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체류기 – 에노시마 & 가마쿠라 편 [3]

  사실 가마쿠라를 둘러보는 것은 일본 역사나 불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매우 지루한 일이 될 수 있는데, 비슷비슷한 사찰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또 얼마나 위치상의 균일성이 없는지, 다 한번씩 돌아보는 루트를 계획하기도 힘들뿐더러, 그 거리도 자기 다리만을 믿고 돌아다니다가는 중간에 지쳐서 포기하게 되는 그런 곳이다. 따라서 여행자에게는 두가지 여행 방법이 절대적으로 권장되는데, 첫번째는 철저하게 사전에 지도를 보고 이동 경로와 둘러볼 것을 정하고 이동 수단에 대한 계획을 철저하게 세운 다음에 그대로 움직이는 것이고. 둘째는, 내가 했던 것처럼, 아무 생각없이 역에서 내린 다음에 앞으로 걸어간 후 갈림길이 나오면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다수의 사람들이 보는 것은 구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마 가마쿠라 역에서 나와 위에서의 2번 원칙에 충실했다면, [2]편의 마지막에 나왔던 빨간색 도리이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면서 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것은 유명한 관광지와 역 사이를 이어주는 수많은 기념품 가게들이다. 전통의 차라던가, 관광객들이 꽤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물건을 많이 파니까 재정상태 넉넉한 부르주아 관광객이라면 구입을 고려할만 하다. 물론 나의 경우는 눈으로 흝고 사진으로 찍고 지나치다보니 어느 사이엔가 통과해버렸지만 말이다.

한참을 걸어오다가 뒤돌아서 찍은 사진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멀리서 온 관광객은 아니고 주변에서 산책 겸 나온 사람들이 많아보였다. 그렇다고 외지인이 적은 것은 아니고, 단지 비율만 적을 뿐이었다. 일본인은 꽤나 산책을 좋아하는 듯 보이는데, 이런저런 경험에서; 이렇게 잘 정비된 길과 공원들이 많아서 도움이 될 듯 하다. 회사에서도 일하는 도중에 시도때도 없이 산보를 다녀온다?!

  돌아다니면서 보는 외국인의 비율은 확실히 일본이 많다. 도쿄 지하철만 타도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낭여행을 즐기는 서양인들의 커다란 배낭을 맨 모습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마, “아시아에 가보자.” 마음 먹으면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향하게 되나보다. 닛코에 갔을 때는 어떤 남미 계통의 부부로 보이는 배낭여행객이 나를 일본인인줄 알고 영어로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그쪽도 영어가 능숙하지는 못한것 같았는데, “이쪽으로 가는 버스는 여기서 타는데, 반대편으로 가는 버스는 어디서 타나요?” 라는 말을 물어보길래, 길을 쭉 훑어보니까 저 건너편에 버스정류장이 보이길래 손가락으로 “저기요” 하고 가르쳐주니까 (나도 당연히 확신은 없었다. 한국인인걸;)  “아리가또” 하고 가더라.

얼굴만 교묘하게 가려졌다

  위에서 보듯, 이러한 신사나 사찰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기념품 판매점, 주로 오미쿠지라는 운세를 뽑아보는 것이나, 소원을 나무판에 적어 걸어놓을 때의 그 나무 자체를 판매하고 있다. 사실, 저런 무녀 옷을 입은 여성은 다 알바생이란다.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어떤 종교를 계승하는 집안의 몇대 째 손녀딸, 뭐 이런게 아닌 것이다.

  닛코하니까 생각났는데, 닛코에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방금 그곳에 도착한 듯한 어떤 30대 여성분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버스정류장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손에는 일본 100배 즐기기였나 하는 일본 여행오면 다들 참고한다는 가이드북이 들려있어서, 아하, 한국분이구나 하고 쉽게 눈치챌수 있었는데. 아마 어느 버스를 타야 목적지에 가는지 엄청 헷갈려 하시는 것 같았다. 버스를 타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은 다들 좀 나이가 있으셨고, 그나마 내가 가장 젊었기에 나를 선택한건지 “Excuse me can you speak English?” 라고 물어보시길래, “아뇨, 저 일본사람아니고 한국사람이에요” 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동안 거의 3주를 일본어만 쓰면서 보냈더니, 한국어로 스위칭이 안되고 일본어 그대로 나와버리는 거다. 그러니 잠깐 당황하신듯, 더 명확한 발음으로 영어 할 줄 아냐고 물어보시길래, 그때서야 한국말로 대답하고 목적지까지 동행한 적이 있다. 서로간에 꽤나 반가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게 있지만, 뭔지는 모르겠다

 

  뭔가 가장 거대한 사찰의 하나로 보였지만, 역시 공사중으로 가려놓은 건물이 많았고, 비슷비슷한 건축물 일색이었기에 그냥 빠져나왔다. 눈으로 보는 것의 의미를 알지못하면 무의미 한 것이다. 말그대로. 아사쿠사에 갔을때도 입구의 커다란 문이 공사중이어서 전체를 가려놔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는데, 일본이 문화제 보수가 잦은것인지, 운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위에서의 언어간의 스위칭 이야기를 계속해보면, 일본어는 우리나라와 어순이 똑같아서 어느정도 어휘가 많이 익숙해지면 참 우리나라 말과 헷갈리는 언어다. 우리나라 말을 써야할때 자연스럽게 일어가 나오고 일어가 나와야 할때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나와서 곤란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주로 일본어를 중간쯤 배운사람들이 잘 이러는 것 같은데; 경험상.  회사에서도 일본어로 말해야 함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어가 불현듯 튀어나와서 주위사람을 벙찌게 만든적이 몇번 있었지 아마; 하지만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군은 잘 스위칭이 안된다. 일본에서 5주를 보내고 일주일도 안지나서 미국에 갔을때, 식당에서 주문을 확인 할때, 자꾸 Yes 해야할 상황에서 はい가 나오는 바람에 꽤나 애 먹었던 일이 있다. 아마 일본인 인줄 알았을 듯;

다음으로 간 역시 뭔지 모르는 곳

  첫번째 신사를 본 후, 나와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이 상당히 헷갈리는 데다가 역시 긴 거리를 걸어야 해서 간신히 도착한 이 시점에서 이미 체력은 바닥났고, 우리는 여기만 보고 어서 집으로 철수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이 오늘 만난 최고의 강적이었다. = ㅂ= 하지만 볼거리는 꽤나 많았는데, 한번 들어가보도록 하자. 아, 입장권을 구입해야 들여보내주더라. 성인 500엔이었던가.

거대한 목조 건물 등장

  후에 나라에서 보게될 동대사에는 못미치지만, 이 당시에는 한국에서는 이만한 크기의 건물을 좀처럼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꽤나 깊은 인상을 받았다. 따라서 사진도 한장 찰칵. 주위의 나무 한그루 한그루도 철저하게 관리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본인은 세상에서 작은거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사람들인 것이다. 소심한건지 꼼꼼한건지. 아니면 우리가 지나치게 대범하던지? 이어령씨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도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당연한 건가보다.

다소 으시시한 불상?

  오랜만에 공개한다는 불상앞에서 몰래 사진을 찍었다. 원래는 촬영금지라고 엄격하게 써붙여 있었지만; 덕분에 흔들렸다. 다소 괴기스러운 불상. 흉칙하게 마른 석가모니? 의 모습에 뒤에는 수십개의 손이 나와있었다. 박물관에 가보니 이러한 불상도 학문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자세한 방법이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 잘 모르니 뭐가로 코멘트 할 것은 없다. 일본은 토속적으로 가지고 있던 신앙과 불교가 혼합되어 주종교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흔히 볼수 있는 신사에서 손뼉 딱딱 치고 묵념하는 것이랑,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종한번 땡, 치고 묵념하는 것이랑 다들 우리나라에는 없는 그들만의 민속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불교의 경우는 다들 아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전파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우리나라가 고려시대 이후에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장려하여 유교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사상이 된 반면, 일본은 유교의 영향을 받지 않고 불교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다.

  이론적인 근거가 없는 이야기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일본의 더 개방적인 성문화가 이것에 기초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반라의 불상에서 볼수 있듯이 육체를 드러내는데 꺼리낌이 없는 불교 문화와, 온몸을 꽁꽁 싸매고 머리도 싸매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유교의 차이에서 오늘날의 성이나 육체를 접하는 우리들의 태도가 일본과 다르게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조금의 영향은 있을 것이다. 아마.

뒷산 등반 도중 찍은 손오공?

 

  이 곳은 비싼 입장료내고 건물들만 살펴보는 곳이 아니다. 뒤쪽으로 들어가보면 산을 올라갈 수 있도록 꾸며 놨는데, 길도 좋고, 마치 모노노케히메에 나오는 이끼 가득한 바위와 햇살 비치는 숲길이 이어져서 지친 몸에도 불구하고 올라가 보기로 했다.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숲길은 하지만 곧 끝나버리고 지겹게도 이어지는 계단 길의 연속이었는데, 올라가다 보니 왠 손오공을 형상화해놓은 조각들이 중간중간에 있어서 손을 흔들고 있다. 마치 힘들게 올라가는 모습을 약올리는 것 같아서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는데, 저 녀석들의 유래가 궁금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올라가다보면 팻말에 천국의 하이킹 코스니, 무슨 꿈의 전망대? 니 하면서 지친몸에 그나마 자극을 주는 문구들을 써놓았다. 그리고 그나마 중간에 시원한 식수를 먹을 수 있는 식수대?가 있어서 탈수는 면하고 올라가기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전에도 이야기 했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의 신사 앞에 있는 꼭 우리나라의 약수터 같이 생긴 곳은 손을 씻는 곳이지 물마시는 곳이 아니다. 또 꼭 우리나라의 손씻는 것처럼 생긴 아래서 위로 솟구치면서 물이 나오는 철제 수도꼭지 비슷한 것은 손씻는 것이 아니라 식수로 입을 대고 물 마시는 곳이다. 남이 쓴 바가지로 어떻게 물을 마실수 있냐? 고 말하는 것 처럼 일본 사람들은 공중을 날아가는 물줄기를 입으로 캐치한다.  

전망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본 가마쿠라

  다 올라와서 내려다본 풍경에 한눈에 펼쳐지는 가마쿠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여기만 올라와보면 가마쿠라를 다 봤다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1000엔쯤 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초만에 올라가서 열리는 문 사이로 펼쳐지는 아래 풍경을 기대하며 창가로 다가가는 것도 물론, 나름의 된장녀틱한 매력이 있지만, 이렇게 땀 뻘뻘 흘리면서 수십분간 등산을 하다시피해서 보게되는 쉽게 얻기 힘든 가마쿠라와 바다의 풍경도 역시 나름대로 아니 오히려 더 매력이 있는 것이다. 아마, 좋은 카메라의 소유자라면 오면서 멋진 사진들도 잔뜩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나무 숲이라던가.. 아무튼 우리는 시간이 없기에, 실은 집에 얼른 가서 씻고 밥을 먹고 쉬고 싶은 욕심에 땀만 좀 식히고 다시 내려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일본식 정원

  일본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스시라던가 사무라이같은 것도 물론 꼽을 수 있겠지만, 아름다움의 측면에서는 아마 정원이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한다. 오밀조밀하게 배치된 사물로 우주를 표현한다는 그들의 정원 철학을 이번 체류에서는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지만, 내려오면서 보게된 이 건물의 정원으로 절반 이상은 느껴보지 않았나 싶다. 세계적인 유명세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수의 외국인들이 와서 비디오를 찍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렇게 관리하려면 정말 쉽지 않을텐데, 아마 건물을 대여해주고 받는 돈으로 관리비를 충당하는 것 같다. 건물에 들어가면서 본 통제 구역쪽에는 일부 유명가문들이 가족 모임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이 건물을 빌려서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사진 쪽이 강세라면 서양사람들은 왠지 비디오를 더 선호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는데, 심지어는 오다이바에 들어가는 유리카모메 전철의 젤 앞자리에 타고 있으려니(가장 앞자리는 2좌석이다) 앞에 탄 외국인 아저씨가 전철 바닥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비디오 카메라를 장치해서 오다이바에 들어가는 수십분간 계속 녹화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또 볼까 과연?

서둘러 역으로 향했다

  여름이라 해가 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있었지만, 그래도 피로한 몸때문에 귀가를 서둘렀다. 이왕 꽤나 온 길을 돌아가기는 싫고해서 근처에 있는 북가마쿠라? 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하기로 정한 후 걸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만만치 않은 거리. 이 철로를 통과하는 열차를 타고 집이 있는 도쿄로 향하게 된다. 이 열차에서 흥미로운 것은 앞쪽과 뒷쪽은 일반 차량이라 흔히 우리가 보는 지하철이랑 다르지 않은데, 중간은 특석으로 2층구조를 가진 지정좌석의 새마을호 비슷한 수준의 깔끔한 서비스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멋도 모르고 탓다가 추가 요금을 내야하는 것 같아서 일반 칸으로 옮겨가려 했지만, 그마저도 굳게 닫힌 문으로 여의치가 않았다. 결국 다음 정류장에서 내린후 후다닥 뛰어서 일반 차량으로 다시 탑승. 모르면 고생이다. 오사카의 여성 전용칸 탑승으로 또 이러한 경험이 한번 있었구나..

자 이제 열차를 기다리자

 

  북가마쿠라 역에 도착에서 표를 구입한 후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면서의 사진이다. 오늘의 힘든 여정을 마무리 하는 사진. 이때부터 집에 도착할때까지는, 그야말로 의자에서 죽은듯이 잠들어서 아무런 기억도 없는 상태. 한해 두해 나이가 먹고 중년의 나이가 되면 절대 해볼 수 없는 이러한 여행이기도 한데, 아쉬움 없이 돌아다녀 보는 추억을 남겨서 2006년의 여름은 꽤나 오래 특별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젊어서는 돈을 빌려서라도 여행을 가자.” 라고 느낀것은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결국은 아날로그

  세상이 점차 디지털화 될 것이라는 증거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전기로 동작하는 기기를 몇 개나 가지고 돌아다니는지 생각해보고 그 숫자를 과거와 비교해보는 것도 그 증거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고작해야 삐삐와 G-SHOCK이 디지털기기로 이룰 수 있는 우월감의 전부였던 나의 중학교 시절과 비교해보면, 요즘은 마치 온몸을 갑옷으로 둘러싼 전사처럼, 온몸의 각 부분에 디지털 기기를 무장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휴대폰은 정신병까지 초래할 정도의 중독성으로 온 국민의 필수품이 되었고, MP3도 유행의 최신 아이콘이 되었다. PSP, NDS등의 휴대용 게임기들은 집에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않아서야 할 수 있었던 게임을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시간을 더욱 더 잡아 먹으려고 하고 있다. 경량화 된 본체와 대용량의 베터리를 장착한 노트북은 이 모든 기기들을 자신에게 컨버젼스 시킬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대다수는 이러한 디지털 기기들의 대규모 공습을 공습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물리적인 거리의 개념은 사람들 머리 속에서 점점 좁아지고, 이진부호는 부피를 무시하는 공간속에 저장되고, 이 결과로 얻어지는 당연한 축복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어보인다. 세상은 사람들의 욕구가 흘러가는데로 발 맞추어 흘러가기 마련이다. 휴대폰이 급격하게 퍼진것은 1000원에 준다는 소위 공짜폰의 자극적인 문구도 아니고, 이효리나 김태희가 TV CF에서 발산하는 매력때문도 아니고, 레이져에 슬림함에 혁명이라 이름을 붙인 사람들의 놀라움도 아니고, 단지 사람이 사람의 목소리는 원하고 사람이 사람의 흔적을 언제나 어디서나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그 이후 문제인데 결국 욕구의 표현 방법에만 영향을 끼칠 뿐이다. 디지털화된 편리한 세상의 매력에 중독된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개인 단위에서 전체 단위로 옮겨갈 수록 이는 더욱 더 확실해진다.

  외부의 모든 것을 디지털화 시키면, 자연스럽게 사람 자체도 디지털화된다. 나의 어떤 동작의 반응은 항상 동일하고 예상 범위 안에 있는 것이며 학습된 것과 동일해야 한다는 가정하에 우리는 행동하고 있다. 만약 동일하지 않은 결과가 얻어지면? Reset 한다. 디지털과 대면하는 인간의 자세는 항상 이렇다. 놀랍도록 세상을 단순화 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디지털을 읽는다.

  디지털 화된 세상의 비인간성이니, 인스턴스 화된 인간관계니 이런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자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사회학자나 윤리 선생님에게 맡겨두자. 인간의 저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아날로그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를 또 하고 싶은 것이다. 지겨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자주 반복해두지 않으면 1.5v로 작동되는 조그맣고 딱딱한 녀석들에 의해서 머리속이 점령 당할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한 문제다.

  조금 이야기를 다른데로 돌려서 내가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뉴턴의 물리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포물선으로 공을 던지면, 작용되는 힘이 수직방향과 수평방향으로 분해되고 수평방향의 속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수직방향의 위치는 중력가속도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놀랄만큼 분석적인 이야기. 나는 물리가 참 싫었는데, 그 이유는 시험지 위에서의 물리 같았기 때문이다. 답은 소수점 2자리까지 구해야 인정될 정도로 정밀함을 요구했지만, 그만큼 진공 상태여야 하느니, 지구 위여야 하느니 조건도 까다로웠다. 말 그대로 쓸모가 없어보였다. 당장 운동장에 나가서 시험지 위에 정밀하게 풀어내려간 공식대로 실험을 해도 결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공대로 진학할 사람들은 선택과목으로 물리2를 선택하라는 선생님의 추천에도 나는 지구과학2를 선택했다. 적어도 소수점 2자리까지 구하는 정밀함은 없었다. 계산을 해도 언제나 근사 값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감히 내가 상상할수 없는 거대함에서 나오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나에게 물리2는 디지털이었고, 자연과학2는 아날로그였다. 뭐,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뉴턴의 물리2는 역시 진리가 아니었다. (결국 대학에 와서 양자역학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서, 결국 물리도 아날로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의 초끈이론을 보면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세상의 기본 원칙은 확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확률 중에 0과 1은 없다. 완벽하게 예측가능한 것도 없고, 또 완벽하게 옳은 것도 없으며, 사람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행동할 수 있으며, 그 중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없다. 단지, 어떻게 될 확률이 있는 것이고, 어떻게 생각하게 될 확률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잘 이해하면 크게 화낼 일도 없고, 크게 잘못된 일도 없다. 내 머리속에서 확률은 아날로그와 동의어다. “자연스럽다.” 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디지털의 화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으므로, 그 반대 급부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연은 아날로그가 지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사실, 반론의 여지도 없다. 아날로그는 자연이고, 디지털은 인공이다. 자연은 아날로그고, 인공은 디지털이다. 

  당연스러운 이야기를 안 당연스럽게 하려니 힘이 든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아날로그적인 세상이라는 말이고, 인간이 속하는 자연의 거대 원칙은 아날로그가 지배한다. 즉, 디지털화된 모든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에너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를 근래로부터는 산업화의 영향부터 과거 멀리부터는 문명의 발달등에서 찾고 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Digitalize 되어가기 때문인 것이다. 단지 요 몇년간의 디지털 혁명이라 불리는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흐름은 사실 수천년, 수만년간 계속 되어 오던 것이라 생각한다. 기술이 뒷받침 되는 오늘날에 폭발적으로 증가할 뿐.

  이 생각을 채식주의자를 보는 미식가의 눈초리로 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은 고기를 먹지 말자는게 아니라, 인스턴트 음식을 적당히 먹자는 쪽에 더 가까운 것이다. 디지털화가 가져다 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편리함을 추종하는 한편으로 디지털화를 철저하게 컨트롤하는 능력을 키워두어야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 50%가 이어폰을 끼고 언제 어디선가 녹음되어 수천개로 복제된 “010” 부호를 듣고 있지만, 결국 나
에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내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서 중독적인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찾아내는데 있다.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최근에는 복제에 더욱 편리하도록 디지털  필름을 많이 쓴다, 복제된 수천개중의 하나인 영상을 수백명의 사람들과 같이 감상하는데 8000원을 쓴다. 하지만, 살아있는 공연의 매력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었던, 그 순간, 그 위치의 그 몸짓과 그 소리다.     

  문화적인 측면이 아니어도, 아니, 어떤 면에서도 아날로그가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이로서 사람은 진정으로 휴식하고 긴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어 보인다. 아날로그적인 취미 생활,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 아날로그적인 연애, 아날로그적인 식습관. 모든 것이 위기에 빠져있는 현대사회 이지만,   

  결국은 아날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