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적인 세계와 거시적인 세계

 신념이라던가, 진리라던가 하는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종교적인 색체가 물씬 풍기는 단어들에는 별로 흥미가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름대로 생각하는 존재와 관계의 세계관은 가지고 있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개체들과 그들의 관계로 보는 시각에 매우 익숙하다.) 그도 사실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밝혀내겠다!” 하는 거창한 이론은 아니고, 말 그대로 세상을 내 마음속에 품는 나름대로의 방식인 것이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 계층적인 구조의 총합으로 본다. 무슨 말인가 하니, 매우 작은 도메인(Domain)에서 적용될 수 있는 공리(Axiom)들과 밝혀진 사실들은 그를 포함하는 더 큰 도메인, 혹은 그 보다 더 작은 도메인에서도 모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도메인 크기 혹은 범위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보이는 매우 상대적인 것이며, 현상 그 자체의 본질적인 특성은 아니다. 이는 사실 매우 수학적인 개념인데, 나는 이러한 원칙은 실세계에서도 전혀 다르지 않으며, 수학적인 접근 방법과 동일한 신뢰도를 가지고 이러한 원칙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양성자 주위를 도는 전자나,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나 적용될 수 있는 원칙, 룰은 본질적으로 같으며 인간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단지 그 스케일의 차이일 뿐인데, 이는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인간이라는 관찰자를 제외한다면 사실 상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한 기관(Organization)에 속해있는 세포나, 인간에 속해있는 기관이나, 또한 인간들의 합인 사회에서의 한 인간이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지켜야 할 룰은 여전히 똑같이 존재하고, 수행해야 할 역할도 여전히 동일하다. 커다란 선물 상자를 열었을때, 똑같은 선물 상자가 나오고, 그 상자를 열면 또 똑같은 상자가 나오는 장난스런 모습을 상상하면 내가 이해하는 세계의 모습이란 것이 쉽게 이해될 수 있겠다.

 이러한 원칙에서 보면, 학문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다른 분야로 발전해 왔지만, 그 근본적인 원칙들, 혹자는 진리라고 칭하는 것들은 몇 가지 없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의학이나 사회학 같은 전혀 그 사이의 관계라고는 있을 것 같지도 않은 학문들이, 저 깊숙한 부분에서는 서로 공유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니, 양파 껍질을 까듯이 한 번, 두 번 계속 벗겨보면 두 학문은 완전히 동일해 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따라서 한 분야에서 발전을 이룬다면 다른 수 많은 분야에도 적용되어서 단순히 상상했던 것 이상의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비슷한 예들도 많고 말이다. 교통 시스템 공학과 유체 역학이 같은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입장은 내가 세상을 보는 눈에도 적용되어 나타나는데, 나는 어떤 풀리지 않고 해답도 없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 그보다 상대적으로 큰 도메인에서의 해결 방안, 그리고 상대적으로 작은 도메인에서의 해결 방안이 먼저 있는지 여부를 조사한 후, 이를 현실적으로 수정하여 내가 맞닥뜨린 그 문제에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다소 엉뚱하지만 나는 연애에서의 남녀 관계라는 것은 외부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을 때 자석의 N-S 극이 가지는 물리적인 성질과 동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 물론, 이것들은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은 아니고 물리학에서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등 적용되는 범위가 다른 학문을 하나로 합치려는 노력을 수없이 하고 있으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고 이를 증명해 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생각을 말하면 너무 분석적으로 모든 일을 접근한다거나, 인간미가 없다거나, 아니면 “세상일은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 하는 식으로 설교를 하려고 할 지 모르겠으나, 사실 그런 말을 하는 타인이나, 나나 자극에 따른 행동의 결정 방식에서 다른 것은 또한 아무것도 없다. 누구는 의식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현실을 패턴화 시키는 것이 결국 학문이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단순화해서 몇 가지 원칙에 수렴하게 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경험이라던가 유산(Legacy)의 본질적인 의미는 이런 사고의 과정에서 파생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Deserved : ~받을 만 하다

 TOFEL 공부를 위해 야심차게 구입했던, Reading, Writing, Listening, Speaking. 각각 4가지의 교재 중, 가장 먼저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끝내고 성취감이 들었던 것이 바로 Reading Section의 책이었다. Writing은 교재 이외의 무엇인가 쓸 것이 필요하고 (컴퓨터 혹은 펜과 종이) Listening은 물론 MP3 플레이어가 필요하고, Speaking은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냥 교재 하나와 사전 한권만 있으면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는 Reading 교재를 손 때 묻도록 꺼내들었고 덕분에 가장 먼저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 시험에서도 점수가 가장 좋게 나왔다)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지문 독해와 씨름해왔지만,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영어가 익숙해진다는 것은 내가 한글로 생각하고 있는 어떤 ‘개념’와 영어로 생각하고 있는 어떤 ‘Concept’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 속에서 그 둘을 단단히 묶어서 하나가 떠오르면 다른 하나도 떠오르도록 이어 놓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인 우리야 “사과”하면 녹색 혹은 빨간색의 동그랗고 특유의 향과 맛이 나는 나무에서 따는 작고 가벼운 먹을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경험적으로 배워서 알고 있다. 우리가 “Apple”이라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하는 일은 이 “사과”“Apple”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고 다른 나라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동일한 대상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라고 납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배우고 나면 이 “사과”“Apple”을 머리 속에서 가능 하면 가까운 위치에, 동일한 것으로 사고 하도록 꽁꽁 묶어 놓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익숙해진다.”라고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부하다 보니 단순히 이 과정으로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을 몇개 발견할 수 있었고,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바로 Deserve라는 단어이다. 아마, 고등학교 수준 단어이고 요즘은 똑똑한 중학생들이 많아서 대부분 이 단어를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방금 사전을 찾아보니 <보수·도움·벌 등을> 받을 만하다; [Ⅲdoing / to do] <…할 만한> 가치가 있다. – 금성출판사 라고 나와있다. 즉, 기본적인 뜻 중에 하나는 “어떤 사람이 받은 결과가 과거의 그 사람의 행동에 비추어 봤을 때 타당하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영어로는 한 단어지만, 한글로 번역하기는 까다로운 문장으로 풀어 써야하는 단어이다.

 나는 내가 이 단어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이 단어의 개념을 묶어 놓을 한글로 된 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개념은 한글 한 단어로 쉽게 번역되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Deserve를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모국어를 한국어로 하고 있는 나에게는 역시나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이 단어를 영어 독해 지문에서 수없이 많이 보고, 뜻을 외우고, 문장의 유형에 익숙해지만, 자연스럽게 이 단어도 막힘이 없이 술술 풀려나가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내 주위의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한명은 “선하게 살기 때문에 행복해질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또 한명은 “순수한 노력으로 인한 결과를 받을 만 한 사람”이었다. 문득 이 두 명에 대해서 위의 생각을 했을 때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이전의 다른 대상에 대해서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여기서 첫번째 사람이 행복해 졌는지, 혹은 두번째 사람이 합당한 결과를 받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Deserve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그들이 보여준 삶의 과정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자격이 충분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Deserve라는 단어에 익숙해 지지 못했던 이유는 위에서 내가 착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의 노력과 장점에 감동하고 결과를 같이 기뻐해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풀숲에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길이나고, 또 길이 생겨야 자주 다니듯이, 사람의 생각도 같은 방향으로 자꾸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동안 나는 결과에 중심을 맞추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Deserve라는 단어가 쉽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조금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나 현재의 위치 따위의 얼굴을 마주 대지 않고, 이력서로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소위 스펙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더 중심을 두고 살펴본다면 Deserve라는 단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이룬 성과에 감탄하지 말고, 그 노력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마인드에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으면 결국 보이는 것은 단순한 그 사람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랬을 때 진심으로 서로 격려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때야 비로소 상대에게 자신있게 “너는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Deserve의 뜻으로 말이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이 블로그에 오는 모든이, 또 나에게 이러한 경험을 하게 한 특별한 두명에게도 You deserve to have it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