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다고 믿는 것

싸움이 많은 세상이다. 나처럼 툭하면 양비론을 펼치는 평화주의자에게도 어쩔 수 없이 결투에 나서야 할 때가 왕왕 발생한다. 어떤 싸움은 무엇이 옳은지 결국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뻔히 보고도 싸운다. 어떤 싸움은 내가 옳은지는 상관없이 남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어서 싸운다.

세상에 옳은 것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싸우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옳다는 자기 최면을 걸고 그  굳건한 에너지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최면에는 알게모르게 사욕(私慾)이 작용하여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되어 있다.

나 편한 것, 내가 배부를 수 있는 것이 믿고 싶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싸운다. 내것이 있고, 내 몸이 있으니 본래 이치가 그러한 것이다.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에너지가 Zero-sum의 싸움으로 그치지 않도록 법이나 규범, 크게는 문명(文明)이 바르게 사람들을 인도해야 한다.

같다는 말이 얼마나 추상적인지..

  트위터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별 소득 없는 싸움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누가 옳다느니, 누가 더 전문가라느니, 누구의 정보가 더 최신의 것이라는 등의 딱히 실제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이유들로 ‘별’ 걸 가지고 다 싸운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같은 것을 보고도 제각각 다르게 생각하는 생각의 다양성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본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생각할 때, 보는 대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히 일어나는 싸움 중의 하나를 생각해보면, 짬뽕으로 유명한 중국집이 있고, 이곳의 맛을 극찬한 어느 식도락 블로거가 있다고 해보자. 이 극찬한 글을 읽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중국집을 방문한 누군가가 짬뽕의 맛이 형편없다고 느껴 블로거가 올린 글에 비아냥 거리는 “님 입맛 참 싸구려네요.” 라는 댓 글을 달아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다른 입맛을 가졌기 때문에 의견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싸움도 자연스럽다는 반응 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두 사람이 먹은 음식이 애당초 다르다는 사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그날 따라 마른 오징어를 썼다던가, 요리사가 손을 다쳐 견습 요리사가 조리했다던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싸울 이유가 없다. 각자는 각자의 음식을 맛봤고, 이는 서로 다른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엄밀히 맞추어 적어도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애당초 물리적으로 Equivalent 한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면 의미 없는 싸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성급한 동일시의 오류의 예를 정말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실수를 애초에 막기 위해서 우리는 “같다”라는 말, 혹은 개념을 정말 신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말을 정확하게 사용할 Tangible한 예라는 것을 찾기가 힘이 들 정도로 이는 추상적인 용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근사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같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어느 경우에 이 말이 적합하지 않은지, 어느 경우에 성급하게 동일시 하고 있지 않는지 파악해 각기 다른 세분화된 개념을 머리 속에 납득하고 체득하고 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각이 내 기준에서 틀린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 선 상에서 출발하여 다르게 발전시켜 나간 것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여유도 발휘할 수 있고 말이다.


  디지털 세상처럼 모두가 같은 것에서 출발하면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세상도 아니고, 세상 모두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 세상이다. 여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