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점차 디지털화 될 것이라는 증거가 넘쳐나는 요즘이다. 전기로 동작하는 기기를 몇 개나 가지고 돌아다니는지 생각해보고 그 숫자를 과거와 비교해보는 것도 그 증거를 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고작해야 삐삐와 G-SHOCK이 디지털기기로 이룰 수 있는 우월감의 전부였던 나의 중학교 시절과 비교해보면, 요즘은 마치 온몸을 갑옷으로 둘러싼 전사처럼, 온몸의 각 부분에 디지털 기기를 무장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휴대폰은 정신병까지 초래할 정도의 중독성으로 온 국민의 필수품이 되었고, MP3도 유행의 최신 아이콘이 되었다. PSP, NDS등의 휴대용 게임기들은 집에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않아서야 할 수 있었던 게임을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시간을 더욱 더 잡아 먹으려고 하고 있다. 경량화 된 본체와 대용량의 베터리를 장착한 노트북은 이 모든 기기들을 자신에게 컨버젼스 시킬 수 있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대다수는 이러한 디지털 기기들의 대규모 공습을 공습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물리적인 거리의 개념은 사람들 머리 속에서 점점 좁아지고, 이진부호는 부피를 무시하는 공간속에 저장되고, 이 결과로 얻어지는 당연한 축복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어보인다. 세상은 사람들의 욕구가 흘러가는데로 발 맞추어 흘러가기 마련이다. 휴대폰이 급격하게 퍼진것은 1000원에 준다는 소위 공짜폰의 자극적인 문구도 아니고, 이효리나 김태희가 TV CF에서 발산하는 매력때문도 아니고, 레이져에 슬림함에 혁명이라 이름을 붙인 사람들의 놀라움도 아니고, 단지 사람이 사람의 목소리는 원하고 사람이 사람의 흔적을 언제나 어디서나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은 그 이후 문제인데 결국 욕구의 표현 방법에만 영향을 끼칠 뿐이다. 디지털화된 편리한 세상의 매력에 중독된 사람들은 결국 그것을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개인 단위에서 전체 단위로 옮겨갈 수록 이는 더욱 더 확실해진다.
외부의 모든 것을 디지털화 시키면, 자연스럽게 사람 자체도 디지털화된다. 나의 어떤 동작의 반응은 항상 동일하고 예상 범위 안에 있는 것이며 학습된 것과 동일해야 한다는 가정하에 우리는 행동하고 있다. 만약 동일하지 않은 결과가 얻어지면? Reset 한다. 디지털과 대면하는 인간의 자세는 항상 이렇다. 놀랍도록 세상을 단순화 시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디지털을 읽는다.
디지털 화된 세상의 비인간성이니, 인스턴스 화된 인간관계니 이런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자는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은 사회학자나 윤리 선생님에게 맡겨두자. 인간의 저 깊은 곳에 있는 것은 아날로그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 당연한 이야기를 또 하고 싶은 것이다. 지겨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자주 반복해두지 않으면 1.5v로 작동되는 조그맣고 딱딱한 녀석들에 의해서 머리속이 점령 당할지도 모른다. 그건 중요한 문제다.
조금 이야기를 다른데로 돌려서 내가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뉴턴의 물리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포물선으로 공을 던지면, 작용되는 힘이 수직방향과 수평방향으로 분해되고 수평방향의 속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수직방향의 위치는 중력가속도에 의해 영향 받는다는 놀랄만큼 분석적인 이야기. 나는 물리가 참 싫었는데, 그 이유는 시험지 위에서의 물리 같았기 때문이다. 답은 소수점 2자리까지 구해야 인정될 정도로 정밀함을 요구했지만, 그만큼 진공 상태여야 하느니, 지구 위여야 하느니 조건도 까다로웠다. 말 그대로 쓸모가 없어보였다. 당장 운동장에 나가서 시험지 위에 정밀하게 풀어내려간 공식대로 실험을 해도 결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공대로 진학할 사람들은 선택과목으로 물리2를 선택하라는 선생님의 추천에도 나는 지구과학2를 선택했다. 적어도 소수점 2자리까지 구하는 정밀함은 없었다. 계산을 해도 언제나 근사 값임을 인정했다. 그리고 감히 내가 상상할수 없는 거대함에서 나오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나에게 물리2는 디지털이었고, 자연과학2는 아날로그였다. 뭐, 나중에 알게된 일이지만 뉴턴의 물리2는 역시 진리가 아니었다. (결국 대학에 와서 양자역학 관련 서적을 읽어보면서, 결국 물리도 아날로그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최근의 초끈이론을 보면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세상의 기본 원칙은 확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확률 중에 0과 1은 없다. 완벽하게 예측가능한 것도 없고, 또 완벽하게 옳은 것도 없으며, 사람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행동할 수 있으며, 그 중 절대적으로 틀린 것도 없다. 단지, 어떻게 될 확률이 있는 것이고, 어떻게 생각하게 될 확률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잘 이해하면 크게 화낼 일도 없고, 크게 잘못된 일도 없다. 내 머리속에서 확률은 아날로그와 동의어다. “자연스럽다.” 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디지털의 화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있으므로, 그 반대 급부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연은 아날로그가 지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사실, 반론의 여지도 없다. 아날로그는 자연이고, 디지털은 인공이다. 자연은 아날로그고, 인공은 디지털이다.
당연스러운 이야기를 안 당연스럽게 하려니 힘이 든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아날로그적인 세상이라는 말이고, 인간이 속하는 자연의 거대 원칙은 아날로그가 지배한다. 즉, 디지털화된 모든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에너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이유를 근래로부터는 산업화의 영향부터 과거 멀리부터는 문명의 발달등에서 찾고 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 Digitalize 되어가기 때문인 것이다. 단지 요 몇년간의 디지털 혁명이라 불리는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흐름은 사실 수천년, 수만년간 계속 되어 오던 것이라 생각한다. 기술이 뒷받침 되는 오늘날에 폭발적으로 증가할 뿐.
이 생각을 채식주의자를 보는 미식가의 눈초리로 보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은 고기를 먹지 말자는게 아니라, 인스턴트 음식을 적당히 먹자는 쪽에 더 가까운 것이다. 디지털화가 가져다 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편리함을 추종하는 한편으로 디지털화를 철저하게 컨트롤하는 능력을 키워두어야 하는 것이다.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 50%가 이어폰을 끼고 언제 어디선가 녹음되어 수천개로 복제된 “010” 부호를 듣고 있지만, 결국 나
에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내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서 중독적인 소리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찾아내는데 있다. 사람들은 영화관에서, 최근에는 복제에 더욱 편리하도록 디지털 필름을 많이 쓴다, 복제된 수천개중의 하나인 영상을 수백명의 사람들과 같이 감상하는데 8000원을 쓴다. 하지만, 살아있는 공연의 매력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었던, 그 순간, 그 위치의 그 몸짓과 그 소리다.
문화적인 측면이 아니어도, 아니, 어떤 면에서도 아날로그가 더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이로서 사람은 진정으로 휴식하고 긴장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어 보인다. 아날로그적인 취미 생활,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 아날로그적인 연애, 아날로그적인 식습관. 모든 것이 위기에 빠져있는 현대사회 이지만,
결국은 아날로그다.
“결국은 아날로그”의 한가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