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가치

내가 중학교 때 사모았던 수십장의 클래식 음악 CD 들은 지금 저장된 수백, 수천의 음원보다 훨씬 더 큰 기쁨을 주었다. 무엇이 과도하면 오히려 나에게 주는 기쁨의 총량은 줄어드는 것이 아닐까?

추억이라는 것이 너무 많아 어떤 것을 골라 되새김할지 그 선택이 고민될 정도라면 가치가 별로 없는 것 아닌지, 그것을 아련한 추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몇 가지 없는 추억이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평생을 간직하며 두고두고 되새기는 것이 아닐까?

 

극(劇)

미디어라고 불리는 것을 생각한다.

나에게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어떠한 정보, 가상의 상황, 다른 이의 생활, 미래의 예측, 실패의 원인 등은 사실인가? 전혀 과장되지 않는 있는 모습 그대로 인가?

그렇지 않다. 전체가 아닌 부분 만의 정보, 누군가의 시선에서 왜곡된 정보, 미디어의 희망이 가미된 부적절한 정보들이다. 사실은 없고 온통 극(劇)이다. 현실의 고요함이 아닌 과장되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다.

의미가 없다. 모르는 익명과 마주쳐 스친 옷깃 만큼도 의미가 없는 그런 혼란에 의미를 두고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지.

욕망을 켜켜이 쌓아올리기

나는 비 활동적인 사람이다. 주말에 무엇을 먹으러 다니기도, 놀러다니기도, 누구를 만나는 것도, 내일까지 해야하는 일이 있어서 오늘 밤에 잠을 못자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이번 주말에는 꼭 무엇을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 군더더기 없는 루틴을 만들어놓고 그것만 충실히 지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 외의 것은 별로 신경 쓰고 싶지가 않다. 삶을 간결하고 일정 부분 금욕적으로 살면 그 만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에 익숙해진 탓인지 무엇을 봐도 강렬한 욕구가 샘솟지 않는다. 사실 욕구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이런 루틴한 삶이 가능한 것인지, 루틴한 삶에 대한 욕구가 크기 때문에 삶이 무미건조한지 헷갈리는 문제이다. 아무튼 어느 쪽이건 나란 사람은 무엇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 비해 꽤 많은 욕구가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왠만해서는 꿈쩍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려면 욕구를 쌓아올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을 하고 싶다, 무엇을 갖고 싶다, 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단순히 한번 느껴졌다고 그것을 위해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어떤 욕구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며, 점차 증가할때야 비로소 이 욕구가 스쳐지나가는 단순한 바람이나 타인에 의해 강요된 욕구가 아니라 내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욕구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 후에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단순히 무엇을 보고 찰나에 드는 하고 싶다는 생각과 내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축적된 욕구는 다르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볍게 또 나름대로는 무겁게 하고 있지만 그 욕구가 얼마나 큰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는 쉽게 알기 어렵다. 나도 마찬가지로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무수히 많이 한다. 하지만 모든 욕구에 일일히 신경쓰다가 결국 시간이 지나며 욕구 자체가 사라지고 뿌리 없는 나무처럼 행동이 방향을 못잡고 흐지부지 된 경우가 많다. 과정에 중심을 두는 사람에게는 시간 낭비가 아닐지 몰라도 성과의 낭비인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일정시간 욕구를 쌓아올려야 한다. 과연 나의 이 욕구는 진짜 인지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몇 달 뒤에도 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 몇 달 뒤에도 같은 것을 느낄 확률이 높으니까 말이다. 즉흥적인 방식과 욕구를 축적하는 방식,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내 삶에서 이루어낸 많은 성취들이 축적된 욕구가 발산하는 에너지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관찰해본 결과 더 많은 성취는 더 많은 욕구를 필요로하고, 따라서 더 많은 시간, 더 절실히 욕구를 쌓아올려야 한다.

 

권위를 가지는 것의 두려움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권위’ 혹은 그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 걱정스럽다. 나의 행동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혹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 ‘권위’ 때문에 침묵한다면 나는 가장 좋은 자기 교정의 기회를 잃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탈권위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나, 조금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할 노력이 아닌 그저 내가 부단히 노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케아 길이조절 침대 (부숭에, busunge)

혹시, 나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 몇가지 적어 놓는다.

아반떼HD에는 안실리고, LF소나타에는 약간의 여유(3~4cm?)를 두고 뒷자리에 실린다. 트렁크에는 절대 안들어가니 노력하지 말고, 혼자 들 수는 있으나 꽤나 힘들고 옮기기 어려우므로 둘이 드는 것이 편하다. 매트리스도 같이 가져올 수 있으나 풀사이즈는 안되고 길이조절 메트리스를 사서 양쪽을 접어야 한다. 배송료를 59,000원이나 받으니 가까우면 가서 직접 가져오는 것을 추천. 아침 9시 40분쯤 가면 여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