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단상

열심히 운동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달리기, 자전거타기, 헬스장에 있는 머신 위주의 웨이트 트레이닝, 등산 정도는 꾸준히 한다. 가끔 아들과의 배드민턴이나 캐치볼도 즐긴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와 스키를 시간 날 때마다 한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한 한시간의 산책은 효과가 있는 운동으로 분류하기는 약하다. 빵빵한 근육을 키우거나, 어떤 대회라도 입상할 성적을 거둔 것은 없기에 남들이 보면 운동을 열심히 하나? 싶을 수 있지만 꾸준히 하고 있다. 내가 하는 다른 많은 것들처럼.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있는 헬스장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데,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시설의 사우나까지 있어서 만족스럽다. 토요일까지 출근한다 생각하고 아침 시간에는 헬스장에 입장한다. 유산소 운동 중에는 9시 40분에 시작하는 KBS1의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시청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1시간 40분 운동을 하고 사우나는 둘 중 하루만 이용한다. 입장 시간을 당기려고 노력해봤는데 가끔은 성공했지만 낮 시간에 쏟아지는 잠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운동의 내용은 처음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한 20대 초반 이후 변한 것이 없다. 그간 다녔던 헬스장을 따져보면, 사당역의 교통문화회관, 역삼역 사거리 북쪽으로 조금 올라간 건물 높은 곳에 있던 자그마한 이름 모를 헬스장, 사당역 근처의 역시 이름모를 헬스장, 그리고 사당역 시장 골목 어딘가 있던 그보다 더 작고 저렴했던 헬스장(주로 고시원 사시는 분이 다녔다), 회사 3층의 체력 단련실, 광화문에 있는 새로운 회사 건물 지하 헬스장, 결혼 한 후 신혼집 아파트 단지 내의 꽤 큰 헬스장 체인점, 과천으로 이사 온 후 도시 공사에서 운영하는 헬스장 세 곳을 두루두루 이용, 그리고 현재의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까지 기억나는 것만 따져도 20여년간 총 11곳 정도를 이용했다. 사실 근사한 곳은 별로 없고 회사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비교적 저렴한 곳이 많았다. 22살 처음에는 달리기 30분에서 시작했고, 지금은 달리기 30분에 이어 손실되는 근력을 보충하고자 한시간 10분 내외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덧붙여 하고 있다.

토요일 아침의 운동 시간은 최근의 일주일 중 유일하게 온전히 보장된 혼자만의 시간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밀도 있게 사용하려 한다. 금요일까지는 다른 사람의 일을 하고, 토요일 아침부터 주말 동안에는 나를 위한 일을 한다. 토요일 아침 운동은 이 경계를 시작하는 의식 같은 행위다. 이 시간, 무게를 들때는 일주일 동안 미래와 과거로 널 뛰었던 정신을 현재에 소환해 잡아둘 수 있다. 내가 늘 표현하는 ‘세상에 중력과 근력만 존재하는 순간’으로 만든다. 아침의 수면은 달콤해서 뿌리치기 힘들다. 하지만 헬스장과 불꽃놀이 구경에 가는 것은 늘 힘들지만 돌아올때는 오길 잘했다며 100%의 뿌듯함을 선사한다.

내가 즐기는 운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주로 혼자 할 수 있는 것, 따라서 시간에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남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그렇다고 생각했다. 또 매번 운동할 짜투리 시간을 일정하게 내기 어려워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나 등산을 시간 맞춰서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고, 누구나 걷고 뛰고 오르는 속도가 다른데 보조를 맞춰서 한다는 것도 운동효과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운동하면 좋은 걸 누가 모르냐고요.’ (배우자가 구매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흥미로운 운동 분류법이 소개되어 있다. 이 책에서 다양한 운동의 분류 중 하나는 내가 운동 과정 중에 가지는 통제권에 따라 분류한다. 즉, 운동 중 내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선호하는 운동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늘 상대가 인간이거나, 예상하기 어려운 공을 가지고 하는 구기 운동 같은 경우 운동 중에 늘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매번 새로운 상대를 만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공을 보내는 트릭이 존재한다.

역시나 내 성격상 이러한 불확실성, 내가 운동 내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러한 운동을 선호하지 않는 것이었다. 달리기나 수영은 즉시 멈출 수 있다. 자전거도 마찬가지다. 프리 웨이트가 아닌 머신 트레이닝만 하는 것도 부상이 두렵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정해진 자세와 경로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스키는 날씨와 눈 상태, 슬로프의 밀집도 같은 변수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운동이고 체중과 중력이라는, 대체적으로는 상수 값을 이용하는 것이다. 운동의 선호에서도 이러한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살기위해 운동한다’는 사람이 많다. 나는 당연히 어른이 되면, 직장인이 되면 운동을 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시작했다. 30대 초반까지 10년 정도는 운동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어느덧 40대 중반에 다다른 나이 때문에 운동을 몇 주 못하면 몸이 나빠지는 것을 체감한다. 늘어나는 업무, 떨어지는 체력, 늘어나는 역할과 소유물 때문에 필요한 시간의 균형을 맞추며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어느 하나 과락을 할 수 없기에 20대나 40대나 똑같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을 빼서 체력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점점 더 어려워진다.

이러한 실효성 있는,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해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는 ‘더 잘 살기 위해’ 운동을 한다. 체력을 늘리고, 건강을 유지하면 여가 시간 혹은 은퇴 이후의 인생을 더 잘 살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러한 믿음은 운동을 어느 수준 이상으로 하지 않도록 멈추게되는 요인이기도 하는데, 모든 여가 시간을 운동에 쓸 경우 달리 활용해야 할 더 소중한 시간, 예를 들면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이 균형점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타협된 것이 주 3회 정도의 운동 시간인 것이다. 출근할 필요가 없는 연휴 기간에는 매일 운동을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남을 위한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점차 나를 위한 운동 시간은 늘려보려고 한다. 20년 전에 수영, 6년 전에 자전거, 4년 전에 스키라는 운동과 취미를 발굴한 것처럼 꾸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운동에도 도전해보고자 한다. 나는 몸과 마음, 현재가 미래가 절대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을 챙기기 위해서 몸을 움직이고, 미래를 단단히 하기 위해 현재를 공고히 하는 것이 내겐 운동의 의미이다.

달려야 하는 사회

한국은 달리기 열풍이다. 러닝을 안하는 사람이 없다. 유행이었던 골프나 암벽등반, 테니스가 지나가고 이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단순하면서 원초적으로 할 수 있는 달리기가 지배한다. 작년, 작은 시골 동네인 과천 마라톤 신청도 수분만에 마감되어 깜짝 놀랐다. 자전거길로 출퇴근을 여러해 하고 있는데, 두 열로 맞춰 뛰는 젊은 친구들, 그리고 혼자 달리는 여성분들을 작년부터 많이 본다.

모두 달리는 방식이나 장소는 제각각이다. 회사 앞 양재천이나 한강을 따라 달리는 사람도 있고, 본격적으로 원정을 다니며 정규 트랙을 달리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주로 쓰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뛰는 사람도 있다. 러닝 크루에 가입해서 뛰기도 하고 혼자 뛰기도 한다. 기록이나 심박수를 측정하는 사람도 있고 30분만 뛰자고 달리는 사람도 있다. 카본화를 신고 뛸 수도 있고 컨버스화를 신고 (그러면 정말 안된다) 뛸 수도 있다. 모두들 나름대로, 열심히 뛴다.

모두들 뛰고 있다. 이 모습이 예전부터 내 머리속에 담긴 어떤 관념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러면서 이 열풍 속의 ‘뛴다’는 것이 꼭 발을 힘껏 내 차고 지면을 딛으며 앞으로 나가는 행위처럼 만은 보이진 않는다. 사실 사람은 모든 면에서 뛰고 있다. 운동을 위해 뛰는 것과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에 뛰어들어가는 것처럼 목적이 다른 실제 뜀박질도 있거니와,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 ‘분주'(奔走)히 노력하는 것도 달리기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달리기로 가득차 있고, 그 중의 어떤 것들은 진짜로 달리는 것이다.

세상이 달리기로 가득차게 된 것은 아마 이 사회가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리라.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걷기를 강요하고, 걷기보다는 달리기를 강요한다. 물론 달리는 것보다 온갖 수단이 있으면 더 빠르게 움직이기를 강요한다. AI 처럼. 다들 똑똑하고, 튼튼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좁은 틈바구니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기 때문에 뛰지 않으면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사라져 버릴 수 있다. 이러한 불안이 모든 면을 지배한다.

얼마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현실도 쓰레드밀을 뛰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주말에 늦잠을 자면 더 이상 회사에서 목소리가 커질 수 없다. 이 모습이 무엇이든 더 빠르게 해내기를 집요하게 강요하는 현대 사회 때문이 아닌가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1871)’를 보면 나와 똑같이 느끼는 붉은 여왕의 말이 나온다. 달리기 강박은 유래가 깊다. 

Now, here, you see, it takes all the running you can do, to keep in the same place. If you want to get somewhere else, you must run at least twice as fast as that! (여기서는 제자리에 있으려면 온 힘을 다해 달려야 해. 다른 곳으로 가려면 그보다 적어도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Through the Looking-Glass Chapter 2: The Garden of Live Flow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