심히 찍는 분이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를 타니 아침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몹시 배가 고팠다. 돌아가는 길에 구마모토의 맛집을 찾아보니 이 쪽은 돼지고기가 유명한 것 같아, 돈까스 정식을 먹기로 했다. 마침 돌아가는 기차역, 미나미 구마모토 근처에 유명 체인 돈까스 가게(카츠레츠테이)의 분점이 있어 잠시 먹고 다음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무더위에 배낭을 매고 헉헉 거리며 걸어갔다. 평일 점심, 거의 세시가 다 되어 도착한 식당은 다행히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평생 먹은 돈까스 중 여기가 최고다. (사진은 너무 맛없게 찍혔네..) 돈까스의 풍미도 대단한데, 밥에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쌀의 품질에 민감한 편인데 한국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품종의 쌀인 것 같다. 미식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런 맛은 음식의 재료에서 나오는지 주방장의 솜씨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가족 또는 누군가와 구마모토를 방문한다면, 여기는 꼭 다시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평일 점심에는 그날의 정식을 1300~1600엔 정도로 싸게 먹을 수 있는데 외국인에게 주는 영어 메뉴에는 적혀있지 않다. 입구에 메뉴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일본어로만 적혀 있으므로 만약 평일 점심에 방문한다면 꼭 런치 정식 메뉴를 달라고 해야 한다. (https://maps.app.goo.gl/ToHZE59yFupHYamEA)

다시 두 정거장을 뒤로 돌아가 스이젠지 역에서 스이젠지 조주엔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신-스이젠지 역보다 스이젠지 역이 가까워보여 여기서 내려가기로 결정 했는데, 이 역은 코인락커가 공사 중이었다. 허리와 다리가 조금 쉬어야 된다고 소리를 지르지만,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또 둘러매고 15분 여를 걸어간다. 길거리는 더워서 그런지 아무도 없고, 빈 신호등을 건너는 건 나 뿐이었다. 다행히 스이젠지에 입장하고 나니 무료 코인락커가 있었다. 참고로 일본인에게는 코인록커라고 해야 잘 알아듣는다.

일본식 정원은 교토에서 히메지에서 나라에서 도쿄의 이곳저곳에서 많이 둘러보았다. 흥미로운 정원들도 있었지만 (교토 은각사) 내게는 대체로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소우주를 표현하는 정원의 각 나라별 양식은 어디에나 있었을 텐데, 우리나라는 보전되지 못하고 많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쉽다. 최대한 자연을 손 보지 않고 정자하나를 세워 풍경을 즐기는 것이 우리 정서에는 더 맞았을 수도 있겠다. 한바퀴 돌다보니 인적이 드문 곳에서 어떤 중국어를 쓰는 아이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정원의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어머니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후쿠오카는 한국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는 중국 단체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사진에 미끄럼의 흔적이 보인다.

사람이 없어 둘러보기 좋았다. 한달 전 교토에서 보았던 후시이 이나리 신사의 분점?이 안에 위치해 있다. 잠시 명당 자리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물과 풀, 바람과 시간을 느껴봤다. 5분이나 지났을까 오늘의 관람이 종료되었다며 모두 퇴장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아소산에서 부지런히 걸어내려 왔기에, 돈까스를 허겁지겁 먹었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역에서 걸어 왔기에 이 5분이나마 주어졌다. 내가 원했던 극한의 배낭 여행이다. 그런데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오늘은 구마모토 역 앞의 캡슐 호텔(Hotel the Gate Kumamoto)을 예약했다. 로비나 시설은 좋았다. 입고 잘 수 있는 가운도 주고, 코인세탁실도 붙어 있었다. 힘들었기에 편히 쉴 수 있게 큰 마음 먹고 상당히 고가 (4만원)의 독실을 예약했다. 하지만 좋지 않았던 것은 모든 방의 천정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 즉, 실내 체육관에 칸막이를 적당히 치고 도미토리를 만들어 놓은 꼴이다. 옆 방의 누가 전화 통화를 시작했는데 마치 침대에 같이 누워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카운터에서 귀마개를 나누어주니 꼭 챙기는 것이 좋겠다. 구마모토에 출장 온 비즈니스맨이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타기 위한 호텔 느낌이다.

후쿠오카에서 아소산 정상으로, 아소산 정상에서 다시 스이젠지로, 구마모토 역으로 이동거리가 긴 하루였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저녁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구마모토 역까지 걸어가 모스버거를 하나 사먹고 들어왔다. 아, 피곤하지 않았다면 정말 먹지 않았을 것이다. 모스버거를 버거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다. 2층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다자이후, 규슈 국립 박물관

나는 박물관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대표 박물관들은 꼭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방문지를 돌아보기 전에 박물관을 들러 도시나 지역의 이해를 넓히고 싶다. 우리나라 박물관 중에는 진주 국립박물관이나 목포 해양 박물관 처럼 많은 내용을 소개하기 보다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박물관이 마음에 들었다.

같이 여행하는 가족이 있거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경우 원하는 박물관을 가보지 못한다. 또는 아주 짧은 시간만 방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여행은 혼자 떠난 여행으로 원하는 박물관을 원하는 시간만큼 볼 수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 서 있을 정도로 둘러보았다. 일본에는 총 4개의 국립 박물관이 있다. 도쿄, 교토, 나라, 규슈에 각각 하나 씩 있다. 나는 교토를 제외하고 나머지 박물관을 가보았고 이 번 여행에서 도쿄와 규슈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교토 국립박물관도 방문했지만 도저히 관람 시간이 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동선 상으로는 후쿠오카 체류 중에 규슈 국립 박물관을 들러 구경한 후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내 경우 마침 방문 예정일이 박물관 휴관일이라 동선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나가사키에 들렀다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규슈 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어 교통비 걱정이 없으므로 가능한 동선이다. 참고로 규슈 국립 박물관의 접근성은 매우 떨어진다. 다자이후의 구석진 곳에 있는데 후쿠오카에서는 니시테츠 철도를 타고 니시테츠 후츠카이치 역에서 환승 한 후 다자이후 행 관광 기차를 타면 된다.

아무튼 이 복잡한 동선의 일정을 소화하고자 나가사키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번에 못한 나가사키 이야기를 하자. 나가사키는 일본에 가톨릭이 처음 전파된 곳이다. 하비에르 신부에 의해 전해졌다고 하는 일본의 가톨릭은 1600년대에 와서는 이곳 규슈 지방에 뿌리를 내렸다. 임진왜란의 선봉장 중 한명으로 한성에 가장 먼저 진입한 고니시 유키나가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하나로, 한국에서 전쟁 중인 임진왜란 중에도 신부를 일본에서 데려와 미사를 드렸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일본 최초의 순교 성인 26인의 처형터가 위치해 있었다.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바로 이곳에서 연설 했다고 하고, 그 전임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도 방문했었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가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문제에는 관심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인간 본연의 질문은 일생을 거쳐 탐구해야 하는 대상이고, 종교인들은 나름대로 해답을 구한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를 조금 둘러보고 나가사키역으로 가서 카모메 신칸센을 탄다. 여행 내내 미리미리 기차 시간표를 알아서 역에 조금 일찍 나가는 것이 버릇으로 했다. 역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되기도 하고,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칸센 전체 여행에서 예정보다 열차는 빠르게 도착한적도 늦게 도착한 적도 없다, 따라서 빠르게 출발한 적도, 늦게 출발한적도 없다. 그러다보니 항상 역에서 10~15분을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 오래된 역사들은 딱히 대합실이 넉넉한 편이 아니다보니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어 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나가사키역은 신축 역사라 그런지 넉넉한 대기실이 있어 잠시 배낭을 바닥에 놓고 쉴 수 있었다.

다케오온센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어제 탓던 급행 열차가 아니라 각 역마다 조금 더 자주 서는 열차를 타고 간다. 후츠카이치역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열차 시스템은 참 복잡하기 그지 없다. 보통-쾌속-특급-신칸센으로 이어지는 열차의 등급과, 자유석-지정석-일반석-그린-그랑클래스로 이루어지는 좌석의 등급이 각각 존재한다. 게다가 요금도 열차의 등급과 좌석의 등급을 별개로 정산하니 복잡함이 배가 된다. 보통-쾌속-특급은 같은 노선을 달리돼 열차의 종류가 다르기도 하고, 특급으로 갈 수록 통상 서는 역이 점점 줄어든다. 신칸센도 마찬가지로 노조리, 히카리 등으로 정차역에 따라 구분되는데, 이건 지역 별로 명칭이 다 다르다. 이를 일일히 설명하다가는 포스팅 하나를 온전히 해야하므로 여기서 넘어가도록 하자.

JR후츠카이치역에 도착해 코인라커에 짐을 넣어 놓는다. 여기 JR후츠카이치역에서 20분 정도를 걸으면 니시테츠 후츠카이치역에 도착한다. JR 후츠카이치역은 한적한 동네로 아침 시간이라 한가한 것인지, 하루 종일 한가한 동네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상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하루 종일 번잡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면 니시테츠 후츠카이치역과 거기서 이어지는 다자이후역은 관광객으로 북적북적했다. 어디든 관광지, 그 중에서도 메인 스트리트만 북적 거린다. 그 사람이 많다는 교토 산넨자카나, 나라의 사슴공원도 두 블럭만 벗어나면 횡단보도 맞은 편에 사람을 찾기 힘들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다자이후역에 11시 정도에 도착했기에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이치란을 포함해 유명한 라멘 체인이 많이 있었는데, 이치란은 기다리기도 싫고 나중에 먹을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단보라멘이라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다행히 오픈 시간 즈음이라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익숙하게 자판기에서 티켓을 뽑아내고, 혼자 앉기 적당한 카운터 석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뒤꿈치 뒤에 있는 플라스틱 가방에 담는다. 어디든 혼자 먹는 사람들은 위해 최적화된 시스템은 비슷하다. 나가사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왼쪽에도 한국 사람, 오른쪽에도 한국사람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찍지 않으면 먹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식당을 나서니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올껄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행히 워낙 상점이 많아 가게 앞에 있는 처마 밑을 따라가니 거의 비를 맞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비도 오고, 오늘 방문의 목적인 규슈 국립 박물관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박물관은 다자이후 동쪽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해있다. 다자이후 오른쪽에 매우 긴 길이의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다자이후만을 살펴보고 이 깊은 곳 까지는 오지 않는다.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될 것 같다.

관람객보다 직원이 더 많아보이는 박물관에 들어섰다. 넓고, 최신식의 공간이었다. 이걸 짓는데는 틀림없이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리라. 모든 유물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몇 가지 느낀바를 적어보자면, 일본은 가능하면 오래전에 정착민과 농경문화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도래 문화보다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나름대로의 문명이 중요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아오모리의 조몬시대 유적이나, 시라카와고 같은 곳을 강조하는 것도 일본 고유의 것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일본 도자기 기술의 원천은 규슈지방이고, 이는한국의 기술자들로부터 전수된 기술 임이 틀림없다. 규슈 지방의 다양한 곳에서 번성한 채색 도자기 기술은 임진왜란 이후 시기 건너간 도공들이 발전 시켰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도자기에 관한 특별 전시도 자주 있었고 친숙함을 느꼈다.

또 일본은 적어도 근 500년 동안은 무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군사 대국이다. 누구를 숭상하는지, 어떤 유물이 전시관의 처음에 위치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전쟁과 전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 생존 전략이 현대 일본의 문화 속에도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잔인함에 대한 면역이나 낮은 신분 상승 욕구등이 그것이라 짐작한다.

규슈지방 위주의 전시로 국립박물관이라 일본 전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한국 또는 중국과의 연결 고리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 출정을 위한 준비 과정이나 침략 주역들의 그 과정에서의 친필 메시지 등은 흥미로운 사료로 보인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한국의 정벌을 준비하고, 그 결과 많은 군사와 자원을 일거에 보급할 수 있었다. 대비가 전혀 없던 한국은 그야말로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초기 전투에서 거의 궤멸에 가까운 상황에 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임진왜란 직전 해에는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다녀갔다. 하지만 엇갈리는 현황 보고 속에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 쪽을 택한 조선의 운명은 명에 의지하지 않고는 국가를 존속 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런 역사는 500년도 지나지 않아 똑같이 반복된다.

다자이후 덴만구로 다시 내려왔다. 가족이나 커플 단위 관광객도 참 많고, 군/면 단위의 향촌 부락 경로당 정도에서 단체로 놀러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보였다. 워낙 한국과 가깝기도 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의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이 곳은 수백년이 넘는 거목과 연꽃이 화려하게 꾸며진 신사였다. 가볍게 풍경을 즐기고 뻐근한 다리를 쉬게하며 앉아있기도 했다. 아무리 쉬어도 거의 네 시간을 박물관을 둘러보니 더는 걸어다니기 힘들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기로 했다.

오늘의 숙소도 역시 게스트하우스로 지난 번 후쿠오카 게스트 하우스 근처로 잡았다. 그나마 약간은 프라이빗하게, 벙커 침대와 그 앞에 약간의 탁자, 그리고 의자, 그리고 그 앞에 전부를 가릴 수 있게 쳐진 커튼까지가 나의 공간이다. 내 침대는 1층이고, 2층 침대를 쓰는 사람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비슷한 형태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커튼 파티션이 있다. 그러기에 만원이 비싸다. 공용 주방이나 식사 공간이 있지만 아무도 이용하는 사람은 못봤다. 사람이 그만큼 없는 것일까?

지난 후쿠오카 일정에서 유명 관광지를 휘뚜루 둘러보았으므로 오늘 저녁은 바로 코 앞의 신사, 상점가를 둘러보고 대형마트에서 8시 이후 할인 판매에 돌입한 스시를 사서 먹기로 한다. 정가 2000엔에 반 값 할인이 들어간 12피스 정도의 스시와, 포켓몬 빵, 이토엔 녹차가 오늘의 저녁 식사다. 내 침대 앞의 탁자에서 먹기에 냄새가 안나는 메뉴를 골랐다. 원래 게스트하우스 침대 내 취식은 금지이지만, 침대 안도 아니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삼일 째 되니 확실히 피곤했다. 무거운 것을 매고 많이 걷고 너무 부실하게 먹었나 싶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나는 아침에 운동을 하고 금주하고 물은 충분히 사서 마셨다. 다행히 허리는 별 문제 없었지만, 점점 숙소로 들어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더운 봄과 여름의 한가운데 더 몸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여행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 이므로 맛있는 것을 못 먹거나 택시를 못타거나, 싸구려 스폰지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몸에 문제가 생겨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기는 싫었다. 건강한 채로 바닥까지 떨어져, 돌아왔을 때 모든 곳과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나가사키

후쿠오카의 캡슐호텔은 효율적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있고, 필요치 않은 것은 모두 없다. 나처럼 아침식사를 먹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느낀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호텔 밖을 나가야 한다. 푹 잔 탓에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없어 서둘러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구글 맵으로 검색해서 하카타 역 근처에 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시간 안에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 곳의 효율성도 만만치 않았다. 15분도 안걸렸다. 역에서 유명하다는 크루아상과 물을 하나 샀다.

12일의 일정이라 짐을 많이 쌀 필요는 없었다. 옷은 티셔츠 세 장, 반바지 두 개, 바람막이 하나, 그리고 속옷들, 운동화 하나, 샌들 하나. 이게 전부다. 하나라도 더 가져왔으면 필요 없을 뻔 했고, 하나라도 없었으면 곤란할 뻔 했다. 최소 삼일에 한번은 빨래를 했다. 일본은 동전 빨래방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불편한 것은 없었다. 옷은 필요하면 사면 된다. 대부분 한국과 같은 가격이다.

나가사키로 이동한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는 신칸센이 완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중간에 다케오온센 역까지는 고속 열차(Limited Express)를 타고 이동하고, 다케오온센부터 나가사키까지는 신칸센을 타고 간다. 이 구간이 뚫리면 홋카이도의 하코다테까지는 신칸센이 연결된다. 시간표가 잘 짜여 있어 정차역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없다. 내려서 반대편 승강장 대기하고 있는 열차를 타면 곧 출발한다. 나가사키까지 가는 신칸센도 개통한지 몇 년 안되었다고 한다. 이 신칸센의 이름은 카모메로 갈매기라는 의미이다. 듣고보니 머리 쪽이 갈매기를 닮았다. 중간에 환승하는 노선을 하나로 묶어 릴레이 카모메라는 이름으로 발권해주고 있었다.

나가사키는 한국 사람에게 몇 가지로 유명하다. 첫 번째로 짬뽕, 그리고 카스테라가 익숙하다.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 중 하나이다. 최근 군함도라는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동명의 군함도(하시마)라는 섬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검색하면 나올 법한 이야기다. 조금의 지식을 덧붙이자면 일본 내에서 최초로 서양에 개항된 도시라는 특징도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가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에 억류되었던 하멜 표류기의 하멜이 (참고로 네덜란드 사람이다) 13년간의 억류 생활을 마치고 기적적으로 탈출해 도망쳤던 곳이 나가사키이다. 한국과 가깝고 조선소가 많은 탓에 많은 조선인들이 억류되어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소도시 임에도 불구하고 볼거리가 많으며 도시 자체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야경이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1박의 일정이 너무 짧아 아쉬웠던 터라 꼭 가족들과 다시 가보고 싶다.

역 앞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여행 중 예약한 숙소 중 가장 작은 규모의 게스트하우스로 고작 다섯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1층에서는 까페를 운영하고, 2층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며놓았는데 장기 투숙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주 작은 화장실과 샤워룸이 하나씩 있었다. 같이 숙박하는 젊은 일본인 아가씨와 홍콩에서 온 아가씨가 괜히 나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오늘은 많은 곳을 돌아봐야 하므로 서둘러 짐만 맡긴 채 정오쯤 원폭 기념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노면 전차가 아직도 활발히 운행 중이었다.

전차를 타고 도착한 원폭 기념관은 원폭 폭발 중심에서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간 남서쪽 사면에 위치해있었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서 인류 역사상 2번째 핵폭탄이 폭발했다. 원자 폭탄은 지면 위 500m 상공에서 폭발했다. 그해 말까지 15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10~15%는 이름도 알려지지 못한 조선인이었다. 폭발 중심 가까운 곳의 학교 건물에서는 단 한명의 생존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가사키 쪽에 히로시마보다 훨씬 더 큰 폭탄이 떨어졌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양쪽 도시의 원폭 기념관을 모두 방문했다. 규모와 상징성은 히로시마의 원폭 기념관이 훨씬 컸지만, 관람하기에는 나가사키 쪽이 나았다. 히로시마 쪽은 감상적인 설명이 많았던 반면, 나가사키에서는 담담한 설명이 이어져서 나름대로의 생각, 사건, 증거들을 차분히 조합해 나갈 수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기억이 난다. 방문 전 두세권의 관련 책을 읽었다. 나 나름대로는 40년 후 취재를 온 기자처럼 머리 속에 몇 가지 의문을 가지고 방문했다. 하지만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감정이 올라와, 사실을 쌓아 올려 나름대로의 생각과 결론을 완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것이 옳은 것인지, 다른 주장이 옳은 것인지, 나의 생각과 인식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히로시마에서 느꼈던 감정이 이쪽이었다.

주위의 폭심지, 평화공원 등을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방문한 관광객,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고등학생, 견학온 유치원생들이 많이 보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해설을 해주고 계셨다. 80년 전 일이라 수 세대 전의 일이긴 하지만, 장수 국가인 일본에는 실제 원폭을 어릴때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들에게 80여년 전에 봤던 하늘의 빛나는 섬광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그들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폭탄이 일으킬 참상이 충분히 예측 가능함에도 미국은 어떻게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었을까. 등등을 생각하며 흐린 공원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원폭 기념관을 워낙 꼼꼼하게 본 탓에 시간이 많이 지났다. 다시 노면 전차를 타고 구라바엔(Glover Garden)으로 향한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도시 마다 방문할 곳을 미리 정하지 못했다. 원폭기념관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기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개항을 했던 일본, 특히 나가사키는 많은 서양인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그 중 글로버 상회라는 스코틀랜드 출신 글로버가 세운 회사는 규슈 지방 세력인 사쓰마와 조슈번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공급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글로버 가든, 구라바엔은 창립자 글로버와 그의 일가 친척들이 거주하던, 나가사키의 한적한 언덕 위에 세워진 주택과 정원을 관광지로 개발한 곳이다. 입장 시에는 요금이 다소 비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잘 꾸민 정원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우리나라 개화기의 유적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이 곳은 보존도 잘 했을 뿐더러 끊임 없이 보수하고 새로운 것을 덧붙이면서 좋은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였다.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조선소와 나가사키 역, 시내 경관이 볼 만했다.

나가사키 짬뽕을 먹으러 슬슬 언덕을 내려간다.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라는 시카이로에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음식점처럼 이 곳도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서 저녁 시간이 시작되는 4시 반 정도에 맞춰 방문했다. 다행히 기다림은 없었다. 혼자 온 사람들도 차별하지 않고 온 순서대로 바다 경관이 보이는 멋진 테이블을 줘서 좋았다. 맥주를 한 잔 시킬까 고민했지만, 술을 마시면 허리가 말썽일까봐 꾹 눌러 참았다. 장기 여행에서는 몸을 사리게 된다. 아무튼 신선한 재료와 불 맛의 풍미가 뛰어난 음식이었다. 한국에서 이 가격과 맛이면 반드시 성공한다.

가는 길에 저녁 출출할 때 먹을 카스테라와 우유를 사기로 했다. 귀국길이라면 카스테라를 넉넉히 사서 선물하면 좋으련만 아직 일정이 많이 남은 여행인지라 나만 맛볼 양 만큼을 샀다.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여러 체인점이 있고 체인점마다 수 많은 분점이 있다. 잠깐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봤지만 어느 곳이 원조인지 명확하지 않은 듯 했다. 가까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방문한 곳은 분메이도라는 곳이었다. 매장은 고급스러웠지만 판매 점원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아직 일이 몸에 익지 않은 풋풋한 상태로 보였다. 같은 질문을 여러번 물어보고, 카드 결제도 서툴러 보였다. 일본은 의무 군복무가 없고, 대학진학률도 낮기 때문에 접객업에 취직한다면 사회인으로써 진출하는 연령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아마 그런 젊은이가 아닌가 싶었다. 이럴 경우 견습중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경우도 많다.

데지마를 지나, 메가네바시로 걸어간다. 여행하는 12일 동안 하루에 적으면 2만보 많으면 3.5만보 정도를 걸어 다녔다. 이 날도 아침 8시가 안된 시간에 숙소를 나서 6시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쉬는 시간 없이 걸어 다녔다. 데지마 내부를 꼭 살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없고, 또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근세 극동 아시아 역사책이나 해양 문화사책을 몇 권 읽다보니 데지마는 익숙했다. 메가네바시까지 간신히 걸어가서 사진만을 찍고 노면 전차를 타고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작은 소동이 있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아가씨가 갑자기 후다닥 일어나더니 바삐 오가며 난리법석이길래 왠일인가 나가봤더니 처음 보는 벌레가 날아들어와 온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문을 모두 틀어막고 오늘의 숙박인원 세명이서 삼십분 동안 벌레를 잡았는데 모두 소탕을 못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가 잠자리채를 들고 나타나서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원하면 1층 까페에 침대를 만들어 줄테니 그 곳에 가서 자라고 했다. 여름 직전의 비오는 날이라 바로 옆의 공원에서 날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아가씨는 내려가버렸고 나는 그냥 자기로 했다. 힘도 없고,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없으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유와 카스테라를 먹고 다소 불편한 침대에 게의치 않은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카스테라는 너무 달아 이를 꼼꼼하게 닦게 만드는 맛이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후쿠오카

신기하게도 후쿠오카 공항은 도심과 붙어 있다. 서울이라면 용산에 공항이 있는 꼴이라 지하철로 10~20분만 이동하면 하카타 역에 닿을 수 있다. 도심에서도 머리 위로 랜딩 기어를 내린 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건물의 고도제한이 심할 것 같긴 하지만, 딱히 높은 건물이 필요한 도시도 아닐 것 같다. 편리한 도심 접근이 단기 여행객들에게는 많은 매력이 있다.

후쿠오카의 중심이 되는 역은 후쿠오카역이 아니라 하카타역이다. 옛날 후쿠오카시와 하카타시가 합치면서 도시 이름은 후쿠오카, 역 이름은 하카타로 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이런 거래가 가능할만큼 그 때는 기차역 이름이 중요했던 것이다.

일본은 철도 교통 발달에 유리한 지형을 가졌다. 국토의 폭이 좁고 길어 그 중심을 관통하여 경제 권역을 연결하는 간선(그래서 고속철도의 이름이 신-간선이다) 을 건설 한 후 각 지역 중심지로부터 소도시까지의 지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발달한 것 같다. 중심을 관통하는 선 만으로도 대부분 지역에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같은 면적이라도 원형이나 사각형의 국토를 가진 나라는 소외되는 지역이 존재하거나, 승객이 여러번 갈아타는 불편함을 겪게 될 수 있다.

나의 여행은 공항에서 하카타 역으로 이동해 JR패스를 교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카타 역의 중심에 초록색 JR 패스 교환 창구가 있다. 여기는 늘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패스를 교환하고 있다. 붐비는 시간에 가면 꽤나 오래 기다릴 수 있으니, 아침이나 밤에 방문하라는 팁을 읽었다.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전혀 불편한 점은 없다. 나는 규슈 레일패스와 전국 레일패스를 모두 교환했다. 참고로 규슈 레일패스로 지정석을 예매하는 기계와 전국 레일패스로 지정석을 예매하는 기계가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해있어 불편하다. JR 규슈와 JR서일본(니시니혼)이 따로 운영되어 그런 듯 하다.

이번 여행은 신칸센 1등석을 타고 전국을 최대한 돌아다니기, 숙소에서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기, 각 지역의 대표 음식을 먹어보기라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도시 별로 대부분 1박, 길게는 2박 정도를 한 후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숙소는 하루 전이나 당일 가장 싼 숙소를 아고다로 검색하여 결제하였고 대부분 2000엔 내외의 숙소였다. 지역의 대표 음식을 먹는 것은 노력했으나 혼자 먹기 어려운 음식도 있었고, 딱히 식도락을 즐기는 편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친 경우가 많았다.

후쿠오카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2박을 한 도시다. 말끔한 캡슐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씩 숙박 하였는데 두 곳 모두 만족스러웠다. 일본의 캡슐 호텔은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체크인/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게스트하우스라고 특별히 파티나 곤란하게 말을 거는 외국인은 없었다. 조용하게, 효율적으로, 저렴하게 여행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최적화 되어 있었다. 다만 기본 요금에 타올 등을 빌리려면 약 200엔에서 500엔 정도의 추가 요금을 받는 경우가 꽤 있어 개인 비품을 가지고 다닌다면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 듯 했다.

JR패스를 교환하고도 숙소인 캡슐 호텔의 체크인까지 꽤나 시간이 남았다. 짐을 맡기고 오호리 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6월 중순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오래 걸으며 체력을 소진할 수 없어 천천히 쉬면서 걷다, 앉아있다 반복했다. 더워서 오리배를 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후쿠오카 성터에 올라가볼 수 있었는데 천수 등 건축물을 모두 없어지고 석축만 남아 있었다. 성 뒤쪽으로는 고로칸이라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서양과의 교역을 위한 옛 기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공원과 성터 보다 이런 역사 문화 유적이 내게는 더 흥미롭다. 우리나라는 아직일 수국이 흐드러진다.

한중일 삼국이 서로 교역하고 문화를 주고 받은 것은 아무리 짧게 잡아, 우리의 백제부터 셈한다 하여도 천오백년의 역사를 가진다. 그 안에는 중국의 다도를 일본이 수입하거나, 백제의 멸망을 막기 위해 일본이 한반도에 파병하거나, 조선의 문물을 전파하기 위해 에도, 현재의 도쿄에 통신사를 파견하는 등 교류와 협력의 역사도 있는 반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중일 전쟁과 같은 전쟁의 역사도 있다. 역사는 이렇게 이웃에 위치한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배제한 체 우리 나라만을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연결 고리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 곧 우리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는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속의 한국을 여행한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여행의 첫 날이라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여정이 12일이나 남아있다.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가 한숨 푹 자고 저녁을 먹을 때 나와보기로 하였다. 어딜 가는 여행이던 이제 숙소 체크아웃 시점에 맞춰나와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저녁에 체크인 하는 일정은 불가능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어디에서는 앉아, 또는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주로 신칸센 1등석에 앉아 등받이를 적당히 눕혀놓고 시속 260km의 휴식을 취했다. 여행 전 많은 여행기를 읽을 때 꼭 1등석(그린샤권) JR패스를 사라고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이유는 몸으로 체감했다.

딱히 각 도시나 지역의 이름난 음식을 먹지 않을 때면 구글 맵을 켜 근처의 라멘 집이나, 마쓰야, 요시노야, 나카우 등 돈부리, 카레, 돈까스 집을 찾아 끼니를 때웠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대학생 시절 일본에서 잠깐 살때는 300엔, 비싸도 500엔을 넘지 않았던 메뉴들이 이제 조금 만 고급진 메뉴를 먹으려면 900엔을 훌쩍 넘었다.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물가가 많이 올랐고, 또 현재도 오르고 있다. 들어가서 키오스크를 찾고,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메뉴 중에 적당한 것을 골라, 현금을 넣고 결제한다. 출력되어 나오는 종이 중에 영수증 말고 메뉴와 번호가 적힌 것을 가지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있는다. 번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종이를 들고 가서 메뉴를 받아온다.

저녁을 먹고 나니 약간은 다시 돌아다닐 기운이 생겼다. 나카스 지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강 건너 섬 지역인 나카스에 가까워 질 수록 분위기가 바뀌어 빛, 소리 그리고 음식 냄새가 강렬해졌다. 강변에는 수많은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고 각각 다른 메뉴를 팔고 있었다. 앉아있거나 줄서있는 사람들의 상당 수는 서양인이거나 한국인으로 보였다.

일본의 대도시는 많은 경우 바다와 접해 있고, 커다란 강이 도시를 관통하여 흐른다. 후쿠오카의 경우 나카강과 미카사강이 흐르고 이 중 나카강이 나카스라는 섬을 만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나가사키, 쿠마모토, 히로시마, 나고야, 센다이, 삿뽀로 등이 이 공식을 따른다. 대도시 대부분이 태평양을 접해있는데, 우리나라 동해를 접한 유일한 대도시가 후쿠오카다. 추측이지만 따뜻한 태평양 쪽을 접해 있는 것이 어업이나 기후에서 더 살기 유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쪽 해안이 더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뒤쪽 건물은 유흥업소로 보였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일본에도 3대 혹은 4대 유흥가가 있다는데 그 중 이번 여행에서 후쿠오카의 나카스, 삿포로의 스스키노, 센다이의 코쿠분초를 모두 방문했다. 저렴한 숙소를 찾다보니 이와 같은 환락가 주변이었던 것 같다. 나는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꽤 불쾌한 경험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겠다.

잠깐의 나들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바로 잠들었다. 아침 3시 30분에 시작한 일정을 10시에 마무리 했으니 꽤나 빨빨 거리고 돌아다닌 셈이었다. 캡슐호텔의 캡슐에 누워서 이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40이 넘은 나이에 헝그리 배낭 여행이라니, 더 자고 쉬지 않으면 안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