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를 가지는 것의 두려움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권위’ 혹은 그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 걱정스럽다. 나의 행동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혹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 ‘권위’ 때문에 침묵한다면 나는 가장 좋은 자기 교정의 기회를 잃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탈권위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나, 조금 더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야할 노력이 아닌 그저 내가 부단히 노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이케아 길이조절 침대 (부숭에, busunge)

혹시, 나 같은 의문을 가지고 있는 분들을 위해 몇가지 적어 놓는다.

아반떼HD에는 안실리고, LF소나타에는 약간의 여유(3~4cm?)를 두고 뒷자리에 실린다. 트렁크에는 절대 안들어가니 노력하지 말고, 혼자 들 수는 있으나 꽤나 힘들고 옮기기 어려우므로 둘이 드는 것이 편하다. 매트리스도 같이 가져올 수 있으나 풀사이즈는 안되고 길이조절 메트리스를 사서 양쪽을 접어야 한다. 배송료를 59,000원이나 받으니 가까우면 가서 직접 가져오는 것을 추천. 아침 9시 40분쯤 가면 여유롭다.

도로

나는 운전을 싫어한다. 도로에 나가면 머리가 아프다.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어깨가 아프고 발 끝이 저린다.

도로에는 질서가 없다. 정직하게 줄을 서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반반이다. 빠르게 달리는 사람과 느리게 달리는 사람이 반반이다. 참는 사람과 못참는 사람이 반반이다. 매순간 사고가 없는 것이 신기하다. 강력한 벌금이 질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도로에서의 운전이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게임이라면 머리가 덜 아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도로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른 룰을 가지고 다른 게임을 하는 중첩된 공간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질서가 없다. 어떤 이에게는 생계의 수단이자 밥벌이의 공간이고, 누구에게는 비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낭만을 즐기는 데이트 장소이자, 누구에게는 그저 한시 바삐 어디로 가야하기 위해 이용하는 통로이다. 각자는 도로를 이용하는 목적이 다르고, 지켜야 할 규칙이 다르다. 하나의 ground rule 을 만들기 어렵다. 모두가 다른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규칙을 어겼을 때 주는 패널티의 경중마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런 공간에 있을 때 지켜야 할 원칙들을 정했다. 최대한 나의 손해가 없도록 보수적으로 움직일 것, 나의 책임이 없도록 최소한의 규칙은 준수할 것, 그리고 다른 규칙을 따르고 있는 사람을 이해할 것.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으려 하거나, 왜 질서가 없는지 탓하지 말고 그저 한 발짝 물러서 있는 것이 좋겠다.

특별한 것이 없는

특별한 재능이나, 딱히 물려받은 재산, 하다 못해 인생을 걸 용기도 없어 그저 부모나 선생이 알려주는 안전한 선택만을 해왔다. 나로서는 조그만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밖에 더 해볼 것이 없다.

문득 그 와중에 열심히 하기 위해 행복을 불태우고, 행복이 있을 것이라 더욱더 열심히 하는 자기모순적 삶의 굴레를 느낀다. 나 뿐 아니라 같은 길을 겉고 있는 수많은 소시민들의 모습이 위로가 될까. 도대체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세상을 보는 여러가지 방법

1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게 세상은 다양한 이분법의 조합이다. 모든 사람들을 무엇을 가졌나 아닌가를 가지고 판단한다. 자가와 전세, 국산차와 수입차, 남자와 여자, 강자와 약자, 필요한 것과 불필요 한 것. 우리편과 남의편을 가르고 우리편만 남아 있는 세상을 꿈꾼다.

2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특기는 줄 세우기다. 산수만 할 수 있으면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다. 우리 회사의 매출은 몇 % 증가 했는지, 한국은 OECD 국가 중 몇 위 인지, 올림픽에서 몇 등을 했는지, 상위 몇 % 연봉을 받고 있는지. 세상은 줄세우기의 결과물이다.

3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입체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위치와 입장을 살펴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가진 따뜻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4차원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회적 현상, 다른 사람의 주장을 시대적 패턴에 의해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 사람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상상하고 미래를 그려 본다. 현재의 시대정신을 지랫대 삼아 미래의 이상향을 그린다. 이를 위한 키는 역사와 철학이다. 아마 다독가일 것이다.

사람들 중 8할이 첫 번째 유형의 사람이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우리 시대가 원하는 것이 이런 분포인지, 인류의 본성이 이렇게 만드는 것인지 작게나마 걱정된다. 단 하나의 세대 만큼 짧은 시간이 흘러도 더 입체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