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생각

‘전국 5대 빵집’만큼 알면서도 속는 캐치프레이즈는 없는 것 같다.

전국이라는 범위가 비현실적이고, 5대의 선정 기준도 애매모호하다. 3대 쯤 되는 빵집에서 단팥빵을 사먹었는데 평생 돈만 세다가 퇴직한 은행원 아저씨가 제빵학원에서 6개월 수강하고 만든 우리 동네 빵집이랑 차이를 못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집 간판이나, 블로그 제목이나, TV 프로그램 어디서나 이러한 문구를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에든 순위를 매길 수 있다는 생각과 그렇게 매겨진 순위는 항상 값어치 있는 정보라는 우리의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다. 이분법과 마찬가지로 꽤나 빨리 난잡한 정보를 정리하는데는 순위를 매기는 것(Sorting) 만큼 효율적인 일도 없다. 그리고 순위를 매겨 놓으면 나중에 이걸 다루는 일을 할때 드는 시간도 짧아진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키 순으로 번호를 매기고, 대학교는 성적 순으로 잘라 입학 시킨다. 결혼 정보회사는 등급제를 운영하고, 잡 코리아에 가면 한국 기업을 연봉 순으로 정렬해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순위 사회에 살다보니 무엇에나 순위를 매기려고 하는 버릇이 생겼다. 버릇 수준이 아니라 과도한 순위병 환자들이다. 그리고 이 병의 가장 큰 부작용은 시간을 들여 오래 보아야 음미할 수 있는 향기를 못맡는다는 것이다.

5대 빵집을 선정해서 빵집에 1, 2, 3, 4, 5를 매기고 나면 빵을 만드는 사람의 노력, 그 빵집 만의 독특한 빵, 빵집의 독특한 향기와 위치, 그 빵집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는 모두 사라지고 어떤 빵집이 다른 빵집보다 낫다라고 부등호 몇 개만 남는다. 그리고 실제 방문해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된다. 이것은 빵집 주인 뿐아니라 빵을 좋아하는 빵돌이들에게도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나는 빵돌이가 아니라 상관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러한 문화가 사람에게 적용될 때이다. 나의 노력은 무시되고 결과, 점수, 순위만 남는 세상에서 사람의 매력과 스토리, 애정 그리고 향기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미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사람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만큼 사람의 가장 큰 불행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것을 순위로 처리하도록 강요받는 현대 사회에서 이것과 역행하는 삶을 살기란 정말,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내가 무엇을 순위대로 보지 않으면 나의 순위가 내려가는 세상의 규칙이 너무 강력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이 규칙대로 참여하거나, 떠나거나 하는 두 가지 선택만을 강요 받는다.

하지만 이것을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내가 무엇인가 시작해야 한다면 1과 2 사이에 위치한 2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의 아름다움이 1과 2사이의 벽을 허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아름답고 그것을 사람들이 알아준다면 순위가 의미 있는 세상이 아니라 그 존재가 의미 있는 세상으로 조금 씩 옮겨 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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