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

나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좋은 시절이 있었단다.

그 때는 모든 사람이 에스컬레이터를 탄 듯 했다나? 그래서 별로 머리는 쓰지 않아도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기만 하면 차도 생기고 집도 생기고 고기도 매일매일 먹을 수 있던 시절이란다. 나에게는 빅뱅이나 기원전이나 이런 세상이나 신기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누가 잘못한 건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아 버려서 조금 덜 좋은 시절이 왔단다. 에스컬레이터가 멈춰서 계단으로 바뀌었다나? 열심히 걸어올라가야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 세상. 그래도 괜찮았단다. 열심히 하면 더 좋아질것이 확실한 세상이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런닝머신 세상이라고들 한다. 죽어라 뛰어도 제자리고, 잠시라도 멈추면 뒤로 밀려서 나동그라지는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이다. 한국 뿐 아니고 전 세계가 다. 나는 사회에 나오자마자 런닝 머신 세상이다. 아니 어쩌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런닝머신 세상이었다. 단지 내가 런닝머신위를 달리고 있는건지, 계단을 오르고 있는건지 자각하지 못했을 뿐.

누구는 좋은 시절을 추억이라도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야 그저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라 순응하며 힘겹게 뛰고 있을 뿐이다. 뭐 누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너무 늦기 전에.

 

꾸지람을 원해

학생 때에는 꽤 혼났다. 혼났다라기 보다는 “뭐뭐를 하면 안된다.” 정도의 가이드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뭔가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이 명확했고 그것에 따라서 착실하게 벗어나지 않고 살면 뒤쳐지지 않는, 뭐 조금만 열심히 이끌어주는 대로 따라가면 남들보다는 앞서간다고 느껴지기는 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나에게 어떤 가이드나, 내가 잘못했을 때 명확하게 “무엇이 잘못이니 어떻게 고쳐”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학생과 선생님, 자녀와 부모 같은 절대적인 지시와 복종의 인간관계라서 피지배자의 지배자에 대한 영향력이란 것이 미미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자신의 포지션을 경쟁하는 사회란 곳은 그렇게 크건 작건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서로 조심스럽다고나 할까. “넌 뭐가 잘못됐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할 만한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과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정말 더 중요하다.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그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요즘의 상황이라면 이러한 선생님이나 아버지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더 이상 그러한 역할을 해 줄 존재가, 완전한 멘토가 내 주위에는 더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휘정씨 뭐가 잘못됐으니까, 어떻게 해.”라는 그런 한마디가 요즘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