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3 플레이어

고가의 물건을 살때면 늘 생각해 보는 것이 “이 물건이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런 물음을 머리속에 한 2주정도 넣고 다니다 보면 순간적인 충동으로 원했던 물건들은 어느 사이에 별로 필요없는 물건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쓸데없는 돈을 쓰지않아도 되는 상황이 된다. (물론 일생동안 이런 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구입한 고가의 물건도 물론 있긴 한데, 대표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 컴퓨터를 멀리하는 금욕 생활중이기에 영어공부를 위한 MP3 파일을 무엇으로 플레이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MP3 플레이어를 사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늘상 하는 것처럼 “지금 MP3 플레이어가 내게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물음과 함께 일주일 정도를 지낸 것이다.

비교적 저가의 물건이기도 하고, 또 많이 가격이 내렸기도 하고, 또 당장 몇 주 안에 필요해질 것 같기도 해서. 서둘러, “아 이건 꼭 필요하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후 조금은 색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 주위에는 도대체 얼마나 MP3를 플레이 가능한 디바이스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한번 떠올려 보았다.

1. 학부시절 구입한 PANASONIC CDP

2. 늘 가지고 다니는 오래된 EVER 핸드폰

3. 역시 몇 년 전에 구입한 SONY VAIO 노트북

4. 얼마전에 생긴 TOSHIBA 노트북

5. 요즘 유용하게 사용중인 딕플 전자사전

6. XBOX 360도 아닌 오리지널

7. 학부 입학하면서 구입한 옛날 AMD 데스크탑 컴퓨터

8. 아반떼 HD 카오디오

9. 노래방 기기 겸 MP3CD 플레이어

10. SKY에서 출시한 KTF용 휴대폰 공기계

11. 학교에서 사용 중인 비교적 최신형 데스크탑

아마 틀림없이 빠뜨린 몇 개를 제외하고도 무려 11개나 되는 MP3 플레이 가능 기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들로 한정시켰기에 마련이지 범위를 “우리집”이나 “내 생활반경”으로 확장시키면 그 수는 아마 기하급수적으로 퐁퐁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이 기계들에는 전용 목적으로 만들어 졌든, 혹은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삽입되었던 간에 MP3를 플레이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개발자의 노력에 의해서 탑제 되어있는 것이다. 물론 그 모든 노력과 자원이 나에 의해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고 나는 또 하나 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다.

이렇게 많은 잠자는 기능들이 주위에 있다면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나는 언제나 MP3 플레이 가능한 환경에 놓이게 될 수 있다. 학교에 있으면 학교 데스크탑을 사용하면 되고, 걸어다닐때는 휴대폰을, 운전 중일때는 카오디오를 사용하면 된다.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할때는 각각의 노트북에서 Winamp라도 켜면 되고, 도서관에서 공부할때는 마침 사용중인 전자사전에서 플레이하면 된다. 언제나 플레이 가능한 환경에 이미 놓여있으므로 내가 구입하는 MP3 플레이어가 순전히 “MP3를 플레이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라면 구입하지 않는 것이 옳은 판단이다. 결국 그러면 내가 구입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조금 더 생각해본 결과, 간단하게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는 Mobility를 구입하는 것이고, 조금 더 이쪽 영역의 말을 쓴다면 Seamlessness가 아닐까? 다른 환경에서 다른 음악들을 플레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내가 듣던 그 음악과 내가 보던 그 인터페이스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Resume 기능도 지원된다면 금상첨화다. 언제나 내 귀에 음악을 매달고 다니고 내가 원하는 바로 그 때 정지 시키고 다시 내가 원하는 그 때 다시 플레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개인이 존재하는 3차원 상의 X,Y,Z 좌표가 점점 더 무의미한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예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10년~20년 전에 등장한 MP3 플레이라는 기능이 이제 이렇게 Seamlessly 지원되는 것을 보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근미래의 Internet 접속 이후에는 어떤 기능들이 뒤를 이을지 궁금해진다. 내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점점점 더 늘어만 갈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옛 서양 동화속의 전설과도 같은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상상 속에서 그 유래를 찾아서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 어느 알퐁스 도데의 소설에 나오는 양치기 같은 이에게까지 닿았는데, 나에게는 그가 아니었어도 그 옆 산에 사는 비슷한 목동이 또 그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은,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희망과 일정 부분의 당위가 섞여 있는 그런 느낌이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는 할 수 없지만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는 희망과 밤의 적막한 분위기, 그리고 고인들을 상징하는 무수히 많은 밤하늘의 별이 이 그럴 듯한 전설을 더욱 더 믿기 쉽게 또 믿고 싶게 만들어주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다.

다시 또 생각해보니 이러한 전설 같은 내용이 단순히 허무맹랑한 종교처럼 믿고 안믿고의 이야기가 아니라 꽤나 그럴듯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참 많다. 세상에는 한번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어렵지만 두번의 기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기적과도 같은 생을 한번 가졌던 생명이 자연으로 돌아간 것을 고려한다면, 기적과도 같은 생을 얻은 별들은 탄생에는 이러한 자연으로 돌아간, 한때 생명이었던 것들이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이런것이다. 학예회 발표를 준비하는 이제 막 생긴 초등학교 연극부가 있다. 거창한 연극을 준비했지만, 인원도 부족하도 다들 또 연기에는 서툴다. 하지만 새로 생긴 연극부의 활성을 위해서는 또 시시한 레퍼토리를 재탕할 수 없어서 뭔가 거창한 연극을 준비했고, 물론 등장하는 케릭터들도 엄청나게 많다. 무대에 사자로 연기를 마친 꼬마는 뒤로 돌아가 얼른 햇님 복장으로 갈아입고 새롭게 무대에 등장한다. 멀뚱히 나무 분장으로 서있던 꼬마는 무대가 바뀌자 돈키호테 같은 기행을 일삼는 노인으로 변장했다. 생명은 같지만, 무대와 인물에 따라서 탈을 바꾸어 쓰고 무엇인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비슷하지만, 그런 복잡한 것이 아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거대한 낮은 에너지 평형 상태에서 잠시 생명이라는 핵을 두고 뭉친 고에너지 응축 상태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별것은 아니지만, 그냥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해야 내가 우연히 만나는 어떤 생명이 실제로는 우연이 아닌 것이라는 조그만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