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부인 | 세기의 스캔들

여성주의 영화를 표방했지만 너무 드라마가 강한 나머지 뭔가 있어야 될 딱딱한 부분까지 녹아 버린 듯한 영화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를 보는 것은 즐겁고, 또 그게 우리나라가 아닌 전혀 다른 세상이면 더욱더 신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는 요즘 TV를 틀어도 일주일에 이틀은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야기. 세기의 스캔들까지는 안되고 One decade 스캔들 정도 될 듯. 너무 악평으로 시작하나? 하지만 자주 나오니 만큼 그 즐거움은 보증 된 것. 스릴은 없지만 적당히 곡선을 그리며 요동치는 플롯은 엔딩 크레딧을 벌써? 라고 느낄 만큼 재미있기는 했다. 탄탄한 소설을 바탕으로 해서 무리하지도 않고 의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휘트브래드상 수상작이라는데 이 상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졌다. 지금까지 읽은 수상작들이 다 내 마음에 들었으므로 학교 도서관에 구입 신청도 해 놓고. 결론적으로 7천원 감은 아니지만 천원 감은 충분히 하는 영화! 아, 키이라 나이틀리의 허리를 꽉 조이는 옷을 입은 모습을 캐리비안의 해적에 이어 보고 싶다면 역시 더욱더 봐 줘야 하는 영화. (내 영화평은 왜 이리 내용이 없지)

비몽 | 悲夢

장자는 물아일체의 경지를 생각하되, 호접지몽 이라는 지극히 애매하지만 고상한 비유로 이를 표현했다. 비몽이 이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화는 단순한 장소와 인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이것들은 항상 대칭 구도로 배치되어서 과거와 현재, 남자와 여자, 꿈과 현실로 나뉘어 지고 이의 경계는 처음에는 분명해 보인다. 블라인드 뒤의 여자와 앞의 남자처럼 카메라의 영상도 분명이 이분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둘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자연스러움에 저항하지만 (무려 머리를 자해하면서;) 결국은 과거가 현재와 포개 지고, 남자와 여자가 포개어 지고, 꿈과 현실이 하나가 되고 죽음과 삶은 하나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나비가 된다.

김동률, 그리고 유희열

부드러운 음악에 대한 욕구가 조금씩 커져가고, 인생의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가사에 공감하는 법도 배우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해서 예전에는 잘 안들었던 한국의 발라드 싱어송라이터들의 곡을 근래에는 자주 듣는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가정학, 교육학 이런 곳에 가서 빌릴 책을 고르는 것처럼 어느 표제에 손이 가야할지 갈팡질팡했지만, 이윽고 소위 이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 누구인지, 인정받고 있는 뮤지션이 누구인지 등을 귀동냥으로 얻어 듣고 난 다음에야 제목에서 언급한 뮤지션들이 유명하고 그들의 음악에도 까맣게 손때가 묻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저것 찾아 듣기를 몇 개월이 되고 그것들이 쌓여서 몇 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정도 음악을 배우는 단계에서 즐기는 단계로 넘어가고 보니 김동률, 그리고 유희열의 음악이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지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선율이 아니라 그들의 가사이다.


남성 뮤지션들이 쓴 가사라 그런지 많은 부분 공감되는 것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음악을 듣는 또다른 매력의 하나인데, 결과적으로 말을 하고 넘어가면 김동률의 가사가 훨씬 소화가 잘 되는 편이다. 유희열의 가사를 듣다보면 마치 어울리지도 않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억지로 서버가 권해주는 오늘의 요리를 먹는 느낌이다.


 김동률은 남성팬을 위해서 가사를 쓴다면 유희열은 여성팬을 위해서 가사를 쓴다라는 느낌이다. 나같은 별로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남자들이 몇 번의 사랑을 실패하고 몇 번의 사랑에 두근거리고 몇 번의 사랑을 후회하는 그러한 일상 속의 조금은 중요한 이벤트들을 솔직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가사를 붙이는 김동률에 비해서, 유희열은 여성들이 바라는 절반의 현실과 나머지의 절반의 상상과 나머지의 공상으로 만들어낸 남성이 어떻게 반응해야 그들의 연애를 더 이상적(물론 여성의 입장에서)으로 만드는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속의 남성이 하는 이야기를 가사로 풀어낸다.


그래서 김동률의 가사를 올린 피자는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유희열이 만든 것은 영 거북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 저런 남자가 어디있어? 착한척 하기는.” 그리고 설마 이런 남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로멘틱한 상상을 하는 여성들이 있을까 조금 걱정되기도 하고 말이다. 예술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야 훨씬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즐기는 사람들은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는 못하지만, 확실히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위한 환호성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울적할때 듣는 클래식 음악 선

  다른 것으로 명망을 얻은 유명한 사람들은 자기가 선정한 클래식 음악들을 묶어서 음반을 만들어서 팔기도 하던데, 그걸 보고서는 혹시나 숨겨져 있는 보석같은 곡을 만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두근두근 트랙을 살펴보는 일이 있다. 하지만 이건 뭐. 중/고등학교 음악시간 교과서 음악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상업성을 위해서 대중적인 음악을 넣어야 한다지만, 네이버“듣기 좋은 클래식” 만 검색해도 훨씬 더 전문적인 리스트가 나오는 마당에 이런 걸로 돈벌어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내가 듣는 음악들 중에 골라서 끄적끄적 적어본다. 또 음악의 바다를 헤엄치다 부표를 하나 띄워놓는 그런 의미도 있다.


Ravel :  Piano concerto in G major, 2nd. Adagio ass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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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갈한 곡이 있을까? 현란하지 않은, 철저히 뒤에 숨겨져 있는 오케스트라와 단조로운 반복의 피아노 선율은 아주 단순한 모노톤의 구조지만 대단한 중독성으로 다가온다. 마치 어두운 무대 뒤에 감춰진 오케스트라와 홀로 춤추는 발레리나 같은 느낌의 곡. 최근에 읽은 ‘롤리타’라는 소설이 자꾸 떠오른다.


Ravel :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O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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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 음악중에 자주 듣는 것 하나. 참 이 아저씨 음악은 단순명료해서 좋다. 화려하지도 않고 수식이 많이 붙지도 않은 정갈하고 순수함이 흘러나온다. 어떻게 이름도 이렇게 잘 짓는지. 진짜 로멘티스트 였을 듯.


Saint-Saens : Symphony No.3 In C.Minor “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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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다보니, 요즘은 프랑스 음악에 빠져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네. 드뷔시 “거울”도 요즘 한참 좋게 듣고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생상은 간단한 소품 몇개만 듣고 나에게는 잊혀진 작곡가였는데, 교향곡을 들어보니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


Richard wagner : Tristan und Isolde “Isoldes Liebest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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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잔인하게도 탐미적인 사랑의 음악이 또 있을지 싶다. 밤에 가만히 귀기울여 듣다보면 숨이 멎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카라얀 지휘의 베를린필 연주로 골드 시리즈 음반에서 뽑아냈는데 음질도 좋고 도대체 흠 잡을데가 한군데도 없다. 경탄!

바흐 b 단조 미사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성 토마스 합장단

Classical Music을 즐겨듣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 중에서도 어떤 음악을 들으세요?” 물어보면 “모짜르트 이후부터 라흐마니노프 이전까지요.” 라고 말을 한다. 사실 뭐 대부분이 커버되는 범위지만, 중고등학교때 배운 서양 고전음악의 시대 중 빠져야 할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바로크 음악이다. 바흐, 하이든, 헨델로 대표되는 이들 시대의 음악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울타리로 둘러싸인 느낌이었다. 집에 있는 음반에도 거의 손이 안간채 방치되기를 몇년. 그런데 오늘 아무래도 그 편견을 깨버려야겠다.


자주가는 예술의 전당에서의 클래식 콘서트이지만, 이번 만큼의 중량감을 느끼는 콘서트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가는 콘서트들이 다 무료로 티켓을 구한 공연들이기에 -_-; 이러한 소위 티켓 파워가 있는 공연들은 초대권을 구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어차저차 어렵게 구한 티켓이니만큼, 충분히 즐기고 오기위해서 사전 예습이 필수! 가디너가 지휘한 음반으로 열심히 공부도 하고 귀에 충분히 숙달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공연자체에 대해서는 기립박수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래도 나름 후기를 써야겠다고 작심한 만큼 좋은 점과 나쁜점 몇 가지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 따뜻한 악기소리 – 어찌 이렇게 고급스럽고 경건한 악기소리가 날 수 있을까? 고가의 악기를 쓰는 것도 그렇고 세계 일류 수준의 연주자들이라 미세한 실수도 찾기 힘들었다.


2. 관람태도 – 주최측에서도 악장간 박수를 엄금하고, 또 음악이 끝난후 바로 터지는 박수에 대해서 주의를 충분히 주었는지, 나쁜 타이밍에 터지는 박수가 하나도 없었을 뿐더러 관람태도도 매우 좋았다. 초대권을 많이 뿌리지는 않은 모양이고, 관람 연령층이 꽤나 높아서 정숙한 공연 분위기가 좋았다.




1. 끝으로 갈수록 지치는 합창단 – 소년 합창단이니만큼 2시간이 넘는 공연시간 내내 끝까지 집중력을 유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아무래도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목소리의 힘이 떨어지고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지휘자도 끝에는 거의 합창단만 지휘하는 모습.


2. 조금 더 친절한 자막 – 물론 음악이 주가 되는 공연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조금 더 자세한 자막을 위에 틀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두운 공연장 안에서 프로그램 북을 보면서 가사를 찾기도 힘들었다. (이내 포기했다)


어러가지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정말 인상적인 공연인 것은 틀림없었다. 바로크 음악을 듣게 된 계기가 될 것도 의미있지만, 합창단이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새삼스래 재발견하게 되었고 말이다. 합창이라고는 매번 베토벤 9번만 듣다가, 이러한 목소리가 차곡차곡 겹쳐서 쌓이는 아름다움은 거의 처음 느껴본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튼 이러한 문화생활은 언제나 재충전의 계기가 된다. 또 열심히 다음 공연 사냥을 위해 떠나야지 –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