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나가사키

후쿠오카의 캡슐호텔은 효율적이다. 필요한 것은 모두 있고, 필요치 않은 것은 모두 없다. 나처럼 아침식사를 먹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느낀다.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은 호텔 밖을 나가야 한다. 푹 잔 탓에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없어 서둘러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구글 맵으로 검색해서 하카타 역 근처에 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시간 안에 먹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 곳의 효율성도 만만치 않았다. 15분도 안걸렸다. 역에서 유명하다는 크루아상과 물을 하나 샀다.

12일의 일정이라 짐을 많이 쌀 필요는 없었다. 옷은 티셔츠 세 장, 반바지 두 개, 바람막이 하나, 그리고 속옷들, 운동화 하나, 샌들 하나. 이게 전부다. 하나라도 더 가져왔으면 필요 없을 뻔 했고, 하나라도 없었으면 곤란할 뻔 했다. 최소 삼일에 한번은 빨래를 했다. 일본은 동전 빨래방 시설이 잘 되어 있어 불편한 것은 없었다. 옷은 필요하면 사면 된다. 대부분 한국과 같은 가격이다.

나가사키로 이동한다. 후쿠오카에서 나가사키는 신칸센이 완전히 연결되지 않았다. 중간에 다케오온센 역까지는 고속 열차(Limited Express)를 타고 이동하고, 다케오온센부터 나가사키까지는 신칸센을 타고 간다. 이 구간이 뚫리면 홋카이도의 하코다테까지는 신칸센이 연결된다. 시간표가 잘 짜여 있어 정차역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없다. 내려서 반대편 승강장 대기하고 있는 열차를 타면 곧 출발한다. 나가사키까지 가는 신칸센도 개통한지 몇 년 안되었다고 한다. 이 신칸센의 이름은 카모메로 갈매기라는 의미이다. 듣고보니 머리 쪽이 갈매기를 닮았다. 중간에 환승하는 노선을 하나로 묶어 릴레이 카모메라는 이름으로 발권해주고 있었다.

나가사키는 한국 사람에게 몇 가지로 유명하다. 첫 번째로 짬뽕, 그리고 카스테라가 익숙하다.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떨어진 도시 중 하나이다. 최근 군함도라는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동명의 군함도(하시마)라는 섬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검색하면 나올 법한 이야기다. 조금의 지식을 덧붙이자면 일본 내에서 최초로 서양에 개항된 도시라는 특징도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가 되는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에 억류되었던 하멜 표류기의 하멜이 (참고로 네덜란드 사람이다) 13년간의 억류 생활을 마치고 기적적으로 탈출해 도망쳤던 곳이 나가사키이다. 한국과 가깝고 조선소가 많은 탓에 많은 조선인들이 억류되어 강제 노동을 해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소도시 임에도 불구하고 볼거리가 많으며 도시 자체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야경이 유명한 도시이기도 하다. 1박의 일정이 너무 짧아 아쉬웠던 터라 꼭 가족들과 다시 가보고 싶다.

역 앞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여행 중 예약한 숙소 중 가장 작은 규모의 게스트하우스로 고작 다섯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1층에서는 까페를 운영하고, 2층을 게스트하우스로 꾸며놓았는데 장기 투숙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주 작은 화장실과 샤워룸이 하나씩 있었다. 같이 숙박하는 젊은 일본인 아가씨와 홍콩에서 온 아가씨가 괜히 나 때문에 불편하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오늘은 많은 곳을 돌아봐야 하므로 서둘러 짐만 맡긴 채 정오쯤 원폭 기념관으로 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노면 전차가 아직도 활발히 운행 중이었다.

전차를 타고 도착한 원폭 기념관은 원폭 폭발 중심에서 가파른 경사지를 올라간 남서쪽 사면에 위치해있었다.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서 인류 역사상 2번째 핵폭탄이 폭발했다. 원자 폭탄은 지면 위 500m 상공에서 폭발했다. 그해 말까지 15만명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10~15%는 이름도 알려지지 못한 조선인이었다. 폭발 중심 가까운 곳의 학교 건물에서는 단 한명의 생존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나가사키 쪽에 히로시마보다 훨씬 더 큰 폭탄이 떨어졌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라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양쪽 도시의 원폭 기념관을 모두 방문했다. 규모와 상징성은 히로시마의 원폭 기념관이 훨씬 컸지만, 관람하기에는 나가사키 쪽이 나았다. 히로시마 쪽은 감상적인 설명이 많았던 반면, 나가사키에서는 담담한 설명이 이어져서 나름대로의 생각, 사건, 증거들을 차분히 조합해 나갈 수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기억이 난다. 방문 전 두세권의 관련 책을 읽었다. 나 나름대로는 40년 후 취재를 온 기자처럼 머리 속에 몇 가지 의문을 가지고 방문했다. 하지만 올바른 인식을 방해하는 감정이 올라와, 사실을 쌓아 올려 나름대로의 생각과 결론을 완성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 것이 옳은 것인지, 다른 주장이 옳은 것인지, 나의 생각과 인식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히로시마에서 느꼈던 감정이 이쪽이었다.

주위의 폭심지, 평화공원 등을 둘러보았다. 개인적으로 방문한 관광객, 수학여행을 온 것으로 보이는 고등학생, 견학온 유치원생들이 많이 보였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해설을 해주고 계셨다. 80년 전 일이라 수 세대 전의 일이긴 하지만, 장수 국가인 일본에는 실제 원폭을 어릴때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들에게 80여년 전에 봤던 하늘의 빛나는 섬광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그들의 인생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을까. 폭탄이 일으킬 참상이 충분히 예측 가능함에도 미국은 어떻게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었을까. 등등을 생각하며 흐린 공원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원폭 기념관을 워낙 꼼꼼하게 본 탓에 시간이 많이 지났다. 다시 노면 전차를 타고 구라바엔(Glover Garden)으로 향한다.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라 도시 마다 방문할 곳을 미리 정하지 못했다. 원폭기념관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기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개항을 했던 일본, 특히 나가사키는 많은 서양인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그 중 글로버 상회라는 스코틀랜드 출신 글로버가 세운 회사는 규슈 지방 세력인 사쓰마와 조슈번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공급하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글로버 가든, 구라바엔은 창립자 글로버와 그의 일가 친척들이 거주하던, 나가사키의 한적한 언덕 위에 세워진 주택과 정원을 관광지로 개발한 곳이다. 입장 시에는 요금이 다소 비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잘 꾸민 정원을 충분히 둘러보고 나니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우리나라 개화기의 유적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은데, 이 곳은 보존도 잘 했을 뿐더러 끊임 없이 보수하고 새로운 것을 덧붙이면서 좋은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였다. 바다 건너편으로 보이는 조선소와 나가사키 역, 시내 경관이 볼 만했다.

나가사키 짬뽕을 먹으러 슬슬 언덕을 내려간다. 나가사키 짬뽕의 원조라는 시카이로에 가기로 했다. 대부분의 음식점처럼 이 곳도 브레이크 타임이 있어서 저녁 시간이 시작되는 4시 반 정도에 맞춰 방문했다. 다행히 기다림은 없었다. 혼자 온 사람들도 차별하지 않고 온 순서대로 바다 경관이 보이는 멋진 테이블을 줘서 좋았다. 맥주를 한 잔 시킬까 고민했지만, 술을 마시면 허리가 말썽일까봐 꾹 눌러 참았다. 장기 여행에서는 몸을 사리게 된다. 아무튼 신선한 재료와 불 맛의 풍미가 뛰어난 음식이었다. 한국에서 이 가격과 맛이면 반드시 성공한다.

가는 길에 저녁 출출할 때 먹을 카스테라와 우유를 사기로 했다. 귀국길이라면 카스테라를 넉넉히 사서 선물하면 좋으련만 아직 일정이 많이 남은 여행인지라 나만 맛볼 양 만큼을 샀다.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여러 체인점이 있고 체인점마다 수 많은 분점이 있다. 잠깐 인터넷 검색으로 살펴봤지만 어느 곳이 원조인지 명확하지 않은 듯 했다. 가까운 곳을 방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방문한 곳은 분메이도라는 곳이었다. 매장은 고급스러웠지만 판매 점원은 20대 초반의 젊은이로 아직 일이 몸에 익지 않은 풋풋한 상태로 보였다. 같은 질문을 여러번 물어보고, 카드 결제도 서툴러 보였다. 일본은 의무 군복무가 없고, 대학진학률도 낮기 때문에 접객업에 취직한다면 사회인으로써 진출하는 연령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다. 아마 그런 젊은이가 아닌가 싶었다. 이럴 경우 견습중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경우도 많다.

데지마를 지나, 메가네바시로 걸어간다. 여행하는 12일 동안 하루에 적으면 2만보 많으면 3.5만보 정도를 걸어 다녔다. 이 날도 아침 8시가 안된 시간에 숙소를 나서 6시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쉬는 시간 없이 걸어 다녔다. 데지마 내부를 꼭 살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걸을 수 없고, 또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두기로 한다. 근세 극동 아시아 역사책이나 해양 문화사책을 몇 권 읽다보니 데지마는 익숙했다. 메가네바시까지 간신히 걸어가서 사진만을 찍고 노면 전차를 타고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자려고 누웠는데, 작은 소동이 있었다. 옆 침대에 누워있던 아가씨가 갑자기 후다닥 일어나더니 바삐 오가며 난리법석이길래 왠일인가 나가봤더니 처음 보는 벌레가 날아들어와 온 방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창문을 모두 틀어막고 오늘의 숙박인원 세명이서 삼십분 동안 벌레를 잡았는데 모두 소탕을 못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아저씨가 잠자리채를 들고 나타나서는 도저히 안되겠는지 매우 미안한 표정으로 원하면 1층 까페에 침대를 만들어 줄테니 그 곳에 가서 자라고 했다. 여름 직전의 비오는 날이라 바로 옆의 공원에서 날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아가씨는 내려가버렸고 나는 그냥 자기로 했다. 힘도 없고, 불을 끄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느낄 수 없으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유와 카스테라를 먹고 다소 불편한 침대에 게의치 않은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카스테라는 너무 달아 이를 꼼꼼하게 닦게 만드는 맛이었다.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후쿠오카

신기하게도 후쿠오카 공항은 도심과 붙어 있다. 서울이라면 용산에 공항이 있는 꼴이라 지하철로 10~20분만 이동하면 하카타 역에 닿을 수 있다. 도심에서도 머리 위로 랜딩 기어를 내린 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건물의 고도제한이 심할 것 같긴 하지만, 딱히 높은 건물이 필요한 도시도 아닐 것 같다. 편리한 도심 접근이 단기 여행객들에게는 많은 매력이 있다.

후쿠오카의 중심이 되는 역은 후쿠오카역이 아니라 하카타역이다. 옛날 후쿠오카시와 하카타시가 합치면서 도시 이름은 후쿠오카, 역 이름은 하카타로 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이런 거래가 가능할만큼 그 때는 기차역 이름이 중요했던 것이다.

일본은 철도 교통 발달에 유리한 지형을 가졌다. 국토의 폭이 좁고 길어 그 중심을 관통하여 경제 권역을 연결하는 간선(그래서 고속철도의 이름이 신-간선이다) 을 건설 한 후 각 지역 중심지로부터 소도시까지의 지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발달한 것 같다. 중심을 관통하는 선 만으로도 대부분 지역에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같은 면적이라도 원형이나 사각형의 국토를 가진 나라는 소외되는 지역이 존재하거나, 승객이 여러번 갈아타는 불편함을 겪게 될 수 있다.

나의 여행은 공항에서 하카타 역으로 이동해 JR패스를 교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카타 역의 중심에 초록색 JR 패스 교환 창구가 있다. 여기는 늘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패스를 교환하고 있다. 붐비는 시간에 가면 꽤나 오래 기다릴 수 있으니, 아침이나 밤에 방문하라는 팁을 읽었다.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전혀 불편한 점은 없다. 나는 규슈 레일패스와 전국 레일패스를 모두 교환했다. 참고로 규슈 레일패스로 지정석을 예매하는 기계와 전국 레일패스로 지정석을 예매하는 기계가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해있어 불편하다. JR 규슈와 JR서일본(니시니혼)이 따로 운영되어 그런 듯 하다.

이번 여행은 신칸센 1등석을 타고 전국을 최대한 돌아다니기, 숙소에서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기, 각 지역의 대표 음식을 먹어보기라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도시 별로 대부분 1박, 길게는 2박 정도를 한 후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숙소는 하루 전이나 당일 가장 싼 숙소를 아고다로 검색하여 결제하였고 대부분 2000엔 내외의 숙소였다. 지역의 대표 음식을 먹는 것은 노력했으나 혼자 먹기 어려운 음식도 있었고, 딱히 식도락을 즐기는 편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친 경우가 많았다.

후쿠오카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2박을 한 도시다. 말끔한 캡슐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씩 숙박 하였는데 두 곳 모두 만족스러웠다. 일본의 캡슐 호텔은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체크인/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게스트하우스라고 특별히 파티나 곤란하게 말을 거는 외국인은 없었다. 조용하게, 효율적으로, 저렴하게 여행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최적화 되어 있었다. 다만 기본 요금에 타올 등을 빌리려면 약 200엔에서 500엔 정도의 추가 요금을 받는 경우가 꽤 있어 개인 비품을 가지고 다닌다면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 듯 했다.

JR패스를 교환하고도 숙소인 캡슐 호텔의 체크인까지 꽤나 시간이 남았다. 짐을 맡기고 오호리 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6월 중순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오래 걸으며 체력을 소진할 수 없어 천천히 쉬면서 걷다, 앉아있다 반복했다. 더워서 오리배를 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후쿠오카 성터에 올라가볼 수 있었는데 천수 등 건축물을 모두 없어지고 석축만 남아 있었다. 성 뒤쪽으로는 고로칸이라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서양과의 교역을 위한 옛 기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공원과 성터 보다 이런 역사 문화 유적이 내게는 더 흥미롭다. 우리나라는 아직일 수국이 흐드러진다.

한중일 삼국이 서로 교역하고 문화를 주고 받은 것은 아무리 짧게 잡아, 우리의 백제부터 셈한다 하여도 천오백년의 역사를 가진다. 그 안에는 중국의 다도를 일본이 수입하거나, 백제의 멸망을 막기 위해 일본이 한반도에 파병하거나, 조선의 문물을 전파하기 위해 에도, 현재의 도쿄에 통신사를 파견하는 등 교류와 협력의 역사도 있는 반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중일 전쟁과 같은 전쟁의 역사도 있다. 역사는 이렇게 이웃에 위치한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배제한 체 우리 나라만을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연결 고리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 곧 우리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는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속의 한국을 여행한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여행의 첫 날이라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여정이 12일이나 남아있다.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가 한숨 푹 자고 저녁을 먹을 때 나와보기로 하였다. 어딜 가는 여행이던 이제 숙소 체크아웃 시점에 맞춰나와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저녁에 체크인 하는 일정은 불가능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어디에서는 앉아, 또는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주로 신칸센 1등석에 앉아 등받이를 적당히 눕혀놓고 시속 260km의 휴식을 취했다. 여행 전 많은 여행기를 읽을 때 꼭 1등석(그린샤권) JR패스를 사라고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이유는 몸으로 체감했다.

딱히 각 도시나 지역의 이름난 음식을 먹지 않을 때면 구글 맵을 켜 근처의 라멘 집이나, 마쓰야, 요시노야, 나카우 등 돈부리, 카레, 돈까스 집을 찾아 끼니를 때웠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대학생 시절 일본에서 잠깐 살때는 300엔, 비싸도 500엔을 넘지 않았던 메뉴들이 이제 조금 만 고급진 메뉴를 먹으려면 900엔을 훌쩍 넘었다.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물가가 많이 올랐고, 또 현재도 오르고 있다. 들어가서 키오스크를 찾고,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메뉴 중에 적당한 것을 골라, 현금을 넣고 결제한다. 출력되어 나오는 종이 중에 영수증 말고 메뉴와 번호가 적힌 것을 가지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있는다. 번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종이를 들고 가서 메뉴를 받아온다.

저녁을 먹고 나니 약간은 다시 돌아다닐 기운이 생겼다. 나카스 지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강 건너 섬 지역인 나카스에 가까워 질 수록 분위기가 바뀌어 빛, 소리 그리고 음식 냄새가 강렬해졌다. 강변에는 수많은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고 각각 다른 메뉴를 팔고 있었다. 앉아있거나 줄서있는 사람들의 상당 수는 서양인이거나 한국인으로 보였다.

일본의 대도시는 많은 경우 바다와 접해 있고, 커다란 강이 도시를 관통하여 흐른다. 후쿠오카의 경우 나카강과 미카사강이 흐르고 이 중 나카강이 나카스라는 섬을 만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나가사키, 쿠마모토, 히로시마, 나고야, 센다이, 삿뽀로 등이 이 공식을 따른다. 대도시 대부분이 태평양을 접해있는데, 우리나라 동해를 접한 유일한 대도시가 후쿠오카다. 추측이지만 따뜻한 태평양 쪽을 접해 있는 것이 어업이나 기후에서 더 살기 유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쪽 해안이 더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뒤쪽 건물은 유흥업소로 보였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일본에도 3대 혹은 4대 유흥가가 있다는데 그 중 이번 여행에서 후쿠오카의 나카스, 삿포로의 스스키노, 센다이의 코쿠분초를 모두 방문했다. 저렴한 숙소를 찾다보니 이와 같은 환락가 주변이었던 것 같다. 나는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꽤 불쾌한 경험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겠다.

잠깐의 나들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바로 잠들었다. 아침 3시 30분에 시작한 일정을 10시에 마무리 했으니 꽤나 빨빨 거리고 돌아다닌 셈이었다. 캡슐호텔의 캡슐에 누워서 이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40이 넘은 나이에 헝그리 배낭 여행이라니, 더 자고 쉬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마지막으로 혼자 해외여행을 했던 것은 2006년의 여름이었다. 그것이 나의 첫 해외 여행이었다. 그 후로는 해외여행을 혼자 떠나지 않았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이 여행을 하는 즐거움의 절반은 빼앗아 버린다고 생각했다. 여행은, 특히 해외 여행처럼 오랜기간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여행은 여행 중의 시간 뿐 아니라 여행 전과 여행 후의 시간까지 그 여행에 포함된다. 여행을 같이 계획하지 못하고, 같이 추억하지 못하면 재미는 반감된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17년이 흘러 다시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빼빼마른 빽빽한 머리숱의 청년이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떠났다. 같이 떠날 수 있는 가족이 있긴 하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았다. 빡빡하게 채워넣은 여행이기 때문에 나와 같은 고생을 할 사람을 찾기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17년이 흐른 다음에도 여전히 혼자 하는 여행을 싫어하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여행지로 일본을 택한 이유로는 가장 간편 했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기타 지역에 비해서 비용이 비싸지 않고 준비할 것도 없으며 임기응변으로 많은 것들을 대처할 수 있다. 문화가 다른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곤란한 일이 많다. 예를 들면 호주는 4시 이후에 커피 한 잔 먹기 쉽지 않으며 동유럽은 5시 이후에 칫솔을 사기 어렵다. 일본은 전국 어디에서나 모두 24시간 가능하다.

JR 전국 패스 7일권과 북규슈 패스 3일권을 구입하고 앞 뒤로 하루 씩 붙여 넣어 총 12일로 일정을 만들었다.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출발하고, 저녁 마지막 버스를 타고 귀가한다. 더 길면 부담 스럽고, 더 짧으면 아쉬울 것 같았는데 가장 적절한 일정이라고 생각한다. 더 깊이 들어가는 여행이라면 14일, 21일 이상도 고려해보겠지만 이 정도면 슬슬 지켜워지기 전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느 정도 예상대로 였다.

도쿄는 5주, 고베, 교토, 오사카는 이미 2주 이상의 여행 경험이 있으므로 이쪽의 관광지들은 모두 제외하였다. 이러한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12일의 일정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JR 패스 여행의 특성 상 주요 여행지에서 가장 유명한 것 몇 가지를 둘러보고 이동해야 한다. 한 곳에서 2~3박 이상 한다면 JR 패스를 이용한 여행은 별로 효용이 없다. 따라서 도쿄, 교토 등의 여행지는 최소 2박 이상이 필요하므로 JR 패스를 이용한 여행에는 부적절하다.

후쿠오카로 입국하여 삿뽀로로 출국하도록 계획했다. 점점 더 더워질 날씨를 고려하여 미리 남쪽 지방을 돌고 더 더워지기 전에 시원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마 가을이었다면 반대 방향으로의 여행을 계획하였을 것이고, 한 여름이나 겨울이었다면 여행 방향은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기 용이한 방향으로 계획하였을 것이다. 다행히 나고야를 제외하고는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의 더위를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한낮에는 쉬거나 건물 내 관광을 했고 선선한 저녁에 야외 관광을 했다.

한국의 역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나라는 단연코 일본이다. 백제와의 교류 협력, 임진왜란이라는 조선의 비극, 일제식민지, 그리고 현재까지 한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볼 수록 일본과의 연결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연결 고리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이 것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 이 여행의 목적이었다.

추억이 더 바스라지기 전에 시간이 날때 마다 조금 씩 적어보도록 한다. 숙박을 선정한 도시들은 아래와 같다.

  • 1일차 – 후쿠오카
  • 2일차 – 나가사키
  • 3일차 – 후쿠오카
  • 4일차 – 구마모토
  • 5일차 – 히로시마
  • 6일차 – 나고야
  • 7일차 – 마쓰모토
  • 8일차 – 에치고유자와
  • 9일차 – 센다이
  • 10일차 – 하코다테
  • 11일차 – 삿뽀로

부조리와 이퀄리브리엄

부조리하다고 느꼈던 많은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공부해보면, 사실 이것이 아슬아슬한 평형 상태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 곳곳의 맞닿아 있는 많은 면들은 나름대로의 소재와 역사로 서로를 밀어내며 안으로는 버티고 있는 것이다. 비록 이 형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해서 여기에 악(devil)이 잔뜩 숨어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왜 이런 형상이 되었는지를 잘 파악해보면, 다수의 합리적 선택의 결과로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얼마나 노력을 했어도 많은 변화를 불러오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그 합리적 선택의 가치를 더 많이 인정한다면 보수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여기서 부조리를 꽤나 찾아낸다면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미묘한 평형과 긴장 상태를 완전하게 잘못 쌓아올려진 부조리의 덩어리로만 보거나, 혹은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전한 이상체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이 상태를 그냥 주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깊이 인식 하기 위한 결정의 층위를 우선 살펴보고, 조금의 에너지가 남는다면 주어진 조건에서 이 상태가 최선인가를 판단하거나, 미래에도 이 것이 만족스러운 결과일 것인가를 예측하는 데 쓰는 것이 시각에 구분없는 보편적으로 건전한 태도가 아닐런지.

등산의 의미

나이를 먹을 수록 등산이 가고 싶다.

내 20대 시절, 토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주말을 시작할 때는 이른 시간부터 사당역을 가득 매운 등산객 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또 등산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은 나의 미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등산에 시간을 낭비하지?” 유투브를 보며 아파트 25층 오르 내리기와 다를바 없다고 생각했다.

머리 하얀 중년 남성이 만들어낸 사당역의 번잡함에는 물론 합리적인 이유들이 많다. 공짜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이고, 누구를 불러내도 부담이 없다. 건강에도 물론 도움이 된다. 사계절 변화하는 풍경을 즐기거나,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도 있다. 근교의 산이라면 다른 운동에 비해서 시간이 딱히 많이 들지도 않는다. 두 다리와 등산화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나의 28살 시절에도 이런 이유들을 생각했음에도 여전히 다른 것들이 더 재미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12년이 지나 내가 40대에 접어들 무렵 하나의 이유를 더 찾아냈다. 그 등산객들, 특히 중년의 사람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내가 찾아낸 이유 때문에 부지런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점에 서고 싶었던 것이다. 정점에 서서 더 이상을 올라갈 수 없는 데까지 다다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이미 정점에 도달해서 내리막에 접어들 무렵,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곳까지 두 다리로 걸어올라가 세상을 내려다 보는 희열을 상상하고 경험하고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누가봐도 정점이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