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눈을 감아도 온통 푸른 빛으로 가득찬다. 이쯤 되면 사실 눈을 뜨나 감으나 별로 차이가 없다. 이른 아침을 위한 이른 수면이 이렇게 방해받고 나면 당분간은 다시 잠에 빠져들 생각이 들지 않는다. 푸른 빛을 거슬러 올라가, 푸르름이 뿌옇게 서리 맺히는 창문을 지나 밤하늘을 포물선으로 날아가다보면 도착하는 곳은 몇 달전인가 오래된 아파트를 헐고 지은 최신식의 하얀색 건물이다. 대지를 꼼꼼하게 매꾼 설계와 번쩍이는 외벽을 자랑하는 이 건물은 낡은 주위 건물 사이에 유독 우뚝 서있다. 그리고 그 상반신 전체에 갑옷처럼 두른 번쩍이는 간판은 밤이 되면 그 존재가 더욱 더 부각된다. 시야를 자극하는 보색의 대비와 전혀 아까워하지 않고 내뿜는 전방위적인 빛의 분출은 아마 소기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있을 것이다. 하찮은 일개 학생이 품은 소박한 내일의 계획마져 방해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 되었으니 말이다.

딱 한번 이 건물을 방문한 적이 있다. 5층 건물의 5층에 위치한 치과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 였는데, 번쩍이는 대리석 바닥을 지나 아직 채 안내판이 붙지도 않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지하의 잡동사니를 파는 대규모의 마트, 일층의 약국, 이층의 피부관리실, 비어있는 삼, 사층을 지나 문이 열리는 오층에서 본 것은 거대한 서울대 마크, 진리는 나의 빛. 이 그려져 있는 커다란 유리문. 아직 채 개업한지 두달이 되지않아 어느 곳의 먼지도 용납되지 않은 모습의 병원은 건물의 외벽만큼 깨끗했고 탁상시계 속에까지 들러붙은 서울대 정문은 밤에 빛나는 찬란한 네온사인만큼이나 뭔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하고 있었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면증의 초기증세는 보통 새벽 2시까지 달라붙어있다. 불쾌하게 하는 것은 이 녀석이 근성은 없지만 부지런하다는 것인데, 즉 2시라는 비교적(?) 이른시간에 사라지지만, 일주일간은 꼬박 같이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머리 속이 제대로 정리가 안되어있어서 그런 것이다. “꿈이라는 녀석은 현실의 위에 위치해야 부스러지지 않는다.” “현실과 노력은 같은 크기로 같은 무게로 또 같은 밀도로 꿈의 두 받침대가 되어야 안정감이 있다.” “운이라는 녀석은 별도의 상자에 넣어서 정리해야지 뒤섞어 놓으면 다른 것들이 썩어버리고 만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참 크고 정리하기에 좋은 박스이지만 내구성이 별로 없어서 영원한 것을 넣기에는 마땅치 않다.” 하루 동안에 보고 들은 겪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이지만, 이것들을 너저분하게 어질러 두고는 도저히 잠이 오질 않는다. 그 중에는 버릴 것이 태반이다.

12시가 되면 네온사인의 외침도 뚝 그친다. 감은 눈 속에서 더 이상 푸른 빛이 느껴지지 않으면 나는 지금이 정확히 열두시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전까지 힘겹게 밖으로 또 안으로 싸우면서 지켜내려했던 나의 수면시간에 조금은 평화가 찾아왔구나 안도한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의 정리를 다시 시작하면, 푸른 빛을 타고 온 무엇인가가 마음 속에 잔뜩 잡동사니들을 남기고 갔음을 깨닫고 부지런히 정리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그것들은 모두 버려져야 할 것이다. 이것들을 모두 분리수거 한 이후에 나는 잠들 수 있다. 새벽 2시 즈음에.

성적처리유감

 얼마 전, 신문지 상에서 사립 S대에서 있었던 자그마한 성적처리 관련 소란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사에서는 주로 학생의 교수에 대한 매우 불공손한 태도를 문제 삼았지만, 곧 이어 유포된 학생의 사과 글을 찬찬히 읽다보니 꼭 학생만의 잘못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적이라는 권력을 쥔 교수와 이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학생과의 트러블은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때문에 학점이라는 녀석의 중요성이 커지자 따라서 증가하는 추세다.

 나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성적 처리의 경험이 하나 있다. 인문학도들이 주로 수강하는 교양 수업이었는데, 결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한 학기였지만, 그래도 납득하기는 힘든 B+라는 성적이 나왔다. 그래서 성적 내역을 요청 드렸고 어느 부분에서 감점이 있었는지 확인 할 수 있었다. 내가 감점 된 부분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출석 점수였다. 비교적 공정하게 처리될 것 같은 출석 점수를 문제 삼는 것은 그날 결석한 사유가 ‘예비군 훈련’ 때문이었다.

예비군 훈련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는 학교에 있는 학군단에서 ‘결석 사유서’라는 서류를 발급해준다. 그 이유는 강제성이 있는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결석한 학생들이 그 서류를 교수님께 제출하면 이를 감안해서 출석은 인정해 주기 위해 제공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예비군 훈련 보다는 학생의 수업권이 먼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국가의 방위를 걱정하는 윗 분들이 만든 제도라는 것, 싫어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이를 제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출석으로 인정하지 않고 결석으로 처리했다는 것은 참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89점으로 B+, 1점만 올리면 A0가 되고 아슬아슬하게 30% 장학금에 걸쳐있었던 나는 이것이 출석으로 인정되면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금전적으로도 수십만원을 벌 수 있었기에 교수님에게 다시 메일로 연락을 드렸다. 아주 장문의 글이었고, 나름대로 논리적으로 썼다. 솔직히 지금 보면 조금 웃음이 나오겠지만, 심각하게, 아주 거창하게 작성한 글이었다. 국방의 의무 부터 시작해서 예비군 훈련의 강제성,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감점된 수많은 복학생들, 남성에 대한 역차별, 결석 사유서 발급 시스템이 생긴 이유 등등 가져다 붙일 것은 다 가져다 붙였다. 그리고 실제로 만나서 꼭 말씀드리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참 만에 도착한  답메일에서 교수님의 논리는 어떤 형식으로든 수업에 참가한 학생과 수업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은 성적에 차별을 두어야 하고 이는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어떤 사유에서건 수업시간에 당신의 수업을 그 자리에서 듣는 자만이 출석 점수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두 번째 이메일에서는 예비군 훈련의 ‘강제성’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이는 학생으로서 선택하기 힘든 국가적인 시스템에 의한 것임을 강조했다. 즉 ‘법’이 그렇게 정하고 있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이 글을 길게 쓴 것에서 알 수 있겠지만, 끝내 성적은 정정되지 않았고 그 학기의 유일한 B+로 아직까지 남아있다. 두 번째 메일에 대한 답신은 그렇게 내 성적, 그리고 예비군 참석자의 성적을 올려주면 성적이 내려가야 하는 다른 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클레임을 외치는 것을 그만 두었다. 교수님은 이미 논리가 아닌 동정론을 펴고 있었고 나는 더 이상은 내 논리가 통할 수 없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이 많은 여 교수님이었으므로 교수님의 ‘예비군 훈련’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예비군 훈련을 날짜를 선택해서 아무때나 다녀올 수 있는 시스템 쯤으로 이해를 하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많은 아쉬움이 있지만,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불합리한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한번 했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신문지 상에 오르내린 그 학생처럼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