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삶의 굄 돌 역할을 하는 묵직한 기억의 조각들은 그 조각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어떤 모양을 하고 무슨 색을 띄고 있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다.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하면 홀연히 사라져,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물 속의 기포처럼 본질은 볼 수 없지만, 그것의 영향력이 주위를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하게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감정이 응결돼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억의 조각들은 진주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주처럼 항상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기억은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지만, 또 다른 어떤 기억은 똑바로 응시하는 것으로 자아를 붕괴시킬 만큼 강력한 것도 있다. 아마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가 작용해 마음 속 어딘가에 꽁꽁 숨겨져 있음이 틀림 없다. 사람의 겉 모습이 육지라면 마음은 깊은 심해 같다. 엄청 난 것이 있음에 틀림없지만, 무슨 꿍꿍이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파도를 보고 어렴풋한 짐작 밖에 할 수가 없다.

  피상적인 감정들을 하나씩 벗겨내어 그러한 본질 적인 것을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나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어디까지 나를 알 수 있을까. 최후의 순간에 알아낸 자신과 얼마나 나를 동일시 할 수 있을까.

부산 & 홍콩 여행 2010

일년 동안 휴가를 2일밖에 쓰지 못했다. 주말을 비우고, 평일을 비우고 휴식을 취했지만 두 밤, 세 밤이 지나도록 회사 일을 잊어 본 적이 없는 지난 일년을 뒤로 하고 일주일 간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지난 일년 내내 있었던 서울을 떠나 어딘가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또 욕심 가득히 다양한 도시를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부산홍콩을 선택했다. 더위와 태풍, 끈적한 습도가 함께한 여행이었지만 잠시나마 머리를 끈적한 회사의 마수에서 떨어뜨려 놓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참을 수 있었다. 더위 따위, 태풍 따위. 아무것도 아냐.

1172F9304C6BD9750E6B59[1]

부산은 도쿄에 한참을 머물다, 야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오사카에 내린 그 시점을 떠오르게 했다. 서울에서 한참을 기차를 타고 달려 내린 곳은 바다 냄새가 물씬 나고, 더운, 그리고 세련된 도쿄에 비해서 한적해 보이는 풍경이 가득한 오사카와 같은 부 산이었다.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골목들을 누비고 다니고, 위생 상태 불량해 보이는 음식들을 먹었지만 그것이 부산이라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다름을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175A9E314C6BDA3F6A3137[1] 

부산의 날씨는 여행 온 신출내기에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태풍은 그로 인한 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부끄러운 모습으로 스타벅스에 뛰어들어 샌드위치를 두 개나 주문하게 만들고는 오후 늦게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동해로 사라졌다. 다행히 마지막 자비로 햇빛이 나지는 않게 만들어 나처럼 발발 거리고 돌아다니는 여행자에게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기는 했다. 쭉 늘어선 해운대의 파라솔은 나로써는 처음 실제 보는 것이라 즐거웠다. 날씨가 쨍쨍하고, 사람들도 쨍쨍했다. 돼지 국밥은 만족스러웠지만, 밀면은 불만족스러웠다. 뭐든, 대체제로 만들어진 물건은 별로다. 항상 The Original.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와서 피곤에 지친 몸을 하루 쉬게 하고는 바로 다음날 새벽부터 홍콩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홍콩은 영화에서 (사실 그렇게 많이 보지도 않았다) 본 모습 뿐, 어떤 먹거리가 있고, 어떤 가볼 곳이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게 됐다. 사실 부산도 그렇고 홍콩도 그렇고 이번 여름의 여행지들은 준비 없이 떠났다. 나름 매력이 있다. 소개팅도 다 알고 나가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있다.

홍콩은 무더위와 습기가 지배하는 나라 같았다. 적어도 여름의 홍콩은 그런 것 같았다. 인간이 무엇을 어마어마 하게 소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여기에 와서 구경하면 될 것 같다. 에너지를 소비하고, 욕망을 소비하고, 시간을 소비한다. 그러한 끝없는 인간의 배출을 영양분으로 하여 이 거대한 도시는 살아간다. 그래서 육식동물의 냄새가 나고, 시끄럽다.

205A9E314C6BDA436B790C[1]

여행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머리 속에 복잡한 생각들을 넣고 걸어 다니다 보면 마치 오마쥬처럼 그러한 생각들이 실 세계의 상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손에 들고 있는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신중하게 누르게 된다. 영상을 눈과 머리 속, 양쪽에서 잡아 낸다. 사진을 찍는 것은 주로 세상이 나에게 하는 말을 받아 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 예로, 위의 사진은 세상이 나에게 하는 말 같았고, 아래 사진은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같았다.

115A9E314C6BDA4F6D5DA9[1]

마카오도 잠깐 시간을 내어 들러보았다. 배를 타고 가는 것은 신났지만, 또 다른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일은 귀찮았다. 입국 심사관은 불친절했지만, 호텔 카지노까지 태워다 주는 직원은 친절했다. 사람은 비록 표면적이기는 하겠지만, 돈이 보이면 친절해진다. 작은 유럽이라는 가이드 책의 소개가 조금 잘못되었다. 엄청, 작은 유럽이다. 미니어처 수준도 안 되는 것 같다. 유럽의 냄새가 살짝 난다고 표현 하는 게 좋겠다. 그래 봐야 길거리의 음식 냄새가 더 진동한다. 사람 냄새도 많이 난다.

175A9E314C6BDA496C2EC7[1]

홍콩은 백만 불짜리 야경이라고 한다. 물론 홍콩의 백만 불짜리 야경을 만들기 위해서 수억 불을 썼겠지. 기라성 같은 타워들이 바벨탑을 올리듯 서있고, 밤 8시만 되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그 속에서 충분히 즐기지 못하면 왠지 나약함을 느끼고 만다. 바다 바람은 시원하지만 거대한 빛의 발산 속에서 오롯이 혼자 설 수 없는 허세가 심한 인간 군상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야경은 일주일 간의 여행을 매듭짓는 클라이맥스로는 최적의 장소였다.

145A9E314C6BDA536E2D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