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간의 일본 기차 여행 – 후쿠오카

신기하게도 후쿠오카 공항은 도심과 붙어 있다. 서울이라면 용산에 공항이 있는 꼴이라 지하철로 10~20분만 이동하면 하카타 역에 닿을 수 있다. 도심에서도 머리 위로 랜딩 기어를 내린 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볼 수 있다. 건물의 고도제한이 심할 것 같긴 하지만, 딱히 높은 건물이 필요한 도시도 아닐 것 같다. 편리한 도심 접근이 단기 여행객들에게는 많은 매력이 있다.

후쿠오카의 중심이 되는 역은 후쿠오카역이 아니라 하카타역이다. 옛날 후쿠오카시와 하카타시가 합치면서 도시 이름은 후쿠오카, 역 이름은 하카타로 하기로 결정했다 한다. 이런 거래가 가능할만큼 그 때는 기차역 이름이 중요했던 것이다.

일본은 철도 교통 발달에 유리한 지형을 가졌다. 국토의 폭이 좁고 길어 그 중심을 관통하여 경제 권역을 연결하는 간선(그래서 고속철도의 이름이 신-간선이다) 을 건설 한 후 각 지역 중심지로부터 소도시까지의 지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발달한 것 같다. 중심을 관통하는 선 만으로도 대부분 지역에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같은 면적이라도 원형이나 사각형의 국토를 가진 나라는 소외되는 지역이 존재하거나, 승객이 여러번 갈아타는 불편함을 겪게 될 수 있다.

나의 여행은 공항에서 하카타 역으로 이동해 JR패스를 교환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카타 역의 중심에 초록색 JR 패스 교환 창구가 있다. 여기는 늘 외국인들이 줄을 서서 패스를 교환하고 있다. 붐비는 시간에 가면 꽤나 오래 기다릴 수 있으니, 아침이나 밤에 방문하라는 팁을 읽었다.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이 친절하게 설명해줘서 전혀 불편한 점은 없다. 나는 규슈 레일패스와 전국 레일패스를 모두 교환했다. 참고로 규슈 레일패스로 지정석을 예매하는 기계와 전국 레일패스로 지정석을 예매하는 기계가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해있어 불편하다. JR 규슈와 JR서일본(니시니혼)이 따로 운영되어 그런 듯 하다.

이번 여행은 신칸센 1등석을 타고 전국을 최대한 돌아다니기, 숙소에서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기, 각 지역의 대표 음식을 먹어보기라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도시 별로 대부분 1박, 길게는 2박 정도를 한 후 다음 도시로 이동했다. 숙소는 하루 전이나 당일 가장 싼 숙소를 아고다로 검색하여 결제하였고 대부분 2000엔 내외의 숙소였다. 지역의 대표 음식을 먹는 것은 노력했으나 혼자 먹기 어려운 음식도 있었고, 딱히 식도락을 즐기는 편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친 경우가 많았다.

후쿠오카는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2박을 한 도시다. 말끔한 캡슐 호텔과 게스트하우스에서 1박씩 숙박 하였는데 두 곳 모두 만족스러웠다. 일본의 캡슐 호텔은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체크인/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게스트하우스라고 특별히 파티나 곤란하게 말을 거는 외국인은 없었다. 조용하게, 효율적으로, 저렴하게 여행하는 여행객들을 위해 최적화 되어 있었다. 다만 기본 요금에 타올 등을 빌리려면 약 200엔에서 500엔 정도의 추가 요금을 받는 경우가 꽤 있어 개인 비품을 가지고 다닌다면 조금 더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을 듯 했다.

JR패스를 교환하고도 숙소인 캡슐 호텔의 체크인까지 꽤나 시간이 남았다. 짐을 맡기고 오호리 공원에 다녀오기로 했다. 6월 중순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날씨에 오래 걸으며 체력을 소진할 수 없어 천천히 쉬면서 걷다, 앉아있다 반복했다. 더워서 오리배를 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후쿠오카 성터에 올라가볼 수 있었는데 천수 등 건축물을 모두 없어지고 석축만 남아 있었다. 성 뒤쪽으로는 고로칸이라는 중국과 한국, 그리고 서양과의 교역을 위한 옛 기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있었다. 공원과 성터 보다 이런 역사 문화 유적이 내게는 더 흥미롭다. 우리나라는 아직일 수국이 흐드러진다.

한중일 삼국이 서로 교역하고 문화를 주고 받은 것은 아무리 짧게 잡아, 우리의 백제부터 셈한다 하여도 천오백년의 역사를 가진다. 그 안에는 중국의 다도를 일본이 수입하거나, 백제의 멸망을 막기 위해 일본이 한반도에 파병하거나, 조선의 문물을 전파하기 위해 에도, 현재의 도쿄에 통신사를 파견하는 등 교류와 협력의 역사도 있는 반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중일 전쟁과 같은 전쟁의 역사도 있다. 역사는 이렇게 이웃에 위치한 다른 나라의 영향을 배제한 체 우리 나라만을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연결 고리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 곧 우리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는 일본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속의 한국을 여행한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여행의 첫 날이라 너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여정이 12일이나 남아있다. 숙소까지 천천히 걸어가 한숨 푹 자고 저녁을 먹을 때 나와보기로 하였다. 어딜 가는 여행이던 이제 숙소 체크아웃 시점에 맞춰나와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저녁에 체크인 하는 일정은 불가능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어디에서는 앉아, 또는 누워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는 주로 신칸센 1등석에 앉아 등받이를 적당히 눕혀놓고 시속 260km의 휴식을 취했다. 여행 전 많은 여행기를 읽을 때 꼭 1등석(그린샤권) JR패스를 사라고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이유는 몸으로 체감했다.

딱히 각 도시나 지역의 이름난 음식을 먹지 않을 때면 구글 맵을 켜 근처의 라멘 집이나, 마쓰야, 요시노야, 나카우 등 돈부리, 카레, 돈까스 집을 찾아 끼니를 때웠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대학생 시절 일본에서 잠깐 살때는 300엔, 비싸도 500엔을 넘지 않았던 메뉴들이 이제 조금 만 고급진 메뉴를 먹으려면 900엔을 훌쩍 넘었다. 일본도 우리나라만큼 물가가 많이 올랐고, 또 현재도 오르고 있다. 들어가서 키오스크를 찾고, 읽을 수 있는 몇 가지 메뉴 중에 적당한 것을 골라, 현금을 넣고 결제한다. 출력되어 나오는 종이 중에 영수증 말고 메뉴와 번호가 적힌 것을 가지고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있는다. 번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종이를 들고 가서 메뉴를 받아온다.

저녁을 먹고 나니 약간은 다시 돌아다닐 기운이 생겼다. 나카스 지역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강 건너 섬 지역인 나카스에 가까워 질 수록 분위기가 바뀌어 빛, 소리 그리고 음식 냄새가 강렬해졌다. 강변에는 수많은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고 각각 다른 메뉴를 팔고 있었다. 앉아있거나 줄서있는 사람들의 상당 수는 서양인이거나 한국인으로 보였다.

일본의 대도시는 많은 경우 바다와 접해 있고, 커다란 강이 도시를 관통하여 흐른다. 후쿠오카의 경우 나카강과 미카사강이 흐르고 이 중 나카강이 나카스라는 섬을 만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나가사키, 쿠마모토, 히로시마, 나고야, 센다이, 삿뽀로 등이 이 공식을 따른다. 대도시 대부분이 태평양을 접해있는데, 우리나라 동해를 접한 유일한 대도시가 후쿠오카다. 추측이지만 따뜻한 태평양 쪽을 접해 있는 것이 어업이나 기후에서 더 살기 유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쪽 해안이 더 넓은 평야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뒤쪽 건물은 유흥업소로 보였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일본에도 3대 혹은 4대 유흥가가 있다는데 그 중 이번 여행에서 후쿠오카의 나카스, 삿포로의 스스키노, 센다이의 코쿠분초를 모두 방문했다. 저렴한 숙소를 찾다보니 이와 같은 환락가 주변이었던 것 같다. 나는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들었지만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나 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꽤 불쾌한 경험일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것이 좋겠다.

잠깐의 나들이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바로 잠들었다. 아침 3시 30분에 시작한 일정을 10시에 마무리 했으니 꽤나 빨빨 거리고 돌아다닌 셈이었다. 캡슐호텔의 캡슐에 누워서 이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40이 넘은 나이에 헝그리 배낭 여행이라니, 더 자고 쉬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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