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erved : ~받을 만 하다

 TOFEL 공부를 위해 야심차게 구입했던, Reading, Writing, Listening, Speaking. 각각 4가지의 교재 중, 가장 먼저 마지막 페이지까지 모두 끝내고 성취감이 들었던 것이 바로 Reading Section의 책이었다. Writing은 교재 이외의 무엇인가 쓸 것이 필요하고 (컴퓨터 혹은 펜과 종이) Listening은 물론 MP3 플레이어가 필요하고, Speaking은 조용한 환경이 필요하다. 따라서 그냥 교재 하나와 사전 한권만 있으면 어디서든 공부할 수 있는 Reading 교재를 손 때 묻도록 꺼내들었고 덕분에 가장 먼저 마지막 장을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 시험에서도 점수가 가장 좋게 나왔다)

 이렇게 많은 시간 동안 지문 독해와 씨름해왔지만, 역시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영어가 익숙해진다는 것은 내가 한글로 생각하고 있는 어떤 ‘개념’와 영어로 생각하고 있는 어떤 ‘Concept’가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고 머리 속에서 그 둘을 단단히 묶어서 하나가 떠오르면 다른 하나도 떠오르도록 이어 놓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한국인인 우리야 “사과”하면 녹색 혹은 빨간색의 동그랗고 특유의 향과 맛이 나는 나무에서 따는 작고 가벼운 먹을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경험적으로 배워서 알고 있다. 우리가 “Apple”이라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하는 일은 이 “사과”“Apple”이 완전히 동일한 것이고 다른 나라의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동일한 대상을 다르게 부르는 것이라고 납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 배우고 나면 이 “사과”“Apple”을 머리 속에서 가능 하면 가까운 위치에, 동일한 것으로 사고 하도록 꽁꽁 묶어 놓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익숙해진다.”라고 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공부하다 보니 단순히 이 과정으로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단어들을 몇개 발견할 수 있었고, 오늘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바로 Deserve라는 단어이다. 아마, 고등학교 수준 단어이고 요즘은 똑똑한 중학생들이 많아서 대부분 이 단어를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방금 사전을 찾아보니 <보수·도움·벌 등을> 받을 만하다; [Ⅲdoing / to do] <…할 만한> 가치가 있다. – 금성출판사 라고 나와있다. 즉, 기본적인 뜻 중에 하나는 “어떤 사람이 받은 결과가 과거의 그 사람의 행동에 비추어 봤을 때 타당하다.”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영어로는 한 단어지만, 한글로 번역하기는 까다로운 문장으로 풀어 써야하는 단어이다.

 나는 내가 이 단어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이 단어의 개념을 묶어 놓을 한글로 된 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개념은 한글 한 단어로 쉽게 번역되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Deserve를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이기에는 모국어를 한국어로 하고 있는 나에게는 역시나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까.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고 이 단어를 영어 독해 지문에서 수없이 많이 보고, 뜻을 외우고, 문장의 유형에 익숙해지만, 자연스럽게 이 단어도 막힘이 없이 술술 풀려나가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내 주위의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문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한명은 “선하게 살기 때문에 행복해질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또 한명은 “순수한 노력으로 인한 결과를 받을 만 한 사람”이었다. 문득 이 두 명에 대해서 위의 생각을 했을 때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이전의 다른 대상에 대해서 느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여기서 첫번째 사람이 행복해 졌는지, 혹은 두번째 사람이 합당한 결과를 받았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Deserve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그들이 보여준 삶의 과정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자격이 충분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내가 Deserve라는 단어에 익숙해 지지 못했던 이유는 위에서 내가 착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의 노력과 장점에 감동하고 결과를 같이 기뻐해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풀숲에 사람들이 많이 다녀야 길이나고, 또 길이 생겨야 자주 다니듯이, 사람의 생각도 같은 방향으로 자꾸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 동안 나는 결과에 중심을 맞추는 생각에 너무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Deserve라는 단어가 쉽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조금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나 현재의 위치 따위의 얼굴을 마주 대지 않고, 이력서로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소위 스펙이라는 것과는 다르게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에 더 중심을 두고 살펴본다면 Deserve라는 단어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이 이룬 성과에 감탄하지 말고, 그 노력과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 마인드에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으면 결국 보이는 것은 단순한 그 사람의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랬을 때 진심으로 서로 격려하고 자극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럴때야 비로소 상대에게 자신있게 “너는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Deserve의 뜻으로 말이다. 

 앞으로의 인생에도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이 블로그에 오는 모든이, 또 나에게 이러한 경험을 하게 한 특별한 두명에게도 You deserve to have it all!

볼레로와 아침식사

저는 아침 자명종 소리로 라벨의 ‘볼레로’를 들어요. 흔히 휴대폰 벨소리, 자명종 소리 같은 것들은 정각에 맞춰 온 에너지를 다해 나를 현실로 잡아 당기는데 반해서 ‘볼레로’는 시작은 부드럽게 연주되는 잠에 빠져 있을 때의 숨소리 같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심장을 쿵쾅거리게 해서 도저히 잠에 빠져 있을 수 없게 하거든요. 왠지 건강에도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마치 수영전의 준비운동처럼 말이죠. 하하하.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카라얀이 베를린 필과 연주한 1978년의 녹음이죠. 표지에 나와있는 카라얀의 헤어스타일은 아주 모던하고 멋지답니다.

아무튼 이렇게 부드러운 시작과 함께 잠에서 깨서 저는 화장실로 향합니다. 감미로운 몇 번의 프레이즈의 반복 동안에는 양치질을 하고, 약간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머리를 감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을 때면 어느덧 오케스트라는 그 정점을 향해서 맹렬하게 달려나가죠. 그리고 최후의 폭발이 있을 즈음에는 저는 식탁에 앉아서 간단하게 차려진 식사를 먹을 준비가 다 되어있지요. 다행스럽게도 다음 트랙이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인 관계로 저는 프랑스 귀족의 식사처럼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맞추어져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런 아침을 맞이한지 3년 째이지만 조금도 이 패턴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입고 갈 옷을 고르기 위해서 망설이다가 ‘목신의 오후에 전주곡’이 나올 때까지 옷장 앞에서 머무른 적이 없었고, 이를 오래 닦거나 해서 쿵쾅거리는 팀파니 소리를 욕실에서 들어 본적도 없지요. 마치 엄격한 ‘볼레로’의 반복되는 리듬에 맞추어 저의 이 아침의 18분 동안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음악이 계속되면 시간도 흐르고, 음악이 멈추면 시간도 멈추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말이죠. 나의 삶을 외부적 요인에 의해 지배 당하는 것 처럼 느꼈습니다. 단순히 습관화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틈 없는 행동 모습이거든요. 이렇게 나선형으로 곡을 작곡한 라벨인 것인지, 18분의 플레이시간을 가지도록 지휘한 카라얀인 것인지, 아니면 다음 트랙으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선택한 EMI의 음반 기획자의 책임인 것인지.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생각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은 결국 네가 선택한 것 아니야?” 하면서 말이죠. 네, 맞습니다. 조금 시간을 들여 살짝 높은 곳으로 올라가 생각해보면 저 자신의 문제지요. 아마 CDP가 고장 나거나 하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나 자신으로 귀납되는구나!”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고작해야 잠에서 일어나 17분 간의 시간에 대해서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었지만, 인생 전체를 이런 의문으로 포장하고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이 본답니다. 자신의 인생을 항상 다른 사람의 행동의 결과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 이지요. 그리고 그들에게는 고장 낼 CDP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