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

주히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손에서 힘이 빠졌다. 볼펜이 손가락 사이에서 종이 위로 떨어지면서, 짧은 둔탁한 소리를 냈다. 따라서 바삐 쓰여지던 종이위의 글자도 멈추었다.

“나는 매너리즘에 빠졌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에 나는 이미 물들어 있구나.”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고, 새로운 행동을 하지 않고.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내 자신에 대한 불만을, 다른 사람, 다른 조직, 다른 세상에 던지며 푸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좁은 시야에 갇혀서 그렇게 쳇바퀴 돌던 나에게 어느 일요일 오후 문득 나를 내 머리 위에서 본 순간.

나 스스로 변화할 힘을 잃었다면, 이제 주위의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한다. 용기를 내자.

오늘의 뉴스 비판

TV를 보다보니,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라면서도 그 해결책으로 우울증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즉 자살 시도자를 일찍 발견해서 병원에 보내는 것을 이야기 한다.

사회 구조적으로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고,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이 안되는 점, 교육의 문제점, 지나친 경쟁 사회와 목표 지향적인 사고의 폐해 등 보다 근본적인 처방 없이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저 부끄러운 1위는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1위를 유지하는 한 우리나라가 아무리 수출을 많이하고, 돈을 많이 벌어 들인다 해도 절대로 선진국이라고 일컬어 질 수는 없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여 한국 영화 100년사에 쾌거를 이루었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 한국 영화”라는 드러나지 않는 가정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 동안 철저하게 한국 영화의 주류에서 배척되며 서로 갈등을 만들어 왔는데, 그 영화가 예술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슬쩍 묻어서 한국 영화 전체의 격을 올리려는, 또 그렇게 대중을 설득시키려는 시도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 과연 그가 홀로 쌓아온 독립 예술 영화의 업적을 한국 영화에 내제화된 것이라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