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싫어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

아마, 불평 불만을 늘어놓는 자신이 한심해 보일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싫어하는 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없이 말만 하고 있어서 무엇하랴. 하는 무용론을 바닥에 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뭐 가장 중요한 것은 즐겁게 살기. 에 방해가 될 뿐이니까, 자제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견딜 수 없이 싫은 것이 있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고, 다른 사람이 아 나도 그런거 싫어. 하면 자신도 아 모두들 싫어하니 내가 이렇게 싫어하는 게 나만의 나쁜 특성은 아니구나. 하는 다소 여성들의 수다 패턴 같은 욕구 해소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 글도 이러한 이유에서 쓰여졌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싫다. 정말 너무 너무 싫어서 보고 있으면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라 하셨는데. 과연 정말로 이런 것까지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까? 두번이고 세번이고 묻고 싶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냥 물리학적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이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형태로 뭉쳐 있을 뿐이다. 의지도 없고, 열정도 없고, 자기 스스로 생각해 본적도 없고 보면 투명해 보이는 사람. 말을 해보면 겉에서 본 모습이나 진지한 대화의 모습이나 어떻게 뒤집어 봐도 그냥 얇팍한 기름종이 한장. 정말 있냐고? 정말 있다.

나는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이 누구에게 비난을 할 때에도 말로는 그래 맞아. 그런 면도 있어. 하면서 속으로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수도 있지 않을까? 열심히 변호할 말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차마 입으로 말은 못하지만) 정말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없는 사람도 발견되는 것이다. 바로 위의 아무것도 없는 사람.

사실 많이는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가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 질 정도로 머리 위를 뛰어다니는 중인데. 그래도 간혹 가다 발견 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충격에 이런 글까지 쓰게 만드는 거다.

그 충격의 근원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모든 것이 있는 척에서 출발 하는데, 모든 것이 있는 척 하기 위해 꾸며대는 과장과 적절한 어휘 선택. 그리고 꼿꼿한 태도 등은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상처를 입히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여전히 재수 없는 그 모습, 그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갱생 불가능한 판정을 받고 있다. 물론 내 나름대로 내린 마음대로 판정이다. 따라서 어떤 나의 노력도 들일 값어치가 없는데 이는 무시라는 행동으로 나타나며 왕따보다는 한등급 높은 경계 태세가 아닐까 싶다.

오래전 이미 이런 판정을 받고 떠나간 사람을 간만에 보고 여전히 적용되는 위의 내 생각에.. 무서워졌다. 나도 그 사람도. 그리고 관계라는 것도.

   

좋아하는 문구 하나.

책을 읽다가 좋아하는 부분을 어디에 적어 놓는다던지.
시를 쓴다던지.
블로그에 어디서 마음에 드는 글을 펌해 오는 일도 절대 없는 나지만.

대학교 1학년 때, 아무도 없는 꼭대기 열람실에서 책의 첫장을 넘겼을 때.
한면 전체가 텅 빈채 가운데 써있었던 그 글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종이를
꺼내서 메모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전에도 그런일은 없었고 그 후에도 없었
으니 내 인생에서 유일한 사건이었는데.

작가는 미야자와 겐지.
그 당시의 독서 노선을 보면 근대 미국, 일본 소설을 주로 읽었던 거 같은데
역시 작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에 책에는 번역이 되어서 한글로 적혀 있었는데. 문득 블로그에 적으려고
하니 원문이 궁금해져서 일본 웹에서도 찾아봤더니, 유명한 문구인지 쉽게 나왔다.

正しく強く生きるとは銀河系を自らの中に意識してこれに応じて行くことである
われらに要るものは銀河を包む透明な意志 巨きな力と熱である

바르고 강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 안에서 은하계를 의식하고 그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은하를 포용하는 투명한 의지, 거대한 힘과 정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