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사람들

이것에 대해서는 늘 하는 말이고 늘 쓰는 글이지만, 삶을 화려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주위에 나와 닮고 또 조금은 다른 사람들이 서성이고 다가오고 멀어지고 하기 때문이다. 마치 한다발의 바구니에 담긴 여러 개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듯이 나의 삶에도 그들이 없으면 얼마나 단조로울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늘 고맙다고 말하고 싶고, 동그란 원을 만들고 둘러서서 함께 웃고 떠들고 이 기쁨이 우리들의 중심에서 크게 응어리 져서 모두를 이어주도록 만들고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러한 같이 무엇인가 하는 가치를 사람들이 조금 더 중요하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같이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혼자 무언가 할 것인가? 에 대한 선택에 마주쳤을 때 조금은 이러한 같이 하는 기쁨을 상상했으면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는 조금은 이상하게 생각되는 자존심 때문에, 혹은 정말로 혼자서 무엇인가 하는 데 몰두해서, 또는 사람들과 어울릴 때 받는 상처에 두려워서 "아! 나 시간되는데, 재미있겠다!" 라는 정말로 기대가 담긴 한마디를 해주지 못하는 것 처럼 보인다.

늘 사람은 결정을 우선순위에 따라 하게 마련이다. "나 시간 안되는데, 아쉽다!" 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할때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불가능 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른 더 중요한 일정이 그 시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더 중요한 일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이는 충분히 나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 조절이 가능한 것이 대부분이다. 미리 준비한다던가, 조금 미룬다던가, 정말로 잘 시간 관리를 할 수 있으면 부담 없이도 충분히 그 시간을 다른 사람과의 기쁨의 시너지를 위한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 이다.

블로그에도 쓴 적이 있지만, 정말 무엇인가를 계속 혼자만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지금까지 수십년한 혼자 해왔던 공부를 생각해보세요. 이제 무엇인가 같이 할때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라고 답해준다. 영원토록 나와 같이 있을 수는 없을 것이 확실한 사람들과 지금 이 순간 타는 그리움에 손을 잡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심각한 건 싫다

두번 생각하기 싫다.

시니컬해지기 싫다.

그건 아니라고 말하기 싫다.

지어지지 않는 웃음을 만들어내기 싫다.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쓰기도 싫다.

이모티콘이 없는 딱딱한 문장을 “다”로 끝나게 계속 지어내기도 싫다.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하기도 싫다.

상대방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기도 싫다.

엔터를 칠지 말지 고민하기도 싫다.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계산하기도 싫다.

어깨를 움츠린채 걷기도 싫다.

만약 조금의 용기만 더 있었다면 이런 망설임은 뛰어 넘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마음 가는대로 솔직한 나의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게 “꾸준한 자기관리”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이런 것 같다.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것. 고작 속 좁은 상사의 호통에 짜증나서 하는 편협한 소리 같은 것은 아니다. 당당함은 인생을 바꾸는 가장 쉬운 아이템이지만, 노력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