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만 영원하다

진리는 있는가? 도덕은 진리와 같은가? 그것은 영원한가? 진리는 모두에게 보편적인가? 진리는 가치 있는가? 진리가 없다면 절대적인것은 있는가?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에 가치있는 것일까? 상대성을 모두 빼고나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삶이 혼란스럽다보니 내가 의지하고 바라보며 목표로 삼을 만한 것을 찾게 된다. 북극성이 없었다면 희망봉을 돌았을까? 그리고 과연 그것이 어디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잠시나마 답을 찾았다고 착각했다가 또 달리 순식간에 답이 의문이 되고 또 다른 답을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 결국 나, 그리고 내 삶에 대해서 절대적인 것, 진리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바른 것,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옳은 것, 그리고 내 능력이 닿는 한 내 가족에게는 가치 있는 것만 생각하기로 한다. 그 외의 것은 나의 고민이 닿지 않는 범위로 내버려두기로 한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위에서 고민한 많은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모두 ‘아니다’ 로 단순해졌다. 단순한 것이 행복하고 아름답다. 그래, 어쩌면 이것도 나에게는 옳은 것 한가지 일 수 있겠다.

[Economist] The word for “condescending old person” in Korean (“잘난척 하는 늙은이”를 뜻하는 한국어)

한국 젊은이들의 계급에 대한 저항에 “꼰대”가 시사하는 것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당신만큼 일에 헌신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가? 패션 선택이나 연애에 대해서 젊은 직원들에게 요청 받지 않은 충고를 하는가? 사무실의 주니어들이 당신의 커피를 들고 오지 않을 때 짜증이 나는가? 주의해라: 당신은 꼰대 영역에 들어왔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당신의 부풀려진 자존심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질 것을 추천한다. 당신은 그들의 존경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나이 들었기 때문에 주어지지 않는다.

꼰대는 출처가 불분명한 신조어이다. – 아마 영단어 “Condescend(거들먹거리다)”의 차용일 것이다. 이는 젊은이들에게 묻지마 복종을 기대하는 나이든 사람(보통은 남자)를 뜻한다. 꼰대는 트집잡는 것은 빠르지만 자기의 실수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그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보복한다. 한국은 이 단어를 자아도취에 빠진 상사부터 고압적인 삼촌, 부폐한 정치가들에게 까지 이용한다. 꼰대 테스트와 어떻게 하면 꼰대를 탈출할 수 있을지 팁을 제공하는 웹 사이트 들이 있다. 온전히 꼰대에 관해 토론하는 토크 쇼가 최근 텔레비전으로 방영 되기도 했다.

한국은 근무기간, 성별, 나이에 기반한 숨막히는 직장 위계로 악명이 높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어린 동료나 친척이 그들을 칭할 때 틀린 호칭을 쓰면 격분한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은 상사가 요청한 일이 끝난 후 술자리나 주말의 하이킹을 거절하기 어렵다. 구정이나 추석때, 여성들은 남자들의 도움 없이 마지못해 시댁에서의 요리나 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저는 어머니를 도와야 하지만, 남자 형제는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24세 학생 박지수는 말한다. “모두들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꼰대를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문화는 변화의 조짐이다. 위계 질서에 대놓고 저항하는 경우는 아직 드물고 못마땅하게 비춰진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박지수 양은 나이 많은 친척들은 아니더라도 형제에게는 저항한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남자의 말을 따르라는 압력을 예전보다는 덜 느낀다고 한다. 어머니들은 남편에게 밖에서 아기를 안고 있거나 (자주는 아니지만)집안일은 도우라고 설득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최근 도입된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에 따라 더 자극 받아, 퇴근 후 술에 ‘아니오’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욕구에 더 신경 쓰고 있으며 사회적 인정을 얻는데는 덜 그렇다고 서울에 위치한 연세대학교의 인류학자 조한혜정은 말한다.

교육이 이러한 변화를 부분적이나마 설명한다. 젊은이들은 나이든 사람보다 이러한 경향을 더 보인다. 이것이 꼰대에 대적할 위대한 힘을 준다고 미국 Vassar 대학의 문승숙은 말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동년배들처럼, 한국의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로 불안을 느낀다. 연세대학교의 사회학자 이도훈은 지난 20년을 살아온 이들은 1997-19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불안정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좋은 교육도 그들의 안전과 지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데 공포를 느낀다. 이는 그들을 사회 질서에 더욱더 반하게 만들고 일부는 이것이(사회 질서) 그들에게 불리하게 동작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진화하는 정치 문화도 마찬가지로 충격을 주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1980년대 후반 이래, 인간의 권리는 동일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보편권에 대한 믿음이 커지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게 만든다. 5년 전 한 여객선의 침몰로 인한 304명의 죽음도 묻지마 복종의 위험에 대해서 자기 분석을 하게 했다. 많은 희생자들은 고등학교 학생들로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에 따랐다.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이미 배를 버렸다.) 이 재난에 대한 정부의 서투른 대응이 대규모 시위를 촉발 시켰고 이는 박근혜 정부의 탄핵과 부폐 혐의에 대한 유죄판결로 이어졌다.

권위에 대한 오래된 관습은 하루 밤 사이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이들은 더욱 더 계급에 저항하지만, 그들이 나이든 후에는 어떨까? 현재의 건방진 젊은이들의 일부는 그들이 꿈꾸는 성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자동으로 누렸던 존중과 같은 종류의 것을 열망할지 모른다. 오늘날의 꼰대 비판자들이 그 자체로 꼰대로 성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젊은이들이 그렇게 내버려둘지는 의문이다.

공부를 하는 이유

내가 하는 순간 순간의 선택,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이 선택이 현실 사회를 내가 바라는 세상 쪽으로 움직일 수 있기를 바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내가 하는 사회적인 고민이란 것은 이런 것이다. 물론 어떤 선택에서는 사회적인 고민 없이 지극히 현실과 타협하는 개인적인 고민만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의 행위와 나의 이상이 서로 정렬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식자(識者)로서는 지극히 당연하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사회는 너무 복잡한 인과 관계로 얽혀 있어 그 선택의 이면에 존재한 다이나믹을 알기 어렵다. 나의 행위는 어떤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타인의 어떤 행위를 낳고, 그 사람은 다시 어떤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연결 속의 영향력은 점차 증폭되거나 점차 감쇄되어 내가 작은 행동을 할 때 미쳐 의식하지 못했던 나비 효과를 가져온다.

내가 지불한 돈이 누구에게 어떻게 흘러들어가서 이용되는지 알아야 하고, 내가 지킨 법규나 도덕룰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영향을 행사 하는지 알아야 하고, 나에게 작은 권력이라도 있다면 이를 이용하는 것이 그 영향력 하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 시킬지 알아야 한다. 사회는 무수히 많은 행동과 반응, 증폭과 감쇄, 전파와 소멸을 한꺼번에 넣고 뒤섞은 창고와 같다.

가끔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나의 행위와 이상이 정렬 하는지 확인하려면 내 선택의 이면을 하나 하나 올바른 방향으로 따라가야 한다. 이게 내가 공부를 하는 이유이다. “내 선택이 세상을 내가 원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부끄러운 일을 할때, 혹은 부당한 일을 할 때 이러한 인과 관계를 가능하면 감추려하고 약하게 만든다. 또는 정반대의 인과 관계라는 인식을 부당하게 심으려 한다. 알지 않으면, 깨어있지 않으면 혼란 속에서 나의 행위가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의 세상을 오게 만든다.

진리는 나의 빛. 거창하게 진리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감춰진, 은폐된 다이나믹을 아는 것이 현실에서의 소소한 선택에 빛이 되리라.

[Economist] My branch manager is a radish(내 지점 매니저는 무)

혼란스러운 뱅킹 시스템을 길들이는 새로운 방법들

May 2nd 2019

25살의 학생인 유는 간단한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머리가 아팠다: 어떤 은행에 예금해야 하지? 3개의 다른 은행에 6개의 계좌가 있다. 한 은행은 장학금 지급을 위해 수여 기관에서 지정된 곳이고, 다른 곳은 군에 입대 했던 동안 여러 혜택을 준다. 세 번째는 전 고용주가 급여를 지급하던 곳이다. 그는 다른 휴면 계좌들과, “기억해야 할 너무 많은 카드들”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는 단지 꽁돈을 얻기 위해 발급 받았다. “어떤 영업사원이 사무실에 찾아오더니 30만원만 쓰면 10만원을 돌려 받는다고 말했어요.” 그는 그 카드를 딱 한 번 이용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남용이 흔한한 일이다. 성인 1인당 평균 5.2개의 은행 계좌와 3.6개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 금융 상품들은 적합성 여부나 금융기관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와는 관계 없이 거의 전적으로 개인 간 관계에 의해 선택되고 있다. 신용카드는 커미션 수익을 노린 프리랜서 영업사원에 의해 그들의 지인에게 퍼뜨려지고 있다. 고객 유치에서의 결함들은 한국에서의 뱅킹이 오랫동안 끔찍한 경험이었음을 의미한다. 모바일 뱅킹 앱들은 형편 없었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온라인 결제를 위해서 일반적으로 40회의 클릭과 4번의 비밀번호 입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디지털 신규 서비스들의 광풍이 불었다. 몇몇은 한국 사람들에게 이 존재하는 뒤죽박죽을 다루는 법을 도와주었고; 다른 몇은 이를 더 낫게 대체하려 했다.

2015년 한국의 정부 기관인 금융위원회(FSC)는 핀테크 기업들을 육성하여 기존 금융시장을 자극하고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기로 결정했다고 FSC 와 연계된 싱크탱크인 금융연구원의 서정호는 말한다. 새롭게 등장한 야망에 찬 기업 중 하나는 비바 리퍼블리카이다. 12월 이 스타트업은 8천만불 규모의 펀딩을 받아 12억불의 기업가치로 추산되는 대한민국의 첫 번째 핀테크 유니콘이 되었다. (유니콘: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되는 비상장 기업)

전직 치과의사 이승건에 의해 2013년 설립된 비바 리퍼블리카는 Toss를 통해 디지털 결제 시장에 뛰어들기 전 몇 개의 다른 모험을 시도했다. 이후 Toss는 종합 돈 관리 앱으로 성장했다. 사용자는 계좌, 신용카드, 대출을 하나의 화면으로 통합하고, 분류 별 지출도 표시된다. 이용자를 금융상품에 가입할 수 있으며 Toss는 커미션을 취한다. “편리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Toss를 이용해야 합니다” overbanked 학생 유는 말한다. “내가 얼마나 썼는지, 해외 주식에 얼마나 투자 했는지, P2P 펀딩에 얼마를 투자 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Toss의 빠른 성장은 기존 뱅킹 경험의 끔찍함을 증명한다. Toss는 천백만 가입자를 확보 했으며, 이는 대한민국 인구의 1/4 이다. 하지만 Toss 야망은 한층 더 크다. 그들은 디지털 은행 설립을 위한 허가를 노리고 있다. 이승건 창업주가 선언한 이 목표는 금융에 관한 모든 것을 위한 대한민국의 압도적 “수퍼-앱”을 만드는 것이다. 은행들은 Toss를 위협으로 보지 않고 고객 확보 비용을 절감하는 파트너로 인식한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는 은행은 손해를 볼 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객 참여를 얻고 그들은 공급자가 될 것입니다.”

2012년 설립된 핀테크 기업 레이니스트의 뱅크 샐러드(뱅킹, 하지만 건강하게)는 더 좁은 접근 방식을 취한다. 이들은 4백만 이용자를 확보했고 마찬가지로 계좌 통합, 자산 관리를 제공하지만, 결제나 이체를 제공하지 않는다. 최고경영자 김태훈은 수퍼히어로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의 금융-조언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레이니스트의 강점은 사용자의 지출 패턴 기반의 상품을 추천하는 데이터 기반 소개 시스템이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들의 파트너 기관이 다른 경로, 예를 들어 모집 보너스를 제공해서 대리인에 의해 모집된 경우, 월 평균 60만원을 쓰고 4달을 유지한다. 뱅크 샐러드를 통해 가입한 고객은 매달 3배 많이 쓰고 거의 3배 가까운 기간 동안 유지한다. 따라서 카드 발생사는 지불하는 커미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Salad, tossed

양쪽 앱 모두 고객 확보를 합리화 하고, 서비스의 질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설정하여, 만약 Toss가 은행업에 진출하는 것이 성공한다면 정면으로 경쟁하여 한국 한국의 은행업을 뒤흔들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가공할만한 경쟁자가 있다. 무려 94%의 한국인이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와 모바일 게임 대기업 카카오의 채팅 앱 카카오톡이다. 위챗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결제 기능, 카카오 페이가 포함되어있어 2천 8백만명의 등록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 20조원 이상의 결제에 이용되었다.

지배적인 소셜 미디어 기업의 결제 시장에서의 성공은 다른 핀테크 기업에게는 명백히 흥미롭다. 2017년 2월 Ant는 막 시작한 카카오 페이의 40% 지분을 구매했다. 카카오 페이의 최고 전략 담당자 신원근은 Ant의 파트너로서의 매력은 그들의 포트폴리오가 카카오 페이가 하고 싶은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Ant로서는 카카오 톡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다. “그들은 메신저 앱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어 했습니다.”

카카오는 한국의 기존 은행들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2017년 카카오 브랜드의 모기업 주식회사 카카오를 포함한 컨소시움은 대한민국 최초의 디지털 은행 허가 두 건 중 하나를 확보했다. 카카오 은행은 수월히 성공하였다. : 13일 만에 2백만 가입자 예금을 유치했고, 현재는 8백 9십만 고객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디지털 은행 k-bank는 1백만 가입자 이상 뒤쳐져 있다) 금융위원회는 비금융기업들이 다수 지분을 확보한 은행과 2개 이상의 디지털 은행 허가를 고려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 은행의 오직 10%만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허가된 최대치이다.)

카카오 은행은 다른 은행들이 건실함과 훌륭함을 내세우는 것과 달리 즐거움과 재미를 내세운다. 카카오 뱅크와 카카오 페이의 현금 카드는 카카오 톡의 이모지로 만들어진 여덟 괴짜 캐릭터 카카오 친구들을 특징으로 한다. 예를 들어, 무지는 토끼처럼 차려입은 긍정 단무지(노란 무 피클)이다.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라이언은 둥둥섬의 왕좌를 포기한 친절한 사자이며 갈기가 없는 것에 대해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

한국 사람들이 그들의 금융 생활을 카카오 계정으로 옮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결국 5개의 계좌를 가지고 있을 때, 6번째를 만드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계좌를 개설한 다수의 사람들은 고객의 기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신경하고 냉철한 은행원이 그들의 돈을 지키게 하는 것보다는, 친절하고 갈기 없는 사자로 대표되는 브랜드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

source: https://www.economist.com/special-report/2019/05/02/south-korea-is-trying-to-make-banking-fun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명

내가 하루 하루를 버티는 힘은 앞으로는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 그리고 실제로 나아진 것을 체감하는 데서 온다. 기대도 충분하고 체감도 충분할 때 그럭저럭 버텨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아파트 평수 늘리다가 젊음이 다 갔다’는 많은 한국 사람들의 한탄이 아닌게 아니라 ‘아파트 평수’로 상징되는 주거 환경의 개선의 체감이라도 있어야 아침 6시반에 일어나서 추운 현관 문 앞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요즘 이 체감이 어렵다. 왜냐하면 나라는 사람은 이 체감에도 시간을 충분히 쓸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식이 풍요로워진 것을 알기 위해서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이 필요하고, 체력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기 위해선 운동이 필요하다. 유머나 사교가 늘었다 한들 대화와 친목이 없으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가만히 누워서 음악을 들으며 유체 이탈을 통해 내 1m 위에서 나를 살펴보는 시간을 통해 내가 나아졌다는 것을 안다.

내게 또 이 시대를 비슷한 위치에서 비슷한 속도로 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오직 가능한 것은 소비를 통한 체감 뿐이다. 이것은 위에서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길 밖에 찾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과 내가 공통으로 가진 딜레마이다. 소비는 진득한 시간이 필요없이 즉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곳에서 자고, 좋은 차를 타고,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는 곳에 간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돈이 나를 나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에 돈을 쓴다.

노동과 소비 만을 무한히 반복하는 삶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노동과 이를 통해 벌어들인 재화의 소비에서 찾는다. 소위 ‘노비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내 문제 의식은 현대 사회는 노동과 소비의 쳇바퀴를 도는 삶 이외의 삶을 사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내가 더 느린 삶을 살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에게만 그 과실을 나누어주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닌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실질적인 비용과 상대적 박탈감과 불안이 매우 크다. 스스로 느린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비교적 따뜻한 공간을 내어 줄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완전한 낭비가 아니며 사회를 유지 시키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