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이건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인데, 몇 주 동안을 불면증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뭐 사실 불면증이 뭔지 나도 잘 모르고 막연하게 잠을 못자는 증상 정도로만 지금도 이해하고 있지만.. 잠을 못잔 이유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내가 주어진 생명으로 룰루랄라 10년동안 본능적인거 이것저것 다 누리고 삶의 에너지에 충만해서 살다가 막상 죽음에 대해서 배우고 난 후 또 그 개념을 이해하고 난 이후에는 그 우주와도 같은 공포에 질려서 잠을 잘 수가 없었던 거다. – ㅅ- 즉, 밤에 눈을 감으면 다시 눈을 뜨지 못한다면 어떻하나 하는 걱정이 다가와서 그 어둠에 심장이 눌리고 숨이 멎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두둥. (나는 누구나 다 이런 체험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덤덤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거다. 어떻게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지?)
 
그래서 고통 받고 있을 무렵,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괜찮은 해답을 얻었으니 이는 2가지. 아버지로 부터의 조언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미성년”에서 였다.

비급 : 이름하여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 인생은 자신의 목숨을 바칠 대상을 찾는 여행과도 같은 것이라 하겠다. 어떤 학문적인 성취일수도 있고, 예술 작품에 자신의 혼을 불어넣는 과정일 수도 있고, 타인을 위한 봉사, 혹은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성애 등등. 자신이 목숨을 버려도 아깝지 않을, 인생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대상을 찾아내는 순간 이러한 공포는 사라지고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교훈.

이것을 잘 마음속에 넣어놓았다가 다시 그런 공포가 엄습할때마다 마치 드라큘라를 상대하는 십자가처럼 휙 꺼내서 어둠과 공포를 물리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 미성년이기에.

Vladimir Ashkenazy In Moscow with Andrei Gavrilov

Sergei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2 in C minor, Op.18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Andrei Gavrilov/Piano
Vladimir Ashkenazy/Direction

  요즘에는 아쉬케나지가 피아노를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새로 구입한 휴대폰에 넣어서 듣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귀에 더 익숙한 것은 아쉬케나지의 지휘로 1989년에 모스크바에서 실황녹음 된, 집에 가지고 있는 바로 이 음반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꼽으라면 쉽게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데, 아마 한참을 생각한 뒤에 나온 대답 마져 하나를 꼽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그, 모짜르트, 라흐마니노프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하지만 무엇을 가장 많이 듣냐고 누가 물으면 단연코 라흐마니노프 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곡이 아닐까 싶다. 영화 ‘샤인’으로 3번이 알려지고 그 난이도로 주목받지만 역시 전통의 강호 2번을 따라잡지는 못한다고나 할까. 그 특유의 유려하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1악장부터 끊임없이 신선함을 주고 2악장의 말미에 가면 가만히 마음을 비우고 듣고 있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의 감동을 선사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이 음반은 꾸준히 들었는데, 처음 들었을때의 감동이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도 느껴지는 것을 보니 명곡의 생명력을 느낄 수도 있다. 이 곡도 몇 년 후면 초연된지 100년이 된다.

아쉬케나지가 지휘봉과 피아노 양쪽을 잡은 쪽을 비교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지휘봉을 잡은 음반 쪽을 더 좋아하는데 아쉬케나지의 강인한 피아노 연주보다는 가브릴로프의 섬세함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