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이세, 나고야, 마츠야마

‘성지’는 어느 곳일까? 종교라면 명동성당과 같은 각자의 ‘성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성지는 어디인가? 고조선과 단군 신화를 믿는 분들은 마니산 참성단일 수 있다. 현대사를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은 경복궁이나 서울시청, 광화문 광장 등을 꼽을 수도 있겠다. 또 서울시 동작구 현충원도 근처에서는 경적도 울리지 말라는 안내가 있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조선시대의 왕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종묘도 중요 사적이다. 내가 가본 곳 중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지 답다’ 느낀 곳은 아산 현충사이다.

그러면 일본의 성지는 어디일까? 일본은 왕이 있는 나라고 이것도 하나의 종교라고 간주하면, 그 최고의 성지는 아마 이세신궁이 될 것이다. 이 곳에는 일본 천황가의 시조라고 여겨지는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신사이자, 전국 신사들의 최고 정점에 있는 황대신궁이 위치해있다. 바로 그 위치에, 나고야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남짓 가야하는 이 곳 이세시에 최고신 아마테라스가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곳은 천황가를 신성시하는 일본 보수의 심장이자 총 본산이다. 이 곳은 천황 만이 공물을 바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일본 왕가에 내려오는 청동검, 거울, 옥 구슬인 삼종신기를 아마테라스가 천황가문에 수여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리고 이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거울이 이세신궁에 있다.

아침 일찍 다시 짐을 싸들고 숙소에서 나왔다. 이세신궁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 그나마 가까운 오사카, 교토, 나고야에서 모두 상당히 거리가 있다. 나고야에서는 JR 미에 특급을 타면 1시간 40분이 걸린다. JR패스로는 대부분 무료이지만 중간에 사철을 이용하는 일부 구간이 있어 400엔 정도를 징수한다. 사철 구간이 시작되면 JR 승무원이 돌아다니면서 검표하는데 JR패스를 보여주면 돈을 더 내라고 한다. 가기 어려운 만큼 이 곳이야 말로 내가 생각한 방문 원칙에 부합한다. 이번 여행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며, 한국인이 거의 방문하지 않는 곳이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방문기가 몇 올라오긴 하지만, 에베레스트를 트래킹하는 한국사람보다 훨씬 적은 것 같다.

나고야역에서 7시 40분 출발하는 ‘미에’라는 특급열차를 타기로 한다. 나고야 역사 안에 있는 까페에서 빵을 사서 하나 먹고, 혹시 배가 고플까봐 다른 빵집에서 빵을 두 개 샀다. 물도 하나 샀다. 짐은 나고야역 코인라커에 하루 종일 맡기기로 했다. 특급 미에 열차에는 나이가 지긋한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하긴 젊은이가 두 시간씩 기차를 타고 할 것이라고는 신사 구경 밖에 없는 곳에 왜 가겠는가. 대부분 신사 참배를 가는 분들이다. 긴 시간 타고 가야 하는데 혹시 사람이 많아 자리에 앉지 못할 까봐 지정 좌석권을 따로 구입했다. 물론 JR패스가 있어도 이 좌석권은 돈을 더 내야 한다. 열차 안에는 일부 구간이 나뉘어 있고 앞 쪽은 지정석이다. 뒤쪽에 구역에 자리가 없어 서 있어도 앞쪽으로는 넘어오지 않는다. 미니 설국열차 같다.

나는 이세시에 두 시간 밖에 머물 수 없다. 오후에 나고야성을 보고 오후 늦게는 마츠야마까지 이동해서 숙박을 해야 한다. 하루에 장거리 특급 열차를 세번 타야 한다. 일정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은 왜 그런 것일까? 이세신궁은 보통 내궁과 외궁으로 나뉘는데, 외궁은 이세시 역에서 걸어갈 정도로 가깝지만 내궁은 버스를 타고 꽤나 가야한다. 일반적인 경건한 마음의 참배객들은 외궁을 먼저 보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궁으로 가는 것 같지만 나는 내궁을 먼저 이동해서 살펴보고 시간이 남으면 역 근처의 외궁을 보기로 한다. 만약 시간이 모자라면 외궁은 패스하고 나고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세시에 도착해서 버스를 기다린다. 쉬운 한자로 ‘내궁’이라고 써 있어서 다행이다. 혼란스러운 것은 따로 있다. 버스를 앞에서 타고 뒤로 내리는 것일까, 아니면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리는 것일까. 일본도 지역마다 다른지 지역 별로 정리해 놓은 문서가 검색된다. 에스컬레이터도 오사카 사람과 도쿄 사람은 서로 다른 편에 서서 탄다. 기다란, 다른 민족이 서로 섞여 사는 나라라 관습도 지역별로 상당히 차이가 난다.

버스를 타고 생각보다 오랜시간 달려간다. 사람이 많아 보이는 마을은 없어 보인다. 이세시의 교외를 달려 넓고 깨끗한 버스 정류장에 내린다. 내궁으로 가려면 상징과도 같은 우지바시라는 커다란 목조 다리를 지나 들어가게 되는데, 다리 앞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또 별도로 있다. 얼마나 많은 방문객들이 오는지 짐작이 간다. 품이 넉넉한 까만색 정장과 노타이 차림의 할아버지들과, 가죽 자켓의 큰 소리나는 오토바이를 탄 마초들이 뒤섞여 있다.

다리를 건너 내궁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침 일찍 비가 와서 더욱 진해진 신선한 녹색의 내음과 바둑알 크기의 자갈이 깔린 길에서 나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 같이 깨끗한 옷차림에 정중한 몸가짐이다. 누구도 서두르거나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정원이 만명 쯤 되는 초등학교의 학부모 참관 수업에 가는 느낌이다. 일찍 참배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은 도리이를 지날 때마다 돌아서서 목례를 한다. 아마 어떤 신에게 무엇인가 빌고 있겠지. 나는 종교는 없지만 성당이나 사찰에서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 없겠다. 나 뿐 아니라 드문드문 보이는 목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외국인 관광객 일 것이다.

깨끗한 물이 진입로 옆으로 흐른다. 놀라울 정도로 깨끗하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여 물고기가 산다면 숨을 곳이 없을 것 같다. 이 정도 깨끗한 물과 수량을 가지고 있는 곳은 한국에서 보기 어려웠다. 확실히 한국보다 젊은 땅이다. 참배 전에 이곳에서 손을 씻거나 하는 것 같다. 일본의 신사 앞의 물은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을 씻거나 입을 헹구는 용도다. 더 걸어 들어가 내궁에 다다른다. 크게 건물 몇 동이 있는데, 각자 다른 신을 모신다고 한다. 그 중 가장 깊숙하고 사람이 많은 곳이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신사이다. 이곳만은 가까이 접근이 불가능하고 사진 촬영도 금지된다. 특별히 예약한 소수 인원만 내부자의 인도하에 직접 참배가 가능한 것 같다. 특별히 더 잘 차려입은 중년의 남성들이 신관 복장을 한 남자의 인도를 받아 건물의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동창생 보다는 중견 기업 임원처럼 보였다.

그 유래와 상징성과 다르게 건물 자체는 초라해 보인다. 건물 자체에 덧붙여진 화려한 장식 등은 전혀 없으며 딱히 역사나 고풍이 깃들어있지도 않다. 심지어 나무도 새것 같다. 이는 ‘식년천궁’이라는 독특한 관습 때문이다. 20년마다 새로 건물을 짓고, 기존 건물은 허물어버린다. 즉, 지금 건물도 최대 20년 이내 지어진 것 이라는 의미다. 한국에서는 허가되지 않는 재건축 방식이다. 이런 20년 주기의 재건축과 이주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아 보이는데, 나는 이러한 반복 행위 자체가 그 영원성과 관련있지 않을까 추측한다.

돌아다니다 보면 오랜 역사 때문인지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 들이 많다. 그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세 개의 작은 돌을 모아 놓은 곳인데, 신령한 힘이 있다고 믿어진다고 한다. 건물을 이전하여 지을 위치를 표시해 놓는 곳이라는 설명을 나중에 읽었다. 따뜻한 기운이 나온다고 해서 사람들이 손을 올려보고 있었다. 나도 손을 올려 보았는데 듣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서 조금 신기했다. 현대에 와서 미신이나 전설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눈으로 보는 사물과 엮어내어 만든 이야기들이 없다면 여행을 다니는 재미는 많이 떨어질 것 같다. 수 천년을 믿어온 전설, 전승, 미신, 옛 이야기 들이 최근 몇 백년 사이에 모두 것이으로 부정 당하고 있다. 그 몇 백 년 사이의 지식이 영원할 것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다시 버스를 타고 외궁으로 향한다. 정확하게는 역으로 돌아와서 역에서 다시 시작한다. 외궁은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내궁보다는 그 번잡함이 훨씬 덜했다. 아침 이른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여기도 관광 침체기를 겪고 있는지 문을 연 상점 들이 많이 없어 보였다. 깨끗하고 꼼꼼하게 빈틈없이 커다란 돌로 메꾸어진 길이 걷기 편했다. 하지만 만약 시간이 없다면 내궁만 보고 외궁은 꼭 보지 않아도 좋겠다. 관리 상태나 사람들, 볼거리, 숲의 울창함 등 모든 것이 외궁은 내궁만 못했다. 모든 것이 내궁의 복제로 보여 휙 둘러보고 다시 역으로 향했다.

다시 역으로 걸어간다. 시간이 남았길래 최단거리로 가지 않고 빙 둘러 가기로 한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파스모 카드를 충전하고, 삼각김밥 하나를 사서 역전 벤치에 앉아 먹었다. 역에서는 끊임없이 참배객들이 나오고 버스는 이들을 가득채워 내궁으로 달려간다. 서둘러 본 탓에 다행히 두 시간안에 모두 둘러보고 열차 출발 까지는 십분 정도가 남아있다. 아침에 사온 빵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빵으로 배를 채우기 싫었다. 또 빵은 열차 안에서 먹어도 괜찮은 것 같지만 삼각김밥은 부스럭거리는 것이 왠지 민폐 같았다. 여행 시작할 때 후쿠오카의 오호리 공원에 앉아서 한가함을 즐긴 후 이런 여유를 가져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다시 특급 미에 기차에 올라탔다.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더 길게 느껴진다. 한참을 달려 나타난 나고야 역과 그 근처의 고층빌딩 군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그곳까지 이어진 철도를 따라가는 길 위에서 나는 우주 정거장에 도킹하는 우주선에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고야 역에 도착하기 조금 전에 이치란 라멘을 먹어보기로 결심했다. 정작 본고장인 규슈와 후쿠오카에서는 먹지 않고 나고야에 와서 처음 접해본다. 후쿠오카에서는 그 끔찍하게 긴 웨이팅 후기를 보고는 도저히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2시가 넘은 애매한 시간이고, 사람이 없으리라 예상했다. 나고야 역을 나와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야 했다. 지하 아케이드를 통해 갈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러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아 지상으로 걸어가기로 한다.

어제는 서쪽 출구 쪽만 살펴봤는데 동쪽 출구로 나오니 번잡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도 이 정도의 번화가는 찾기 쉽지 않다. 금요일 밤의 강남역과 사람 수는 비슷하지만, 그 규모는 이쪽이 더 크다. 물론 나고야보다는 도쿄가 훨씬 더 번잡하다. 신주쿠 역의 횡단보도와 지하철 개찰구 규모를 처음 봤을 때 놀란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마치 신도림 역을 4개 쯤 이어 붙인 모습 같았다. 일본의 인구는 2010년 즈음 부터 감소 중이라고 한다. 한국도 4년 전부터는 감소 중이니 딱 10년 차이를 두고 인구 감소가 시작되었다. 인구 수와 번화한 모습으로만 따지자면 절대 이 모습을 따라잡을 수 없겠다. 아무튼 아침에는 이세 시의 청정 자연에서 깨끗한 물에 손을 씻다가 갑자기 나고야에서 주말을 즐기러 나온 수 많은 젊은이들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나고야에서도 이치란 라멘 그릇을 내 앞에 놓기까지 30분이 걸렸다. 라멘을 후루룩 마시고, 사전에 주문을 받고 주문도 극히 빨리 서빙되는, 식사를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하는 시스템임에도 30분이나 걸렸다. 줄의 앞쪽에는 한국에서 온 젊은 청년들이 한국 여성과 일본 여성을 비교하며 떠들고 있었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곳이 아닌 나고야나 소도시들은 항공료도 비교적 싸서 친구들과 여행오기는 좋을 것 같다. 도미토리와 이치란으로 점철된 여행이라면 젊은이들도 경제적 부담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똑같은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을 가진 이치란 라멘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나고야 성으로 간다. 아이폰에 파스모 카드를 심고 이걸 이용하니 전국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남은 돈은 삿뽀로에서 귀국하기 전에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몇 개 사서 해결 할 수 있었다. 나고야 성 근처에도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 사람들은 여유로운 일상을 즐기나 했더니 오늘이 주말인 것 같았다. 한가로이 나무 밑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부러워보인다. 커피를 마시는 여유보다는 가족과 함께하는 주말이 부러워보였다. 오랜 기간 여행을 하니 이제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관람을 마치고 나올 때 쯤 입장한 나고야 성은 오사카 성과 마찬가지로 근대에 와서 새롭게 만든 콘크리트 건축물로 천수는 보수 공사 중이라 입장할 수 없었다. 대신 다이묘가 거주하고 외부의 방문 인사를 접견하는 기능으로 쓰인 혼마루 어전은 대대적으로 새롭게 건축하여 관람할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복원을 하며 마침 최근에 작업이 완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일본 성을 가면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 같은 말을 쓰는데, 중심부인 천수부터 가장 가까운 내부, 한겹 성 밖으로 나간 곳, 거기서 한겹 더 나간 곳 등을 단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어전이니 만큼 권력자를 접견하려면 복잡한 복도를 겹겹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 바닥의 높낮이, 그리고 섬뜩하게 묘사된 맹수 그림들은 권력의 상하 관계를 현실로 소환한다. 돌아나오는 길에 보이는 부엌 등도 흥미로웠다. 아마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어전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명나라 사신을 접견 했을 것이며, 여기서 화친은 없으며 정유재란을 일으켜야겠다 결심했을 것이다. 그 결심 때문에 한국인은 최대 백만명이 죽었다. 또 한국에서 ‘에비’라는 말이 어린아이들을 겁주는 표현으로 만들어졌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막 문을 닫고 있었다. 입구에서 안내해주던 아저씨가 5시까지 마지막 입장이라고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빨리 뛰어오라고 소리친다. 5시가 살짝 넘었는데 그래도 이런 융통성은 있나보다.

성을 둘러 나오다보면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있는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과 돌을 볼 수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로 나고야 성 건축시에도 그 수완을 발휘했다고 하는데 이 성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울산왜성, 며칠 전에 둘러보았던 구마모토 성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사진의 돌은 이 나고야 성 건축에 쓰인 돌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하고, 어디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돌을 다듬어 이용했다고 한다. 그의 동상도 실제 그가 건축을 감독했다고 여겨지는 돌 위에 세워 놓았다.

다시 나고야 역으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간다. 지하철 나고야 성역에 도착해서 건너편을 살펴보니 일본과 서양 양식이 섞인 오래된, 커다란 건물이 눈에 띈다. 구글 맵이 이 건물은 시청이라고 말해주었다. 조금 더 남쪽으로는 나고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추부 타워도 있었지만 가보지는 못했다. 이세신궁을 보느라 오늘 하루를 다 쓴 탓에 사실 가보고 싶은 곳을 못 둘러봤다. 나고야 과학관이나 아츠타 신궁도 가보고 싶었지만 언젠가 나고야에 올 기회가 있다면 쉽게 둘러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미뤄두었다.

나고야역으로 서둘러 돌아온 이유는 특급열차 시나노를 타고 마츠모토시로 가기 위해서이다. 오늘 하루 종일 역사 코인라커에 맡겨 놓았던 짐을 찾았다. 열차에서는 특별히 가장 앞 자리를 예약하려고 했으나 인기가 있는지 누군가 한 자리를 예매했다고 했다. 텅텅 빈 1등석 칸의 가장 앞 두 자리에 나란히 앉아가는 것은 민망한 일이라 그냥 앞에서 두 번째 자리를 달라고 했다. 시나노 특급열차는 나고야와 나가노를 잇는 열차로 특별히 멋진 경치를 볼 수 있어 유명하다. 가장 앞 자리에 앉으면 조종석 앞까지 유리로 훤하게 들여다보인다. 계곡와 협곡을 따라 산속을 달리는데, 특히 우측에는 일본 알프스라고 불리는 3000m 이상 급 고산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날씨 좋은 낮이면 경치를 즐길 수 있겠으나 나는 나고야 역을 떠나자 금새 날이 어둑해져서 약간의 노을 풍경 밖에는 살펴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도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준령고봉들임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일본 알프스를 찾는 많은 여행객, 여행 상품이 있다.

열차에 앉아있는 사이 파란색과 붉은색이 서로 다투던 하늘은 어느 사이에 깜깜해졌다. 깊은 계곡 속, 빛이 없는 공간을 홀로 달리는 열차는 마치 은하철도999를 연상케 했다. 열차 기관사와 그 보조, 그리고 나보다 빨리 첫 번째 줄을 선점한 ‘중국인’이 아닐까 생각되는 관광객 두 명, 그리고 나. 모두 네 명이 깜깜한 우주 공간을 날아간다. 두 시간 정도를 달려간 열차는 마츠모토 역에 도착했다. 역사 밖으로 나오니 두 시간 전의 나고야와 완전히 다른 공기의 질과 온도가 느껴졌다. 마츠모토 시는 고봉사이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도시다.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바다를 접하지 않은 도시이다. 또 이번 여행 전에는 이름도 알지 못했던 곳이다.

오늘 하루는 신칸센을 타지 않고도 이세시를 왕복하고 나고야를 거쳐 마츠모토까지 달려왔다. 어서 숙소도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식사는 역 앞에 바로 보이는 맥도널드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의외로 맥도널드에는 서양인 관광객들이 눈에 보인다. 여기에는 무엇을 보러 왔을까? 이 고장이 최고의 와사비 산지로 유명하니 그걸 맛보러 오진 않았을 텐데. 곧 연인이 될 것 같은 고등학생 커플들 사이에서 빅맥 라지 세트를 먹었다. 다들 들키지 않으려는 은밀한 연애를 하는 듯 조용조용 소근거린다. 나는 주말 저녁 이 동네에 있을 것 같지 않은 행색의 사람 같았다. 후쿠오카, 나가사키, 히로시마, 나고야를 거쳐 마츠모토까지 나는 점점 한국인이 희박한 곳으로 들어간다.

숙소는 호텔 M 마츠모토라는 곳으로 정했다. 들어가는 입구를 찾는데 조금 오래 걸렸지만 역에서 가깝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한 숙소였다. 캡슐 호텔에 몇 박을 해보니 이 캡슐이라는 것에도 급이 보였다. 이를 테면, 올라가는 사다리가 튼튼하고 밟기 좋게 되어 있는지, 너무 위아래 넓은 간격으로 되어 있지 않은지, 손잡이도 양쪽에 붙어 있는지, 캡슐 내부는 넉넉한 공간인지, 원통형이라 실제 공간이 좁은 경우가 있지 않은지, 직육면체 형태로 파여 있어 충분히 넓게 쓸 수 있는지, 내부의 조명, 콘센트는 넉넉하거나 누워서 컨트롤 할 수 있는지, 심지어 어떤 곳은 이어폰을 꼽아 라디오도 들을 수 있다. 입구를 가리는 커튼은 두꺼운지, 빈틈 없이 들어오는 빛을 가릴 수 있는지, 안쪽에서 커튼을 걸어 잠글 수 있는 고리 같은 것은 있는지, 만약 맞은 편에도 침대가 있다면 비스듬하게 교차로 배치하여 내부가 너무 훤히 보이지 않도록 했는지 등등 신경 쓰면 숙박하는 사람에게 조그만 편의를 줄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이 보였다. 숙박업을 하려면 일단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자봐야 할 것 같다.

보통 젊은이들이나 해외여행객이 많이 이용하는 도미토리형 숙박들은 이러한 편의 사항들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짜피 한번 오고, 하루 이틀 잘 사람들인데 뭐. 그냥 나무로 된 삐걱거리는 가장 싼 침대,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뻐근해지는 매트리스로 숙박업을 시작한다. 반면 일본 내 출장객이나 단기 여행객들이 숙박하는 내국인 대상 업소, 혹은 체인 캡슐 호텔들은 깜짝 놀랄 만큼 섬세하게 이런 것들을 배려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늘 하던 루틴대로, 씻고 옷을 갈아입고, 세탁을 하고, 건조기를 돌리고, 내일의 일정과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 정확히는 캡슐 안으로 쏙 누웠다. 로비에는 엄청난 수의 만화책이 있어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데 슬램덩크니 드래곤볼이니 하는 유명 만화들이 있었다. 특이하게 정수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얼음물을 상시 비치해 따라 마실 수 있었다.

참고로 마츠모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특히 점을 찍어 놓은 호박으로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우리 동네 과천 현대 미술관 앞마당에 이 할머니의 호박이 놓여있는데, 내가 재미있어하는 가느다란 인연을 찾는 재미를 느꼈다. 나중에 아는 척 할 거리가 하나 늘었다. 근처에 쿠사마 야요이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 있다고는 하지만, 역시 방문할 시간은 없었다. 아침 일찍 나와 마츠모토 성을 보기로 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어느 덧 여행도 절반을 넘어가고 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히로시마, 나고야

환풍기인지 선풍기일지 모를 소리에 잠을 설쳤다. 어느 쪽 기능도 잘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미토리 이층 침대 중 위쪽에 누웠더니 천장에 붙어 있는 팬 소리가 시끄러웠다. 헐거운 커버 때문에 나는 불규칙 소음이 여간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이 아니다.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서 이른 열차를 타기로 했다. 시간도 없거니와 이 숙소에서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잠들어 있는 깜깜한 시간에 살금살금 샤워실로 간다. 모든 게스트하우스 샤워실의 구조가 어찌나 똑같은지 놀랍다. 짧은 여행의 중간 쯤 지났을 뿐인데 샤워 루틴이 생겼다.

오늘 아침의 목적지는 이츠쿠시마 신사이다. 한국에서 “이츠쿠시마 신사”에 다녀왔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바다 위에 도리이가 떠 있는 사진을 보여주면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데,”라고 답할 것이다. 아직 실제 사진을 보여준 적은 없다. 일본에서는 유명한 여행지지만 한국 사람들은 많이 방문하지 않는 것 같다. 히로시마를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인은 대부분 후쿠오카, 도쿄, 오사카 그리고 삿뽀로에 몰려있다. 일본 관광청이 하는 일은 외국인 관광객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분산 시키는 것이다.

이츠쿠시마 신사까지는 택시로 가는 사람, 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 심지어 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2023년 방문한 G7 정상들이 배를 타고 이동했다. JR패스를 이용하는 관광객에게는 히로시마 역에서 미야지마구치까지 가는 JR일반 열차를 타고 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 저렴하다. 저렴한 것이 아니라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차도 무료로 이용할 뿐더러 미야지마 섬을 오가는 페리선을 공짜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워낙 관광객이 많아 여기까지 종점인 사철도 있다. 또한 JR페리와 다른 기업이 운영하는 페리 왕복을 운영하고 있다. JR패스 이용자가 괜히 돈을 내고 이쪽을 이용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부지런한 샤워를 하고, 짐을 싸들고는 숙소를 나선다. 이른 출근시간이라 본격적인 러시아워는 아니다. 똘똘한 학생과 성실한 샐러리맨만 보였다. 배낭을 들쳐매고 갈 수는 없으니 코인라커를 찾아 짐을 맡긴다. 저렴하면 200엔, 비싸면 500엔 정도를 받는다. 구글 리뷰에는 더 저렴한 가격으로 나왔으나, 최근에 가격이 많이 올랐나보다. 인플레이션이 비켜갈 틈새는 없다. 나고야, 히로시마 등 커다란 역사 내에서는 대부분 500엔이었다. 짐을 맡기면 바코드가 출력된 종이 하나를 받을 수 있다. 찾을 때 이 종이를 스캐너에 스캔하면 문이 자동으로 열려서 편리하다. 다만, 이 종이를 잃어버릴 경우 전화를 해야 한다. 편리와 불편도 동전의 양면이다.

학생들의 이른 등교길과 섞여서 기차를 타고 30분 가량을 달려간다. 앉아있을 순 없어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몇 개의 커다란 강을 건너간다. 일본의 다른 대도시와 닮았다. 히로시마도 바다를 낀 만에 위치해 있고 도시 가운데를 커다란 강이 흐르고 있다. 어제 원폭 기념관에서 본 모두가 불타 없어져버린 너른 풍경과 대비된다. 모든 것이 그 이후 새로 세워졌으리라. 서서 다리가 슬슬 아파질 무렵 다다른 미야지마구치 기차역은 소박한 기차역이다. 서울의 1호선을 타고 신도림을 지나 한참 가면 나오는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할 역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름 모를 역과 마찬가지로 선로를 넘어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역사 밖으로 나왔다.

대부분 관광객들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식사 할 시간이 없으므로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하나씩 샀다. 이를 손에 하나씩 들고는 페리를 타러 걸어가는 길에 먹었다. 생각해보니 편의점 빵으로 떼우는 식사는 20대 이후 해본적이 거의 없다. 젊었을 때 신촌이나 이대역을 돌아다니던 기억이 났다. 20대에는 고등학교를 다녔던 과천을 벗어나 그런 곳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신촌역 상점들의 불이 모두 꺼졌고 나는 우유를 그 때의 절반만 마신다. 기차에서 내린 한무리의 사람들이 내가 편의점에서 빵을 사는 동안 모두 선착장으로 몰려가서 거리는 한산했다. 마치 북미에서 온 버팔로 떼가 쓸고 간 것 같다.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쬐어 아침부터 조금 덥게 느껴졌다.

페리는 오래되어 보이지만 커다란 배였다. 히로시마 만 안쪽에서 험한 파도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니 퇴역이 가까워온 노령의 선박을 투입한 것이 아닐까? 노령이지만 약 30분 간격으로 부지런히 섬과 선착장을 오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덕분에 줄서 기다리는 시간도 길지 않았다. 배 안에도 앉아서 구경할 자리가 넉넉했는데 아침 10시가 넘어 돌아오는 시간에 살펴보니 관광객이 두 배는 늘어나 있었다. 배를 타면 짧은 거리라 금방 섬에 닿는다. 섬 가까이 가면 그 유명한 물 위에 떠 있는 도오리 (썰물에는 땅위에 서있는) 가 보이는데, 사람들이 온통 그 쪽에 몰려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배가 기우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츠쿠시마에는 다양한 볼거리나 관광명소가 있는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 섬 정상에 올라가 히로시마 만을 둘러볼 수도 있고, 산을 넘는 트래킹 코스를 지나 섬 건너편의 신사들을 방문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수 백 km를 이동해야 하므로 이츠쿠시마 신사와 그 주위만 둘러보기로 했다. 이 곳은 일본의 3대 절경이라는 말도 있고, 신성한 산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 유명세에 비해서 딱히 느껴지는 감탄은 없었다. 3대 절경이라는 사실도 방금 기차를 타고 오면서 검색하며 알았고, 입구의 커다란 돌에 방금 인터넷으로 본 ‘일본삼경 미야지마’ 글자가 있었다. 나머지 2경에도 똑같은 돌이 있는지 궁금했다.

배에서 내려 해안가를 따라 조금 걸어가다보면 유명한 도리이가 다시 보이고, 본당 건물이 나타난다. 일본 신사 특유의 강렬한 주홍빛으로 칠해져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본당 건물 전체가 물 위에 떠 있는 밀물 시간이었다. 관람객은 굽이굽이 건물 내 통로를 따라 신사 내부를 살펴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건물 내 감흥을 느낄 만한 것 보다는 본당 앞 쪽에서 바라보는 도리이와 바다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어느 중년의 일본인 부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서 한 장을 찍어드렸는데, 나 보고 찍어줄까? 물어보길래 괜찮다고 사양했다. 혼자서 포즈를 잡고 누군가에게 찍히는 것이 어색했다. 옆으로 비켜나 조용히 혼자 폰을 들고 셀카를 찍었다.

여기도 곳곳에 사슴이 돌아다닌다. 나라 공원의 사슴과 다르게 센베를 주식으로 하는 것 같진 않고 관광객에게 달려들지도 않는다. 사람과 서로에 의지하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의 상태로 각자 살아가는 것 같다. 번잡한 신사보다 주위의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잠시 앉아서 바다를 살펴보기도 하고, 가게를 열 준비를 하는 주인들의 바쁜 이야기를 들었다. 여행에서는 이렇게 시간의 나만의 흐름을 가지는 시간이 좋다. 세상의 시간은 어디서나 그대로 이지만 관찰자의 시선이라면 나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도록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미야지마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보낸 후 다시 히로시마 역으로 돌아왔다. 히로시마 역에서는 에키벤을 샀다. 에키벤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들이 있다. 역마다 고유의 에키벤을 만들어 판다거나, 이 것을 먹기 위해 그 지역으로 여행을 한다거나. 한가지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국민성이 만든 기차 안에서 먹도록 만든 도시락이라 모두 차가운 음식 뿐이다. 냄새 없이, 오로지 식감과 혀의 맛으로 먹을 수 밖에 없다. 즉 도시락이 맛 있는지 맛 없는지는 취향의 문제라고 하더라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덜 맛있게 먹는 느낌이다. 아무도 데워달라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젓가락을 주지 않아서 물어보니 젓가락은 도시락 안에 들어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 신칸센을 타고 가는 가장 장거리 구간이다. 히로시마에서 나고야까지. 500km가 넘는 거리지만 두 시간 조금 넘으면 닿을 수 있다. 중간에 오카야마, 히메지, 고베, 오사카, 교토 구간을 모두 지나쳐간다. 히메지, 고베, 오사카, 교토는 모두 수 차례 방문했던 곳이다. 오카야마의 고라쿠엔이나 오츠시의 비와호 등은 꼭 방문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비와호 주위를 도는 렌터카 여행 등은 꼭 해보고 싶다. JR패스로는 직행을 탈 수 없어 중간에 한번 갈아타야 한다. 교토역을 지날 때는 오늘 쪽으로 동사의 오층탑이 보였다. 한달 전에 가족과 둘러보던 그 곳이다. 문득 같이 하는 여행이 그리워졌다.

나고야 역에 도착하니 두 시가 넘은 시간이다. 지하철로 갈아타고 두 정거장 가량 이동하여 사코역에 내렸다. 오늘 이렇게 바삐 움직인 이유가 있다. 오후의 목적지는 도요타 산업기술 기념관이다. 이번 여행 유일의 ‘신사, 정원, 공원, 박물관, 성’이 아닌 곳이다. 나고야는 공업도시로 특히 도요타 자동차의 본사가 있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엄밀히 말하면 도요타 자동차의 본사는 근처에 있는 도요차 시에 위치해 있으나 도요타를 창업한 곳은 나고야의 이 산업기술 기념관 위치라고 한다. 도요타는 일본 기업으로는 가장 크고, 세계 자동차 기업 중에서는 테슬라 다음의 시가 총액을 자랑한다. 판매 대수 기준으로는 가장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회사이다.

관람은 유료이지만 무료 코인라커를 쓸 수 있어 편리했다. (이 정보를 미리 알아 나고야 역에 짐을 맡기지 않고 들고 왔다) 관람은 5시까지 가능했는데, 조금이라도 여유있게 둘러보려면 최소한 두 세 시간은 필요하니 꼭 시간 여유를 두고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 섬유 기계관과 자동차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섬유 기계관에서 시간을 너무 쓰면 뒤 쪽의 자동차관을 관람할 시간이 없으니 적절히 시간을 배분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와 같이온 부모,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 커플,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한국 가족 외에는 외국인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입장하면 압도적인 크기의 원형 방직기계가 나타난다. 도요타는 원래 자동 방직기계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베틀로 천을 짜던 시기에서 벗어나 자동화된 기계를 이용하여 생산량이 크게 늘었는데 이 것을 원형으로 구성해서 같은 공간에서 훨씬 더 집약적인 생산이 가능했다고 한다. 이러한 몇 가지 핵심 특허를 개발하고 이 권리를 영국에 팔았는데 이 것이 바로 자동차 제조에 도전하게 된 자본이 되었다. 성공한 기업 어디에나 있는 창업주의 몇 가지 신화적 고난 극복의 이야기들을 홍보하고 있다.

자동차를 처음 만들 때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적극 활용한 것 같다. 쉐보레의 자동차를 몇 대 수입해 모든 부품을 분해하여 조립 과정을 기록하고, 그 중에 핵심 부품을 독자 개발하여 그 부품을 대신 끼워 넣어 조립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한다. 방직기를 만들 때 보유했던 금속 단조, 주조 기술에 자신이 있었는지 원래 모델보다 더 내구성이 강한 부품을 만들어 더 높은 엔진 출력에도 버티는 실험을 반복했다. 자동차 개발의 특명을 받은 그룹의 사진을 보니 지금 회사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초창기 시절이 생각났다. 새로운 일은 모방에서 시작하기 마련이다.

방직기 등은 크게 관심이 없어 눈도장 찍듯 둘러보고 자동차 전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만 수입차 딜러 쇼룸처럼 자유롭게 탑승해보거나 조작해보는 것은 어렵고 겉에서 둘러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전기차나 그들이 자랑하는 하이브리드 차량의 엔진이나 설계 등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도요타 쪽은 진짜 쓰였으나 기술의 발달로 퇴역한 기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실제 프레스나, 도색 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현대 쪽은 자동차 생산의 과정을 더 Conceptual 하게 보여주는 느낌이다. 어린이는 현대 쪽을 좋아할 것이고, 어른은 도요타 쪽을 더 좋아할 것 같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동차 관을 열심히 둘러봤다. 전기차나 렉서스 등 고급차의 초기 차량들도 관심이 있었다. 마감 방송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검색해보니 시시마루라는 라멘집이 괜찮아 보였다. 마침 걸어오는 길이었다. 도착했더니 가게 문앞에는 줄잡아 20명이 줄을 서 있었다. 나는 보통 줄을 서서 먹지 않는다. 다시 구글맵을 열고, 길 건너편의 마이카리라는 카레 집을 방문했다. 그래, 일본와서 카레 한번 먹어야지. 그런데 메뉴를 키오스크에서 터치할 수 없게 막아 놓았다. 카레는 품절이란다. 같은 장소의 마츠야에서 규동을 주문했다. 몸의 많은 부분의 규동화 되어가는 느낌이다.

숙소로는 나고야역 근처의 와사비호스텔이라는 곳을 예약했다. 역 주위라 환경이 좋지는 않다. 그래도 실내는 어제의 숙소보다는 훨씬 낫다. 이번 여행은 아무 계획 없이 돌아다니기에 내일 어디를 방문할지 정하는 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기회가 아니면 절대로 오지 않을 곳, 한국 사람들이라면 거의 가지 않을 곳, 네이버 검색에 절대 나오지 않는 곳이 목표다. 마음에 드는 그러한 곳을 한 곳 정하고 내일 아침의 이른 기상을 기약하며 오늘도 잠든다. 오늘도 4만보를 넘게 걸어 다녔다. 오늘 저녁 먹은 규동으로 체력유지가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구마모토, 히로시마

구마모토 성을 보러 가기로 한다. 일본 여행을 역사와 유물을 중심으로 다니면 성, 절, 신사, 정원, 성, 절, 신사, 정원을 반복하게 된다. 이럴 때는 색다른 볼거리를 찾게 되는데 네이버 같은 대한민국 포털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대다수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한 광고 글로 의심된다. 인플루언서라는 분들도 공짜로 인플루언싱을 해주진 않을 것이다. 이럴 때 나는 구글 맵에서 ‘sightseeing spot’을 검색한다. 경험상 한국인이 덜 가면서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볼거리들을 추천해주곤 한다.

구마모토 성 까지는 나가사키에서도 봤던 오래된 노면 전차를 타고 간다. 노면 전차를 아직도 생산하고 있을까? 전기차 시대에 아마 아닐 것이다. 일본의 구형 기차들은 단종되면 부품이 다시 생산되지 않아 오래된 기차에서 여분의 부품을 빼내어 돌려 막기를 한다고 한다. 이 것이 큰 사고의 원인이 된 적이 있다고도 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오래된 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비쌀 지경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노면 전차란 녀석은 승하차도 불편하고, 탑승 인원도 적고, 정해진 노선만 다닐 수 있기 때문에 불편한 대중교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이 휘어지는 저상 전기 버스 등 탈 것이 훨씬 나은 대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나 저기나 뭔가를 바꾼다는 것은 여기나 저기나 쉽지 않겠지.

노면 전차는 우리나라 지하철처럼 양쪽에 마주 앉는 곳이 있고, 가운데 두 명 정도가 설 공간이 있다. 사람이 많을 때는 가방을 앞으로 맨다던지, 내릴 곳 한 정거장 전에 앞 쪽으로 이동한다던지 하는 규칙이 있는 것 같다. 역에서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혼란스럽지 않고 모두가 자기의 다음 위치를 알고 있는 듯 움직인다. 나는 그런 규칙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니까 적당히 자리를 띄어 앉는다. 폭이 좁아 마주 앉은 사람은 조금 과장해서 쎄쎄쎄를 할 수 있어 보인다. 시선이 자주 마주쳐서 민망하기도 하다. 다행히 일본도 한국과 다르지 않아 모두 스마트폰을 하고 있다.

구마모토 성은 2016년의 지진으로 많은 곳이 무너져내리고 현재도 보수 공사 중이다. 성벽이나 천수, 건물 등이 무너져 내렸는데 이를 모두 보수하고 개관 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성 입구 위로 거대한 공중 통로를 설치하고 관광객들은 그 위로 돌아다니게 하였다. 추가 붕괴할 수 있는 위험한 곳에 관광객의 접근을 막기 위한 궁여지책인 것 같지만 굽이굽이 걷지 않아도 되고 성벽을 위쪽에서 조망하기에는 이쪽이 더 나은 듯 했다. 무너진 곳은 임시로 콘크리트를 부어 추가 붕괴를 막아 놓았는데, 아마 하나 씩 복원해 나가지 않을까 싶고 복원 공사를 위한 기부를 받고 있었다. 위 사진은 옛 벽의 경사가 너무 완만하여, 급경사로 만들기 위한 추가 공사를 한 흔적이라고 한다.

세계의 오래된 랜드마크 건축물을 보면 그 당시 사회 전체가 어떤 것에 매진 했는지 상상이 된다. 피렌체의 두모오 성당이나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에 들어간 돈으로 적어도 수년간의 빈민을 구휼 할 수 있었을 텐데 당시 사람들은 대신 위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선택을 했다. 여기 동원된 수만명의 사람들은 단순히 누가 시켜서, 혹은 돈을 받기 위해 이러한 건축물을 만든 것이 아닌 것이다. 그 들은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여 현생 혹은 내세를 살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돌을 깎고 쌓았던 것 같다. 구마모토 성벽을 보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성을 쌓은 것은 무사 계급의 사무라이들이 아니라 그들이 부리고 있던 양민들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돌을 깎고 나르고 쌓았던 것은 본인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서다. 무사 계급의 유지나 그들에 대한 복속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시대는 전쟁이 잦고, 패배의 댓가는 잔혹 했을 것이다.

구마모토 성의 내부는 옛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두번이나 방문했던 오사카성과 마찬가지로 겉모습은 그럴 싸 했지만 내부는 박물관 같은 모습이다. 스마트폰 앱을 다운 받으면 한국어 안내도 지원해주고 있었다. 안내 내용은 영어나 일본어에 비하면 훨씬 부실 했다. 구마모토까지 방문하는 한국인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에 당연한 일이겠다. 내가 방문한 성 중에는 히메지 성과 마츠모토 성이 내부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오래된 성을 관리하는 일도 꽤나 힘든 일인지 기둥을 해체했다 다시 새 것으로 교체하고 복원하는 대공사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이 성을 축조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선봉에 서서 한국을 침략했고 울산왜성 등 한국에서도 성을 쌓았다. 이때 얻었던 여러 차례의 축조 경험을 집약한 구마모토 성은 일본 성 중에서도 최고의 기술과 견고함을 자랑한다고 한다. 실제 메이지 유신 때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당시 최신의 무기로도 함락되지 않았다고 한다. 덧붙여 정유재란에서 패배 후 퇴각할 때 울산에서 많은 한국인 포로들을 끌고 갔는데, 그들이 구마모토에 정착한 울산정(울산마치)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도 역사적인 왜인촌이 있을까? 동부이촌동이 그것일까?

구마모토 성을 둘러보고 노면전차에 몸을 실어 다시 역으로 향했다. 밤에 잠들때 마다 욱신거리는 다리 때문에 내일은 더 편한 일정으로 다녀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아침에 다리의 통증이 없어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오늘도 히로시마로 가서 걸어다녀야 할 일정이 잔뜩이다. 시간이 없고 마음이 급하다. 구마모토 역 안에 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10시와 11시 사이, 식사를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명품 가방을 든 날씬하고 세련된 수트 옷차림의 중년 아주머니와 둘이 식사를 했다. 기업의 임원처럼 보이는 이런 분도 요시노야에서 토핑이 없는 규동을 먹는다.

구마모토 역 대합실에서 잠시 대기했다.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 뿐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어딜 간 걸까? 50세 이상 이용가능한 대합실과 50세 이하 용 대합실이 나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1분도 늦지 않게 도착한 신칸센에 올라 히로시마까지 달려간다. 남쪽으로 내려온 길을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 시모노세키 해협을 지하로 뚫고 혼슈 섬으로 진입한다. 신칸센을 타면 상상했던 물리적 거리와 이를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 개념에 혼란이 생긴다. 서울-부산 간 거리는 되어 보인다. 사악한 가격이지만 약 한시간 40분이면 히로시마에 닿을 수 있다.

히로시마에 내리면 규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규슈는 동양인 관광객, 특히 한국과 중국인이 대다수였다면, 히로시마나 오사카, 도쿄는 서양 관광객의 수가 크게 늘어난다. 신칸센 1등석 그린샤의 요금은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싸다. 기본적인 신칸센 요금이 우리나라의 KTX보다 두 배 정도 비싸다고 느끼는데, 여기서 1등석은 30% 정도는 더 내야 한다. 오늘 아침 달려온 구마모토-히로시마 구간도 15만원은 족히 든다. 신칸엔은 사실상 비행기와 경쟁한다. 따라서 신칸센 1등석은 기업 고위직이나 대표, 돈에 구애 받지 않고 업무를 위해 탄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나 같은 배낭에 반바지, 샌들 차림의 여행객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히로시마 구간 부터는 가족 동반의 서양 여행객이 급격히 늘어났다. 아마 모두들 JR패스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리라.

숙소는 Guesthouse akicafe inn라는 삼만원 남짓의 도미토리 룸을 예약했다. 신칸센은 그린샤를 타지만, 숙소는 최하급이다. 시설이 좋지 않고 비싸더라도 많이 걸을 수가 없기에 최대한 역 근처의 숙소를 잡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떠나야했기 때문에 역에서 먼 숙소를 잡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오로지 위치만 보고 선택한 숙소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 최악의 숙소가 되고 말았다. 아직 체크인은 이른 시간이라 배낭을 숙소에 두고 서둘러 히로시마 평화기념 박물관으로 향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곳이라 역에서 가는 버스들이 잘 되어 있고 미리 만들어 놓은 파스모 패스를 편리하게 이용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난 곳이다. 특히 절반 이상은 서양 사람인데,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을 찾아오고 있다. 누구는 승리를 기념하려고, 누구는 단순 호기심으로 찾아 왔을 것 같다. 여기서 모두들 원자폭탄의 피해를 간접적으로 나마 느껴보면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 들은 어린이 원폭 피해자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며 눈물 짓고는 한다. 폭탄은 군인만 골라서 살해하지 않는다.

나가사키보다 규모는 훨씬 크고 둘러볼 전시품도 많았지만, 나가사키 전시관보다 낫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아마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전시를 기획한 사람의 메시지보다는 더 직접적인 참상을 적나라하게 느끼고 싶다면 나가사키 쪽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주로 한국인은 어떤 피해를 입었고 왜 피해를 입게 되었는지가 더 궁금하여 관련 전시물이 있다면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전시관에서 유명한 원폭 돔으로 가는길의 왼쪽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도 있으니 한번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위령비 앞에 생수를 놓고 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피폭시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는 후일담을 듣고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게 해주기 위한 기원인 것 같다.

애매한 시간에 먹은 요시노야 김치 규동 밖에 먹은 것이 없어서, 히로시마풍의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보고자 했다. 멀리 걸어갈 수 없어 근처의 나가타야 라는 곳을 검색해서 들어간다. 의외로 혼자 온 사람은 없고 일본인도 별로 없어 보인다. 혼자 왔다고 말하니 카운터 석으로 안내해주었다. 철판에서 직접 만들어 주는 것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생각보다 만드는 시간이 꽤 걸리고 다 만들어 지면 이제 먹어도 된다고 말해준다. 하루종일 배고픈채 돌아다녀서 맥주 한잔과 먹는 오코노미야키는 정말 맛있었다. 흔히 한국이나 오사카에서 먹는 오코노미야키는 양배추와 밀가루 반죽? 등으로 베이스를 만드는데 여기는 우동이나 소바 중 하나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 혼자 먹기에는 정말 많아서 여자 셋이 온 분이면 두 개만 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어로 주문하면 내가 일본어를 전혀 못한다고 생각하고 직원끼리 방심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직급이 낮은 직원이 완성된 오코노미야키를 건네어 주면서 피자를 떠 먹을 수 있는 것 같은 조그만 철제 스푼?을 주는 것을 깜빡했다. 나는 그런 것을 주는 줄도 모르고, 공용 철판에서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있었더니, 상급자가 내가 들리도록 ‘저사람 저러고 먹고 있잖아.’ 라고 질책하니 직원이 나에게 스푼을 가져다 주었다. 듣기 좋은 말은 아니었다.

이른 저녁 혹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원폭돔을 보러 간다. 원폭이 폭발한 곳은 원폭돔에서 수백미터 떨어진 곳 상공이라고 한다. 따라서 주면의 목조 건물들은 즉시 폭풍에 의해 다 무너졌지만 당시 유일한 석조 건물 (상공회의소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었던 이 건물의 골조는 가까스로 살아 남았다. 이후 이를 보존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있었고 보존하기로 결정한 이후로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많은 보수를 했다. 덕분에 모든 것을 쓸어버린 히로시마 원폭의 상징과도 같은 모습이 되었다. 공중에서 이놀라 게이가 유명하다면, 지상에서는 원폭돔이다.

원폭 돔에서 다시 히로시마 성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오전에 구마모토 성을 본지라 들어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다다르니 이미 관람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처럼 바삐 걸어온 다른 관광객들도 들어가지 못해 발을 돌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부 관람은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걸어왔지만 그래도 코 앞에서 입장 불가라고 통보 받으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히로시마 성은 전쟁 후에도 미군이 임시로 주둔 했던 흔적들이 있다. 배낭 여행자만 둘러볼 수 있는 성 구석구석을 둘러보고는 숙소로 향했다.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했고, 하교하는 고등학생과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숙소 까지는 이 길을 30분 정도 걸어가야 하는 거리다. 걸어갈 체력이 남았으니 걸어가기로 한다.

생각보다 기진맥진해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더 이상 무엇을 먹을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으므로 오는 길에 이제는 익숙하게 생수 한 병과 빵 하나를 샀다. 영어에 능숙한 아가씨가 체크인을 해주었다. 배게와 침대 시트를 나한테 준다. 내가 직접 씌워서 쓰라고 했다. 잠시 나와서 방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굳이 왜 직접 보여주려하는지 의아했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도미토리 룸은 옆 건물 3층에 있다. 체크인을 할 수 있는 까페 건물을 나와 옆 건물로 아가씨를 따라 들어갔다. 3층이니 엘레베이터는 없고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집이 무겁거나 크다면 쉽지 않겠다. 올라가서 발견한 좁은 방에는 어찌나 많은 침대를 넣었는지, 두 사람이 마주보고 지날 공간이 없다. 그 정도가 아니라 왼쪽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와 오른쪽 2층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나란히 마주볼 공간이 없어 서로 교차하며 사다리를 설치해놨다. 내가 배정 받은 가장 안쪽 침대의 2층으로 가기 위해 온전히 바닥을 걸어 갈 수 있는 길이 없다. 사다리를 장애물 넘듯이 넘어서 건너가야 했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퀴퀴한 땀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내 침대 옆에 이 방의 유일한 창문이 있고 조그만 선풍기를 달아서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 그래, 이 것이 내가 원한 최저 수준의 여행이다.

히로시마는 외국인 배낭여행객이 많아 이른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커튼이 처진 침대가 많았다. (사람이 쓰고 있다는 뜻) 나는 내일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나가야 한다. 미리 짐을 싸고, 씻고, 그리고 방에 더 땀 냄새가 가득차기 전에 잠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씻고, 빵을 하나 먹고 내일 출발해야 하는 기차 시간표를 확인하고, 입을 옷을 발 아래, 아니 옆에 개어 놓고 (워낙 침대가 작아 내가 누우면 발이 밖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다) 잠들었다. 오늘은 지옥불 위에서도 잠들 수 있을 지경이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구마모토, 아소산

4일차 여행, 이제 규슈의 남쪽으로 내려간다. 짧은 일정 때문에 규슈 일주 같은 계획은 다음으로 미루고 북규슈 레일패스로 갈 수 있는 가장 남쪽 도시인 구마모토까지만 가보기로 한다. 구마모토에서는 구마모토 성과 스이젠지만 구경하기로 하고, 오전에는 아소산을 일정에 넣었다. 하카타역에서 구마모토행 신칸센을 타는 것으로 아침 일정을 시작한다. 아침 8시가 안되어 숙소를 나왔다. 조용한 게스트하우스는 비수기라 그런지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샤워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수 있었다.

아소산은 아직 활발하게 활동하는 활화산으로 활화산이 없는 한국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광경을 선사한다. 하지만 후쿠오카나 구마모토 관광객들에게 방문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후쿠오카에서 출발한다면 후쿠오카에서 신칸센을 타고 구마모토까지 이동 (50분) 후 아소역까지 기차를 타고 간다. (1시간 반) 중간의 히고-오즈 역 등에서 갈아타야 할 수 있다. 아소역에서는 아소산조 터미널까지 버스를 타고 가야하고 (35분), 마지막으로 아소 산조 터미널에서 화구 근처까지 운행하는 셔틀을 타야한다. (5분) 걸어갈 수도 있다. 대부분의 서양인은 걸어가고, 대부분의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중국인은 셔틀버스를 타는 것이 흥미롭다.

후쿠오카에서 쉬지않고 달려가도 3시간은 걸린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하루를 온전히 써야 한다. 배차가 넉넉하지 못해 기차 시간표, 버스 시간표 등을 잘 맞추지 않으면 중간에 30분 기다리는 일은 흔하니 꼭 유의해야 한다. 구글맵 등으로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여 전날 계획을 세워 움직이는 것이 좋다. 배낭여행자들을 위한 팁을 주자면 아소역의 코인락커보다 아소 산조 터미널의 코인락커가 훨씬 저렴하니,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도 좋겠다.

신칸센은, 이미 두 번을 타 보았다고 그리 흥분되는 일은 아니었다. 어제는 새로 개통한 나가사키행 카모메를 탔고, 오늘은 개통한지 20년 된 구형 규슈 신칸센을 탄다. 확실히 열차가 오래되었다. 그래도 그 속도는 여전하여 구마모토까지 수 많은 마을을 배경으로 돌진한다. 아마 대구에서 부산 정도 거리가 될 것이다. 구마모토 역에서 빨간색 열차로 갈아탔다. 갈아 탄 열차는 아소역 직통 운행하는 열차였다. 좋은 계절, 여름방학 동안에는 관광열차가 다니는 구간이라고 한다. 관광열차는 아소보이?라는 이름으로 오이타까지 규슈를 횡단한다고 한다.

갈아탄 구형 열차도 지정석 권을 예매 했는데 주위에 중국 관광객이 많았다. 소수의 서양 관광객(의외로 혼자 오는 서양 관광객이 많다), 더 소수의 한국 관광객, 다수의 중국 관광객, 통근이나 등학교 목적으로 타는 일본 사람들이 내가 탄 열차의 한 객차에 모여타고 출발했다. 신칸센을 타다 느릿느릿 마을을 휘감는 열차를 타고 달린다. 빨리 달릴 때는 눈치 채지 못했던 자동차, 가로수, 꽃 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서두를 것 외에는 빨리 가는 열차를 탈 이유가 없다.

기차는 꾸준히 고도를 높여서 고원의 산 지형으로 들어간다. 몇 년전의 구마모토 지진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붕괴한 산의 사면, 끊어진 다리 등도 지켜볼 수 있게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기존 다리를 철거하는 것도 돈일 테니, 끊어진 채로 관광 할 수 있도록 남겨 놓고 옆에 새로 다리를 하나 만들었다. 오즈-히고 역을 지나서 호히선으로 접어 들어서는 스위치 백 형태로 운전한다. 정차 후 차장이 기차를 가로질러 뒤 쪽의 운전석으로 걸어가 열차를 후진 시키고, 다시 어느 정도 가서는 다시 앞 쪽의 운전석으로 걸어가 열차를 전진시켜 몰고 간다. 예전에 우리나라 영동선에서도 이와 같은 열차를 한번 타 보았는데, 이제 우리나라는 선로 평탄화 작업이나 터널 개통으로 없어진듯 하다.

이윽고 아소 분지로 진입하는데, 험한 산지 지형을 뚫고 올라오니 또 다시 넓게 펼쳐진 평야가 나타났다. 오른쪽에는 아소산이 나타난다. 이제 다 왔다. 아소역에 열차는 멈춰서고 사람들은 줄지어 아소산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러 오른쪽의 버스 터미널로 이동한다. 티켓은 자동판매기를 통해서 사도록 되어 있는데,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은 사용이 서툴기 이를데 없다. 점원이 한 두명이라도 나와서 도와주면 좋을 텐데. 내 앞에 줄 선 두 명의 중국인 아주머니 들은 한참을 돈을 넣었다 뺏다 하면서 기계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절대 이런 상황에 나서지 않는 난데 버스를 놓칠까봐 걱정되어 내가 돈을 집어 들고 구매를 도와주었다.

아소산은 바이커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굽이 굽이 와인딩 로드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고, 굳이 여기까지 차를 몰고 올라오는 사람도 많이 없어 보기에도 바이크에 애정을 많이 가지신 분들이 떼를 지어 라이딩을 즐기고 있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도 배에 바이크를 실어 규슈 곳곳을 누빈다고도 한다. 한국에 더 이상 갈데가 없다면 훨씬 넓은 땅을 가진 일본에서 타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일 것 같다. 듣기로는 차를 일본으로 가지고 가서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아소산정상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면 분화구까지 가는 버스가 운행한다. 시간이 없다면 타고 올라가는 것도 방법이고, 시간이 많고 충분히 걸을 수 있다면 굳이 탈 필요는 없어보인다. 대부분 타고 올라가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양 휩쓸리기 좋다. 나는 갈때만 타고, 내려올때는 걸어서 내려왔다. 5분의 짧은 탑승을 마치고 내리면 유황 냄새가 고약하다. 하와이의 볼케이노 국립공원에서의 그 냄새지만 이쪽이 훨씬 광범위하고 농도가 짙다. 너무 분출이 심해지면 근처의 접근을 차단한다고 한다. 건강에 좋을리 없어 보인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유투브에 아소산을 검색해 보았는데, 갑작스러운 분출에 재빠르게 도망치는 사람들의 1인칭 시점 동영상들이 흥미로웠다.

오래 있을 시간이 없다. 다음 내려가는 버스를 타야 열차 시간을 맞추고 구마모토로 돌아갈 수 있어 3시간을 달려 보러온 정상의 풍경을 10분만 둘러볼 수 밖에 없었다. 풍경을 충분히 보지 못해 아쉽지만 아소산만의 고유한 풍경이나 느낌이 딱히 보이지 않아 아쉽지는 않다. 20분 정도 걸어내려가는 길은 시간 조절을 하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일본의 기차, 버스 시간표는 정확해서 절대 먼저 출발하거나 늦게 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포토스팟이 있었는데 역시나 여기도 혼자 카메라를 세워놓고 인스타그램 릴스를 열심히 찍는 분이 있었다.

돌아오는 기차를 타니 아침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해 몹시 배가 고팠다. 돌아가는 길에 구마모토의 맛집을 찾아보니 이 쪽은 돼지고기가 유명한 것 같아, 돈까스 정식을 먹기로 했다. 마침 돌아가는 기차역, 미나미 구마모토 근처에 유명 체인 돈까스 가게(카츠레츠테이)의 분점이 있어 잠시 먹고 다음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한다. 무더위에 배낭을 매고 헉헉 거리며 걸어갔다. 평일 점심, 거의 세시가 다 되어 도착한 식당은 다행히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평생 먹은 돈까스 중 여기가 최고다. (사진은 너무 맛없게 찍혔네..) 돈까스의 풍미도 대단한데, 밥에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맛있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쌀의 품질에 민감한 편인데 한국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품종의 쌀인 것 같다. 미식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런 맛은 음식의 재료에서 나오는지 주방장의 솜씨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나중에 가족 또는 누군가와 구마모토를 방문한다면, 여기는 꼭 다시 방문할 것이다. 그리고 평일 점심에는 그날의 정식을 1300~1600엔 정도로 싸게 먹을 수 있는데 외국인에게 주는 영어 메뉴에는 적혀있지 않다. 입구에 메뉴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일본어로만 적혀 있으므로 만약 평일 점심에 방문한다면 꼭 런치 정식 메뉴를 달라고 해야 한다. (https://maps.app.goo.gl/ToHZE59yFupHYamEA)

다시 두 정거장을 뒤로 돌아가 스이젠지 역에서 스이젠지 조주엔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신-스이젠지 역보다 스이젠지 역이 가까워보여 여기서 내려가기로 결정 했는데, 이 역은 코인락커가 공사 중이었다. 허리와 다리가 조금 쉬어야 된다고 소리를 지르지만,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또 둘러매고 15분 여를 걸어간다. 길거리는 더워서 그런지 아무도 없고, 빈 신호등을 건너는 건 나 뿐이었다. 다행히 스이젠지에 입장하고 나니 무료 코인락커가 있었다. 참고로 일본인에게는 코인록커라고 해야 잘 알아듣는다.

일본식 정원은 교토에서 히메지에서 나라에서 도쿄의 이곳저곳에서 많이 둘러보았다. 흥미로운 정원들도 있었지만 (교토 은각사) 내게는 대체로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것 같다. 소우주를 표현하는 정원의 각 나라별 양식은 어디에나 있었을 텐데, 우리나라는 보전되지 못하고 많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 아쉽다. 최대한 자연을 손 보지 않고 정자하나를 세워 풍경을 즐기는 것이 우리 정서에는 더 맞았을 수도 있겠다. 한바퀴 돌다보니 인적이 드문 곳에서 어떤 중국어를 쓰는 아이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정원의 언덕 꼭대기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어머니가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후쿠오카는 한국사람들이 많았는데, 여기는 중국 단체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사진에 미끄럼의 흔적이 보인다.

사람이 없어 둘러보기 좋았다. 한달 전 교토에서 보았던 후시이 이나리 신사의 분점?이 안에 위치해 있다. 잠시 명당 자리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물과 풀, 바람과 시간을 느껴봤다. 5분이나 지났을까 오늘의 관람이 종료되었다며 모두 퇴장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아소산에서 부지런히 걸어내려 왔기에, 돈까스를 허겁지겁 먹었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역에서 걸어 왔기에 이 5분이나마 주어졌다. 내가 원했던 극한의 배낭 여행이다. 그런데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오늘은 구마모토 역 앞의 캡슐 호텔(Hotel the Gate Kumamoto)을 예약했다. 로비나 시설은 좋았다. 입고 잘 수 있는 가운도 주고, 코인세탁실도 붙어 있었다. 힘들었기에 편히 쉴 수 있게 큰 마음 먹고 상당히 고가 (4만원)의 독실을 예약했다. 하지만 좋지 않았던 것은 모든 방의 천정이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 즉, 실내 체육관에 칸막이를 적당히 치고 도미토리를 만들어 놓은 꼴이다. 옆 방의 누가 전화 통화를 시작했는데 마치 침대에 같이 누워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카운터에서 귀마개를 나누어주니 꼭 챙기는 것이 좋겠다. 구마모토에 출장 온 비즈니스맨이 아침 일찍 신칸센을 타기 위한 호텔 느낌이다.

후쿠오카에서 아소산 정상으로, 아소산 정상에서 다시 스이젠지로, 구마모토 역으로 이동거리가 긴 하루였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렸다. 저녁을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구마모토 역까지 걸어가 모스버거를 하나 사먹고 들어왔다. 아, 피곤하지 않았다면 정말 먹지 않았을 것이다. 모스버거를 버거라고 부르면 안될 것 같다. 2층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다자이후, 규슈 국립 박물관

나는 박물관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대표 박물관들은 꼭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방문지를 돌아보기 전에 박물관을 들러 도시나 지역의 이해를 넓히고 싶다. 우리나라 박물관 중에는 진주 국립박물관이나 목포 해양 박물관 처럼 많은 내용을 소개하기 보다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박물관이 마음에 들었다.

같이 여행하는 가족이 있거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경우 원하는 박물관을 가보지 못한다. 또는 아주 짧은 시간만 방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여행은 혼자 떠난 여행으로 원하는 박물관을 원하는 시간만큼 볼 수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 서 있을 정도로 둘러보았다. 일본에는 총 4개의 국립 박물관이 있다. 도쿄, 교토, 나라, 규슈에 각각 하나 씩 있다. 나는 교토를 제외하고 나머지 박물관을 가보았고 이 번 여행에서 도쿄와 규슈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교토 국립박물관도 방문했지만 도저히 관람 시간이 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동선 상으로는 후쿠오카 체류 중에 규슈 국립 박물관을 들러 구경한 후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내 경우 마침 방문 예정일이 박물관 휴관일이라 동선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나가사키에 들렀다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규슈 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어 교통비 걱정이 없으므로 가능한 동선이다. 참고로 규슈 국립 박물관의 접근성은 매우 떨어진다. 다자이후의 구석진 곳에 있는데 후쿠오카에서는 니시테츠 철도를 타고 니시테츠 후츠카이치 역에서 환승 한 후 다자이후 행 관광 기차를 타면 된다.

아무튼 이 복잡한 동선의 일정을 소화하고자 나가사키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번에 못한 나가사키 이야기를 하자. 나가사키는 일본에 가톨릭이 처음 전파된 곳이다. 하비에르 신부에 의해 전해졌다고 하는 일본의 가톨릭은 1600년대에 와서는 이곳 규슈 지방에 뿌리를 내렸다. 임진왜란의 선봉장 중 한명으로 한성에 가장 먼저 진입한 고니시 유키나가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하나로, 한국에서 전쟁 중인 임진왜란 중에도 신부를 일본에서 데려와 미사를 드렸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일본 최초의 순교 성인 26인의 처형터가 위치해 있었다.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바로 이곳에서 연설 했다고 하고, 그 전임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도 방문했었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가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문제에는 관심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인간 본연의 질문은 일생을 거쳐 탐구해야 하는 대상이고, 종교인들은 나름대로 해답을 구한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를 조금 둘러보고 나가사키역으로 가서 카모메 신칸센을 탄다. 여행 내내 미리미리 기차 시간표를 알아서 역에 조금 일찍 나가는 것이 버릇으로 했다. 역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되기도 하고,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칸센 전체 여행에서 예정보다 열차는 빠르게 도착한적도 늦게 도착한 적도 없다, 따라서 빠르게 출발한 적도, 늦게 출발한적도 없다. 그러다보니 항상 역에서 10~15분을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 오래된 역사들은 딱히 대합실이 넉넉한 편이 아니다보니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어 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나가사키역은 신축 역사라 그런지 넉넉한 대기실이 있어 잠시 배낭을 바닥에 놓고 쉴 수 있었다.

다케오온센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어제 탓던 급행 열차가 아니라 각 역마다 조금 더 자주 서는 열차를 타고 간다. 후츠카이치역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열차 시스템은 참 복잡하기 그지 없다. 보통-쾌속-특급-신칸센으로 이어지는 열차의 등급과, 자유석-지정석-일반석-그린-그랑클래스로 이루어지는 좌석의 등급이 각각 존재한다. 게다가 요금도 열차의 등급과 좌석의 등급을 별개로 정산하니 복잡함이 배가 된다. 보통-쾌속-특급은 같은 노선을 달리돼 열차의 종류가 다르기도 하고, 특급으로 갈 수록 통상 서는 역이 점점 줄어든다. 신칸센도 마찬가지로 노조리, 히카리 등으로 정차역에 따라 구분되는데, 이건 지역 별로 명칭이 다 다르다. 이를 일일히 설명하다가는 포스팅 하나를 온전히 해야하므로 여기서 넘어가도록 하자.

JR후츠카이치역에 도착해 코인라커에 짐을 넣어 놓는다. 여기 JR후츠카이치역에서 20분 정도를 걸으면 니시테츠 후츠카이치역에 도착한다. JR 후츠카이치역은 한적한 동네로 아침 시간이라 한가한 것인지, 하루 종일 한가한 동네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상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하루 종일 번잡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면 니시테츠 후츠카이치역과 거기서 이어지는 다자이후역은 관광객으로 북적북적했다. 어디든 관광지, 그 중에서도 메인 스트리트만 북적 거린다. 그 사람이 많다는 교토 산넨자카나, 나라의 사슴공원도 두 블럭만 벗어나면 횡단보도 맞은 편에 사람을 찾기 힘들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다자이후역에 11시 정도에 도착했기에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이치란을 포함해 유명한 라멘 체인이 많이 있었는데, 이치란은 기다리기도 싫고 나중에 먹을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단보라멘이라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다행히 오픈 시간 즈음이라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익숙하게 자판기에서 티켓을 뽑아내고, 혼자 앉기 적당한 카운터 석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뒤꿈치 뒤에 있는 플라스틱 가방에 담는다. 어디든 혼자 먹는 사람들은 위해 최적화된 시스템은 비슷하다. 나가사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왼쪽에도 한국 사람, 오른쪽에도 한국사람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찍지 않으면 먹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식당을 나서니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올껄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행히 워낙 상점이 많아 가게 앞에 있는 처마 밑을 따라가니 거의 비를 맞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비도 오고, 오늘 방문의 목적인 규슈 국립 박물관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박물관은 다자이후 동쪽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해있다. 다자이후 오른쪽에 매우 긴 길이의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다자이후만을 살펴보고 이 깊은 곳 까지는 오지 않는다.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될 것 같다.

관람객보다 직원이 더 많아보이는 박물관에 들어섰다. 넓고, 최신식의 공간이었다. 이걸 짓는데는 틀림없이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리라. 모든 유물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몇 가지 느낀바를 적어보자면, 일본은 가능하면 오래전에 정착민과 농경문화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도래 문화보다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나름대로의 문명이 중요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아오모리의 조몬시대 유적이나, 시라카와고 같은 곳을 강조하는 것도 일본 고유의 것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일본 도자기 기술의 원천은 규슈지방이고, 이는한국의 기술자들로부터 전수된 기술 임이 틀림없다. 규슈 지방의 다양한 곳에서 번성한 채색 도자기 기술은 임진왜란 이후 시기 건너간 도공들이 발전 시켰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도자기에 관한 특별 전시도 자주 있었고 친숙함을 느꼈다.

또 일본은 적어도 근 500년 동안은 무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군사 대국이다. 누구를 숭상하는지, 어떤 유물이 전시관의 처음에 위치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전쟁과 전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 생존 전략이 현대 일본의 문화 속에도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잔인함에 대한 면역이나 낮은 신분 상승 욕구등이 그것이라 짐작한다.

규슈지방 위주의 전시로 국립박물관이라 일본 전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한국 또는 중국과의 연결 고리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 출정을 위한 준비 과정이나 침략 주역들의 그 과정에서의 친필 메시지 등은 흥미로운 사료로 보인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한국의 정벌을 준비하고, 그 결과 많은 군사와 자원을 일거에 보급할 수 있었다. 대비가 전혀 없던 한국은 그야말로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초기 전투에서 거의 궤멸에 가까운 상황에 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임진왜란 직전 해에는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다녀갔다. 하지만 엇갈리는 현황 보고 속에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 쪽을 택한 조선의 운명은 명에 의지하지 않고는 국가를 존속 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런 역사는 500년도 지나지 않아 똑같이 반복된다.

다자이후 덴만구로 다시 내려왔다. 가족이나 커플 단위 관광객도 참 많고, 군/면 단위의 향촌 부락 경로당 정도에서 단체로 놀러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보였다. 워낙 한국과 가깝기도 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의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이 곳은 수백년이 넘는 거목과 연꽃이 화려하게 꾸며진 신사였다. 가볍게 풍경을 즐기고 뻐근한 다리를 쉬게하며 앉아있기도 했다. 아무리 쉬어도 거의 네 시간을 박물관을 둘러보니 더는 걸어다니기 힘들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기로 했다.

오늘의 숙소도 역시 게스트하우스로 지난 번 후쿠오카 게스트 하우스 근처로 잡았다. 그나마 약간은 프라이빗하게, 벙커 침대와 그 앞에 약간의 탁자, 그리고 의자, 그리고 그 앞에 전부를 가릴 수 있게 쳐진 커튼까지가 나의 공간이다. 내 침대는 1층이고, 2층 침대를 쓰는 사람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비슷한 형태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커튼 파티션이 있다. 그러기에 만원이 비싸다. 공용 주방이나 식사 공간이 있지만 아무도 이용하는 사람은 못봤다. 사람이 그만큼 없는 것일까?

지난 후쿠오카 일정에서 유명 관광지를 휘뚜루 둘러보았으므로 오늘 저녁은 바로 코 앞의 신사, 상점가를 둘러보고 대형마트에서 8시 이후 할인 판매에 돌입한 스시를 사서 먹기로 한다. 정가 2000엔에 반 값 할인이 들어간 12피스 정도의 스시와, 포켓몬 빵, 이토엔 녹차가 오늘의 저녁 식사다. 내 침대 앞의 탁자에서 먹기에 냄새가 안나는 메뉴를 골랐다. 원래 게스트하우스 침대 내 취식은 금지이지만, 침대 안도 아니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삼일 째 되니 확실히 피곤했다. 무거운 것을 매고 많이 걷고 너무 부실하게 먹었나 싶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나는 아침에 운동을 하고 금주하고 물은 충분히 사서 마셨다. 다행히 허리는 별 문제 없었지만, 점점 숙소로 들어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더운 봄과 여름의 한가운데 더 몸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여행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 이므로 맛있는 것을 못 먹거나 택시를 못타거나, 싸구려 스폰지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몸에 문제가 생겨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기는 싫었다. 건강한 채로 바닥까지 떨어져, 돌아왔을 때 모든 곳과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