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다는 말이 얼마나 추상적인지..

  트위터나, 블로그를 돌아다니다 보면 별 소득 없는 싸움을 목격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누가 옳다느니, 누가 더 전문가라느니, 누구의 정보가 더 최신의 것이라는 등의 딱히 실제 세계와 다를 바 없는 이유들로 ‘별’ 걸 가지고 다 싸운다.

  흔히들 생각하기를 같은 것을 보고도 제각각 다르게 생각하는 생각의 다양성 때문에 싸움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본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생각할 때, 보는 대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흔히 일어나는 싸움 중의 하나를 생각해보면, 짬뽕으로 유명한 중국집이 있고, 이곳의 맛을 극찬한 어느 식도락 블로거가 있다고 해보자. 이 극찬한 글을 읽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중국집을 방문한 누군가가 짬뽕의 맛이 형편없다고 느껴 블로거가 올린 글에 비아냥 거리는 “님 입맛 참 싸구려네요.” 라는 댓 글을 달아 싸움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다른 입맛을 가졌기 때문에 의견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고, 또 싸움도 자연스럽다는 반응 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두 사람이 먹은 음식이 애당초 다르다는 사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그날 따라 마른 오징어를 썼다던가, 요리사가 손을 다쳐 견습 요리사가 조리했다던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싸울 이유가 없다. 각자는 각자의 음식을 맛봤고, 이는 서로 다른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엄밀히 맞추어 적어도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애당초 물리적으로 Equivalent 한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면 의미 없는 싸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성급한 동일시의 오류의 예를 정말 많이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실수를 애초에 막기 위해서 우리는 “같다”라는 말, 혹은 개념을 정말 신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말을 정확하게 사용할 Tangible한 예라는 것을 찾기가 힘이 들 정도로 이는 추상적인 용어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근사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같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어느 경우에 이 말이 적합하지 않은지, 어느 경우에 성급하게 동일시 하고 있지 않는지 파악해 각기 다른 세분화된 개념을 머리 속에 납득하고 체득하고 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각이 내 기준에서 틀린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출발 선 상에서 출발하여 다르게 발전시켜 나간 것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여유도 발휘할 수 있고 말이다.

  디지털 세상처럼 모두가 같은 것에서 출발하면 같은 생각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같은 것을 봐도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있는 불확실성의 세상도 아니고, 세상 모두가 다른 것을 보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간 세상이다. 여기는.

역시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중요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삶의 굄 돌 역할을 하는 묵직한 기억의 조각들은 그 조각을 어디에서 발견했는지, 어떤 모양을 하고 무슨 색을 띄고 있는지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다. 그 대상에 대해 생각하면 홀연히 사라져,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물 속의 기포처럼 본질은 볼 수 없지만, 그것의 영향력이 주위를 변화시키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하게 알아챌 수 있을 뿐이다.

  감정이 응결돼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억의 조각들은 진주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진주처럼 항상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기억은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지만, 또 다른 어떤 기억은 똑바로 응시하는 것으로 자아를 붕괴시킬 만큼 강력한 것도 있다. 아마 이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 방어 기제가 작용해 마음 속 어딘가에 꽁꽁 숨겨져 있음이 틀림 없다. 사람의 겉 모습이 육지라면 마음은 깊은 심해 같다. 엄청 난 것이 있음에 틀림없지만, 무슨 꿍꿍이가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파도를 보고 어렴풋한 짐작 밖에 할 수가 없다.

  피상적인 감정들을 하나씩 벗겨내어 그러한 본질 적인 것을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세상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나의 무엇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어디까지 나를 알 수 있을까. 최후의 순간에 알아낸 자신과 얼마나 나를 동일시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