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삶의 굄 돌 역할을 하는 묵직한 기억의 조각들은 그 조각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어떤 모양을 하고 무슨 색을 띄고 있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다.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하면 홀연히 사라져,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물 속의 기포처럼 본질은 볼 수 없지만, 그것의 영향력이 주위를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하게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감정이 응결돼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억의 조각들은 진주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주처럼 항상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기억은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지만, 또 다른 어떤 기억은 똑바로 응시하는 것으로 자아를 붕괴시킬 만큼 강력한 것도 있다. 아마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가 작용해 마음 속 어딘가에 꽁꽁 숨겨져 있음이 틀림 없다. 사람의 겉 모습이 육지라면 마음은 깊은 심해 같다. 엄청 난 것이 있음에 틀림없지만, 무슨 꿍꿍이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파도를 보고 어렴풋한 짐작 밖에 할 수가 없다.

  피상적인 감정들을 하나씩 벗겨내어 그러한 본질 적인 것을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나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어디까지 나를 알 수 있을까. 최후의 순간에 알아낸 자신과 얼마나 나를 동일시 할 수 있을까.

달팽이

  이 노래는 십오 년 전쯤, 어느 봄날의 교무실에서, 좋다고 느낄 사이도 없이 짧은 순간 스치며 지나가듯 만났다. 여느 중학생이 그러하듯 혼자만 무엇이 다른 듯, 남들에 비해 성숙했다고 여겨지는 느낌을 좋아했는데, 알 수 없이 난해했지만 친근한 단어로 쓰인 가사가 마음에 들었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들어와 혼자 잠에 드는” 이야기는 마치 내 이야기를 적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나는 비록 느리고 작은 달팽이라 한번도 바다를 본적이 없지만, 매일 동트기 전 새벽에 깨어나 무엇인가를 알 수 없이 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잠을 들 수 없었던 소년의 생각에 “이 정도라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조금이나마 생겨났었다.

  어느 사이엔가 세월은 훌쩍 흘러 나는 홀로 서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때에 비하여 그리 대단한 성숙함을 가지지 못하였다. 담대함으로 껍질을 깨뜨리는 용기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아침에 일어나 또 다시 무엇인지 모를 것을 향한 채비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어진 역할에 맞추어 그저 다른 수백만의 달팽이들처럼.

  아주 오래 전에는 선명하고 청량하게 들렸던 파도 소리는 이제 익숙함 때문인지, 세상의 번잡함 때문인지 점점 희미해지고 들려오는 방향조차 알기 어려워졌다. 호기롭게 ‘영원함’을 외치던 스스로는 이제 그 약속을 머쓱하게 물린 채 조건을 하나 둘 달기 시작했다. 그런 시간이 한 달, 두 달이 지나 이제 일년이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리를 저으며 차가운 방바닥에 앉아 목표 없는 시선을 던져서는 안되겠다. 멀리 떠나 해답을 찾으려 한다던가, 의미 없는 대화의 반복 속에서 실마리를 잡으려 해도 안되겠다. 나를 당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내가 정한 저 알 수 없는 내면의 외침 중 하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겠다.

  실패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회를 선사했고, 쓰러짐은 내 두 다리를 더 굳건하게 만들 의욕을 선사했다. 내가 20대에 흘린 수천 시간의 땀방울이 꼿꼿한 걸음걸이를 준 것처럼 미래에 생길 수천 시간의 쓰라림과 부끄러움은 나의 자신감 있는 목소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나는 시간을 먹고 사는 달팽이가 되어서 전속력으로 어딘가를 향해 질주해야겠다. 나를 테스트할 시점은 끝나고 본 게임이 시작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