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다자이후, 규슈 국립 박물관

나는 박물관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여행지의 대표 박물관들은 꼭 방문하려고 노력한다. 방문지를 돌아보기 전에 박물관을 들러 도시나 지역의 이해를 넓히고 싶다. 우리나라 박물관 중에는 진주 국립박물관이나 목포 해양 박물관 처럼 많은 내용을 소개하기 보다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자세하게 알려주는 박물관이 마음에 들었다.

같이 여행하는 가족이 있거나, 시간이 넉넉하지 못한 경우 원하는 박물관을 가보지 못한다. 또는 아주 짧은 시간만 방문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 여행은 혼자 떠난 여행으로 원하는 박물관을 원하는 시간만큼 볼 수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 더는 못 서 있을 정도로 둘러보았다. 일본에는 총 4개의 국립 박물관이 있다. 도쿄, 교토, 나라, 규슈에 각각 하나 씩 있다. 나는 교토를 제외하고 나머지 박물관을 가보았고 이 번 여행에서 도쿄와 규슈에 있는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교토 국립박물관도 방문했지만 도저히 관람 시간이 나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동선 상으로는 후쿠오카 체류 중에 규슈 국립 박물관을 들러 구경한 후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내 경우 마침 방문 예정일이 박물관 휴관일이라 동선이 길어짐에도 불구하고 나가사키에 들렀다 다시 올라오게 되었다. 규슈 레일 패스를 가지고 있어 교통비 걱정이 없으므로 가능한 동선이다. 참고로 규슈 국립 박물관의 접근성은 매우 떨어진다. 다자이후의 구석진 곳에 있는데 후쿠오카에서는 니시테츠 철도를 타고 니시테츠 후츠카이치 역에서 환승 한 후 다자이후 행 관광 기차를 타면 된다.

아무튼 이 복잡한 동선의 일정을 소화하고자 나가사키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번에 못한 나가사키 이야기를 하자. 나가사키는 일본에 가톨릭이 처음 전파된 곳이다. 하비에르 신부에 의해 전해졌다고 하는 일본의 가톨릭은 1600년대에 와서는 이곳 규슈 지방에 뿌리를 내렸다. 임진왜란의 선봉장 중 한명으로 한성에 가장 먼저 진입한 고니시 유키나가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의 하나로, 한국에서 전쟁 중인 임진왜란 중에도 신부를 일본에서 데려와 미사를 드렸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일본 최초의 순교 성인 26인의 처형터가 위치해 있었다.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바로 이곳에서 연설 했다고 하고, 그 전임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도 방문했었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종교가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문제에는 관심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와 같은 인간 본연의 질문은 일생을 거쳐 탐구해야 하는 대상이고, 종교인들은 나름대로 해답을 구한 것이라 생각한다.

주위를 조금 둘러보고 나가사키역으로 가서 카모메 신칸센을 탄다. 여행 내내 미리미리 기차 시간표를 알아서 역에 조금 일찍 나가는 것이 버릇으로 했다. 역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안되기도 하고, 돌발 상황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신칸센 전체 여행에서 예정보다 열차는 빠르게 도착한적도 늦게 도착한 적도 없다, 따라서 빠르게 출발한 적도, 늦게 출발한적도 없다. 그러다보니 항상 역에서 10~15분을 기다리는 일이 많았다. 오래된 역사들은 딱히 대합실이 넉넉한 편이 아니다보니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벽에 기대어 쉬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나가사키역은 신축 역사라 그런지 넉넉한 대기실이 있어 잠시 배낭을 바닥에 놓고 쉴 수 있었다.

다케오온센역에서 갈아타야 하는데 어제 탓던 급행 열차가 아니라 각 역마다 조금 더 자주 서는 열차를 타고 간다. 후츠카이치역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열차 시스템은 참 복잡하기 그지 없다. 보통-쾌속-특급-신칸센으로 이어지는 열차의 등급과, 자유석-지정석-일반석-그린-그랑클래스로 이루어지는 좌석의 등급이 각각 존재한다. 게다가 요금도 열차의 등급과 좌석의 등급을 별개로 정산하니 복잡함이 배가 된다. 보통-쾌속-특급은 같은 노선을 달리돼 열차의 종류가 다르기도 하고, 특급으로 갈 수록 통상 서는 역이 점점 줄어든다. 신칸센도 마찬가지로 노조리, 히카리 등으로 정차역에 따라 구분되는데, 이건 지역 별로 명칭이 다 다르다. 이를 일일히 설명하다가는 포스팅 하나를 온전히 해야하므로 여기서 넘어가도록 하자.

JR후츠카이치역에 도착해 코인라커에 짐을 넣어 놓는다. 여기 JR후츠카이치역에서 20분 정도를 걸으면 니시테츠 후츠카이치역에 도착한다. JR 후츠카이치역은 한적한 동네로 아침 시간이라 한가한 것인지, 하루 종일 한가한 동네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상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봐서 하루 종일 번잡하지 않을 것 같았다. 반면 니시테츠 후츠카이치역과 거기서 이어지는 다자이후역은 관광객으로 북적북적했다. 어디든 관광지, 그 중에서도 메인 스트리트만 북적 거린다. 그 사람이 많다는 교토 산넨자카나, 나라의 사슴공원도 두 블럭만 벗어나면 횡단보도 맞은 편에 사람을 찾기 힘들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다자이후역에 11시 정도에 도착했기에 늦은 아침을 먹기로 했다. 이치란을 포함해 유명한 라멘 체인이 많이 있었는데, 이치란은 기다리기도 싫고 나중에 먹을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단보라멘이라는 곳에서 먹기로 했다. 다행히 오픈 시간 즈음이라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익숙하게 자판기에서 티켓을 뽑아내고, 혼자 앉기 적당한 카운터 석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뒤꿈치 뒤에 있는 플라스틱 가방에 담는다. 어디든 혼자 먹는 사람들은 위해 최적화된 시스템은 비슷하다. 나가사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왼쪽에도 한국 사람, 오른쪽에도 한국사람이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찍지 않으면 먹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식당을 나서니 비가 내렸다. 우산을 가지고 올껄 하는 후회가 들었다. 다행히 워낙 상점이 많아 가게 앞에 있는 처마 밑을 따라가니 거의 비를 맞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비도 오고, 오늘 방문의 목적인 규슈 국립 박물관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박물관은 다자이후 동쪽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해있다. 다자이후 오른쪽에 매우 긴 길이의 에스컬레이터와 무빙워크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다자이후만을 살펴보고 이 깊은 곳 까지는 오지 않는다.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래도 될 것 같다.

관람객보다 직원이 더 많아보이는 박물관에 들어섰다. 넓고, 최신식의 공간이었다. 이걸 짓는데는 틀림없이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리라. 모든 유물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몇 가지 느낀바를 적어보자면, 일본은 가능하면 오래전에 정착민과 농경문화가 시작되었음을 강조한다. 이는 도래 문화보다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나름대로의 문명이 중요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리라. 아오모리의 조몬시대 유적이나, 시라카와고 같은 곳을 강조하는 것도 일본 고유의 것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보인다. 일본 도자기 기술의 원천은 규슈지방이고, 이는한국의 기술자들로부터 전수된 기술 임이 틀림없다. 규슈 지방의 다양한 곳에서 번성한 채색 도자기 기술은 임진왜란 이후 시기 건너간 도공들이 발전 시켰음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도자기에 관한 특별 전시도 자주 있었고 친숙함을 느꼈다.

또 일본은 적어도 근 500년 동안은 무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군사 대국이다. 누구를 숭상하는지, 어떤 유물이 전시관의 처음에 위치 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이러한 끊임없는 전쟁과 전투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지, 그 생존 전략이 현대 일본의 문화 속에도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잔인함에 대한 면역이나 낮은 신분 상승 욕구등이 그것이라 짐작한다.

규슈지방 위주의 전시로 국립박물관이라 일본 전체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기에 한국 또는 중국과의 연결 고리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 출정을 위한 준비 과정이나 침략 주역들의 그 과정에서의 친필 메시지 등은 흥미로운 사료로 보인다.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한국의 정벌을 준비하고, 그 결과 많은 군사와 자원을 일거에 보급할 수 있었다. 대비가 전혀 없던 한국은 그야말로 속수 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고 초기 전투에서 거의 궤멸에 가까운 상황에 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임진왜란 직전 해에는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다녀갔다. 하지만 엇갈리는 현황 보고 속에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 쪽을 택한 조선의 운명은 명에 의지하지 않고는 국가를 존속 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었다. 이런 역사는 500년도 지나지 않아 똑같이 반복된다.

다자이후 덴만구로 다시 내려왔다. 가족이나 커플 단위 관광객도 참 많고, 군/면 단위의 향촌 부락 경로당 정도에서 단체로 놀러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많이 보였다. 워낙 한국과 가깝기도 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의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이 곳은 수백년이 넘는 거목과 연꽃이 화려하게 꾸며진 신사였다. 가볍게 풍경을 즐기고 뻐근한 다리를 쉬게하며 앉아있기도 했다. 아무리 쉬어도 거의 네 시간을 박물관을 둘러보니 더는 걸어다니기 힘들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로 가기로 했다.

오늘의 숙소도 역시 게스트하우스로 지난 번 후쿠오카 게스트 하우스 근처로 잡았다. 그나마 약간은 프라이빗하게, 벙커 침대와 그 앞에 약간의 탁자, 그리고 의자, 그리고 그 앞에 전부를 가릴 수 있게 쳐진 커튼까지가 나의 공간이다. 내 침대는 1층이고, 2층 침대를 쓰는 사람은 나와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비슷한 형태의 탁자와 의자, 그리고 커튼 파티션이 있다. 그러기에 만원이 비싸다. 공용 주방이나 식사 공간이 있지만 아무도 이용하는 사람은 못봤다. 사람이 그만큼 없는 것일까?

지난 후쿠오카 일정에서 유명 관광지를 휘뚜루 둘러보았으므로 오늘 저녁은 바로 코 앞의 신사, 상점가를 둘러보고 대형마트에서 8시 이후 할인 판매에 돌입한 스시를 사서 먹기로 한다. 정가 2000엔에 반 값 할인이 들어간 12피스 정도의 스시와, 포켓몬 빵, 이토엔 녹차가 오늘의 저녁 식사다. 내 침대 앞의 탁자에서 먹기에 냄새가 안나는 메뉴를 골랐다. 원래 게스트하우스 침대 내 취식은 금지이지만, 침대 안도 아니고 이 정도는 괜찮겠지.

삼일 째 되니 확실히 피곤했다. 무거운 것을 매고 많이 걷고 너무 부실하게 먹었나 싶었다. 허리 디스크가 있는 나는 아침에 운동을 하고 금주하고 물은 충분히 사서 마셨다. 다행히 허리는 별 문제 없었지만, 점점 숙소로 들어오는 시간이 빨라졌다. 더운 봄과 여름의 한가운데 더 몸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바닥까지 떨어지는 여행을 해보자고 시작한 것 이므로 맛있는 것을 못 먹거나 택시를 못타거나, 싸구려 스폰지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몸에 문제가 생겨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기는 싫었다. 건강한 채로 바닥까지 떨어져, 돌아왔을 때 모든 곳과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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