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 120cm

어느 사이엔가 ‘국내 최고 시설 수영장’ 이라는 문구에 혹해서 등록한 스포츠 센터에서의 수영 강습도 일년이 다 되어 간다. 뭔가 배우려고 했던 것 보다는 조금 더 재미있는 운동을 위해서 시작한 수영이 예기치 않은 스포츠 센터의 보수 공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은 조금 아쉬운 일. 이제야 간신히 접영을 알듯 말듯 하게 되었는데!


학교 스포츠 센터에서 느낄 수 있는 수영의 매력은 다른 게 아니라 고작 120cm의 내 어깨에 닿을까 말까 한 깊이의 물 속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느낄 수가 있다는 점이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물에 발을 담그기까지의 짧은 추위만 참아 내면 내가 평생을 살아온 공기 속 세상을 떠나 내 전신의 피부가 다른 것과 접촉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예전에도 글에서 묘사한 적이 있는데 스쿠터를 타고 지나는 터널 속이나, 혹은 수중이나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소리가 들리고 또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손쉽게 즐기는 해외 여행과도 같다. 아니 어쩌면 그 보다 더욱더 급격하게 내 머리 속의 외부에 대한 인식을 스위치 시켜야 되는 격심한 일일 지도 모르겠다. 우주 유영을 대비해서 물속에서 훈련하는 것을 보면 ‘물 속’이라는 조건이 인간에게 주는 변화는 그렇게나 대단한 것인가 보다. 하긴 물속에 빠져 죽는 사람도 있으니까.


아무튼 지금은 꽤나 즐기게 된 수영이지만, 애초에 결심했을 당시의 내 상황은 평생 물 속에 눈과 코와 입을 동시에 집어 넣어 본적이 없는 맥주병이었다. 두려움에 떨며 물속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로 두근거렸는데 잠수를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강사 분에게 충격을 받고 정말로 수영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잠수가 익숙해 진 다음에는 그 다음 문제가 첩첩 산중으로 나타나고 하나를 돌파할 때마다 한 달씩 걸리는 그야말로 끈기와 근성의 배움 길이었다. 물론 한 고개 두 고개 시간을 쏟으며 넘어왔기 때문에 지금이 이런 즐거움이 있는 거겠지만.


발로 물을 부드럽게 밀고 당기면서 두 다리 사이로 물이 빠져 나가는 느낌. 팔을 물속에 넣어 힘차게 당기면 머리부터 시작된 물살의 갈라짐이 양 어깨와 허리를 부드럽게 타고 넘어가는 느낌. 발을 찰 때 마다 등과 배의 물살의 빠르기가 서로 바뀌면서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 이런 것들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내 주위의 흐름이자, 또한 그러기에 더욱 뿌듯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 이러한 것들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내가 조금이나마 성장했구나. 어제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질서에 따라 세상이 움직이고 그 원인에는 나의 변화와 성장이 있구나. 그 결과는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오래 수영할 수 있는지로 손쉽게 증명되고 혼자 하는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이러한 자기 성장의 느낌이다.


아무튼 수영도 이제 당분간 안녕이다. 몸이 기억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일단 접어서 간직하고 또 다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싶을 때 꺼내어 깊이 잠수하면 될 것 같다. 뭐, 당분간은 굳은 의지로 등록한 3개월 체련장 이용권을 썩히지 않도록 열심히 이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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