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遊興)은 무엇을 바꾸지 않는, 순간의 즐거움에 만족하는 활동이다. 놀이는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이를 통한 건강의 증진이나 사회화 과정을 포함할 수도 있다. 학습은 더 적극적으로 내면의 변화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다만 학습의 결과는 반드시 ‘행위’로 나타나는 변화를 기대하는 활동이다. 학습 전후가 나의 ‘사유’만을 바꾼다면 우리의 사회가 교육 시스템을 구축한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생각만 한다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생각을 이어나가 ‘유흥’, ‘놀이’, ‘학습’이라는 각 단계의 유사성을 다른 분야에서도 유추해 낼 수 있다.
‘관광’은 순간의 즐거움으로 만족할 수 있다.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고, 멋진 호텔에서 잠드는 것, 그리고 그것을 기대하는 것은 관광이다. 색다른 지역에서 관찰자 입장에 머무르는 것, 보는 것이 아무리 깊은 수준의 문화나 통찰이어도 나 스스로가 관찰자 입장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여행’은 그와 다르게 그 과정에서 나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여행은 자발적으로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총체적 과정이다. 이런 행위에는 관광할때의 제 3자적 관찰이 아닌 온몸을 통한 체험, 능동적 의사결정, 난관의 극복, 회고 등의 과정이 포함되어야 한다. 흔히 “고생한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한다. 이는 단순히 관찰자 역할에 머무는 관광이 아니라, 더 깊이 몸에 체화되고 정신에 각인된 여행이 나의 변화를 더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생각에 부합한다.
‘독서’도 책을 들고, 눈으로 보고, 머리속에 글자와 그것과 연관된 관념을 떠올리고, 이 관념간의 유사성과 연쇄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어느 독서나 비슷하다. 하지만 얼마나 밀도있게 글자를 대했는지에 따라 머리 속에 남는 것과 그 이후 행동 변화가 결정된다. 흔히들 비판적 독서나 강독이라 일컬어지는, 단어 하나하나의 무게를 느끼면서 힘을 들여 무겁게 밀고 나가는 식의 독서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 단어가 아닌 문장 단위로 징검다리 건너듯 술술 넘어가는 독서를 하는 것은 책장은 빨리 넘길 수 있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독서는 아니다. 독서 이후 독후감을 쓰는 것, 독서 일기를 쓰는 것, 필사를 하는 것, 독서 클럽에 가입해서 내가 생각하기에 말이 안되는 주장을 들어보는 것들은 모두 단순히 언어를 읽는 것이 아닌 나의 몸에 이 글자를 새겨 넣는 더 풍부하고 밀도 있는 활동이다.
그러면 유흥, 관광, 통독은 나쁘고 학습과 여행, 강독은 올바른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깊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으며, 내게 도움이 되는 것과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더 중요하게는 나의 학습과 여행, 강독이 공짜는 아니다. 모두 시간과 정신력, 그리고 시간을 써서 수행한 노동의 집약체인 돈이 필요하다. 접하는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해 열정을 불태우면 곧 시간과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다. 학습, 여행, 강독을 한다고 돈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도 필요하다.
그래서 선별이 필요하다. 어떤 배움, 관광지, 책은 깊이와 철학이 없어 ‘세상에 이런 것이 존재하는 구나’ 정도만 알면 된다. 주로 나의 노력과 집중이 다른 사람에게는 재화로 환원되는 경우가 그러하다. 유익한 거래일 수도 있지만 아닌 경우가 너무도 많다. 반면 어떤 것은 ‘깊이 있게 이해하고 한발 더 나아가 세상에 없는 것을 내가 만들어야겠구나’ 라는 자세로 덤벼야 한다. 이런 것을 고려하면 깊이가 있어 끊임 없이 파고 들 수 있으면서 그 결과물이 내게, 또 다른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여행하고, 강독하며, 학습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누가 결정할 수 있는가? 한번 가본 나라는 여행할 가치가 없는가? 물론 아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생각와 경험을 하며 살아온 각자만의 인생을 산다. 가치 있는 경험은 누가 말해줄 수 없으며 내가 정해야 한다. 사람은 많이 다른 면도 있지만, 의외로 또 어떤 면에서는 거의 다른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적어도 그 출발점은 비슷해 보인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과정을 밟고, 한국어를 하고, 비슷한 뉴스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같은 음악을 듣기도 한다. 그 출발점을 벗어나 무엇을 선택해 나가느냐에 따라 점점 그 사람의 인생이 구분지어지는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깊이가 없고,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다른 사람이 추천하거나, 암묵적 혹은 적극적으로 강요된 미디어에 의해 소비하는 행태이다. 나는 내 인생을 사는가? 다른 인생의 도구, 혹은 도구의 도구로 살아가는가?
최근 긴밀히 연결되고 사회적인 컨텐츠 소비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비자발적이면서 얕은 계층의 문화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에서 노력을 들여 소비하고 익힐 것은 선별할 줄 아는 능력, 그리고 그런 의지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 소비하는 매체의 다양성이 오히려 줄어들고, (Youtube 안보고 AI 안쓰는 사람이 있나) 매체 내의 컨텐츠 선택권을 내가 가지지 못하면 컨텐츠 다양성도 줄어들고 있다. 더 깊이 있게 파고들 대상을 찾는 것 조차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넷과 Youtube 공간을 살펴보면 사회적 종으로서 다양한 경험과 체화, 그리고 이를 통한 발전이 가로막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경험과 선택에 의해서 발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