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건 싫다

두번 생각하기 싫다.

시니컬해지기 싫다.

그건 아니라고 말하기 싫다.

지어지지 않는 웃음을 만들어내기 싫다.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기도 싫다.

이모티콘이 없는 딱딱한 문장을 “다”로 끝나게 계속 지어내기도 싫다.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하기도 싫다.

상대방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기도 싫다.

엔터를 칠지 말지 고민하기도 싫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계산하기도 싫다.

어깨를 움츠린채 걷기도 싫다.

만약 조금의 용기만 더 있었다면 이런 망설임은 뛰어 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마음 가는대로 솔직한 나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게 “꾸준한 자기관리”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이런 것 같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것. 고작 속 좁은 상사의 호통에 짜증나서 하는 편협한 소리 같은 것은 아니다. 당당함은 인생을 바꾸는 가장 쉬운 아이템이지만, 노력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창조를 원해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무엇인가 나에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재능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완전하게 문제를 파악한 후에도 몇 시간씩 끙끙대면서 고민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 공부나, 매일매일 똑같은 악보를 허공에 복사하고 있을 뿐 전혀 나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 피아노 연습이나, 포토샵 등이 두려워서 무엇인가 그릴 생각도 못하고 놀고 있는 타블렛이나. 한숨 소리가 나올만큼 수동적인 모습의 꺼풀을 벗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고 있다.

답답해서 중앙도서관에서 "학문의 즐거움" 이라는 책을 설 연휴에 빌려보았다. 여러 좋으신 말씀들이 많이 쓰여져 있지만, 저자가 수학이라는 학문에서 새로운 창조적인!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그럴만한 기반이 성장 과정에서 갖추어 있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결국 글쓴이가 한 것이라고는 진득하게 붙어서 풀릴때까지 기다린 것 뿐이라는 그 자신의 겸손한 설명에, "이 방법도 아니야ㅠ _ㅠ" 하면서 책을 2/3쯤 읽을때쯤 덮어버리고 말았다. 중고등학교때 수도 없이 들었던 "기초를 튼튼히 하세요"라는 말과 다름 없음이었다.

곰곰히 내가 정말로 원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다가 알아낸 사실은 이 창조라는 말을 붙인 근사한 것이 결국 나를 세상에 표현하고 싶어하는 욕구라는 것이다. 수백년 전의 방식으로 그 해 재배된 포도 중 최상급만을 골라 와인을 한정 생산하여 자랑스럽게 자신의 성을 딴 라벨을 붙이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물론 매우 고가의!) 무엇인가 근사한 것을 내 이름을 걸고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인 것이다. 나의 색을 세상 어딘가에 색칠하고 싶다.

섣부른 열망은 늘 실수를 낳고 무엇인가 망쳐버리기 쉽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고작해야 교복을 벗고, 메신져 대화명을 바꾸고, 안경을 바꾸는 수준의 자기 표현이라기 보다는 더 근사한 창조적인 자기 표현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이게도 더 적은 노력으로, 그리고 더 빠르게 말이다. 모짜르트는 살리에리뿐 아니라 200년도 더 지난후의 나에게도 질투심을 느끼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