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과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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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가격으로 두 잔의 커피를 사는 사람과 하루 밤을 사는 사람이 있다. 두 잔의 커피를 사는 사람들은 훤히 보이지만 하루 밤을 사는 사람은 도통 보이지를 않는다. 가난은 감춰야 하고 고상한 취향은 드러내야 한다.

같은 건물이지만 두 개의 다른 세상이 기묘하게 공존하면서 서로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세상은 2차원의 격자로 세상을 갈라 놓는것에 만족하지 않고 3차원의 계층으로 분리시킨다.  오직 돈 만이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이를 넘나들 수 있다.

돈이 무엇이고 부가 무엇인지 사실 잘 느껴지지 않는다. 부는 내가 만족하는 나의 삶의 모습으로, 간접적으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삶의 모습이, 내가 자랑하고 싶은 나의 커피가, 소유와 소비로서 증명된 내 삶의 가치가 어디서 왔는지 조금 더 곰곰히 생각해서 알 필요는 있다.

내가 마시는 커피가 위층 고시원에 사는 이들의 노동이 바탕이 되는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내가 누린 부는 누군가의 빈이다.

일상이 재미있을 수는 없을까?

왜 일상은 재미가 없을까?

하루하루 반복되는 것은 재미가 없다. 어른은 틈만 나면 일탈을 꿈꾼다. 반면 아이는 다르다. 아기를 관찰하면서 느낀 것인데 아기는 똑같은 놀이라도 지치지 않고 수십번이고 반복한다. 결국 돌보아주는 어른이 지쳐서 그만두거나, 아이가 졸려서 그만두게 된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며 어른들에게는 반복되는 무엇이 재미없게 된 것일까?

자세한 원인은 잘 모르겠다. 누군가가 연구했을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사람이 새로운 것을 추구할 때 얻는 보상이 매일 똑같은 것을 찾을 때 얻는 보상보다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경험을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해왔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곳에 도착했을 때 짜릿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 만족을 주는 것이 가까이에 있는 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이게 반대였으면 어땠을까? 매일매일 반복되고 똑같은 일을 해야 쾌감과 안정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다른 일을 하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면? 이미 이러한 사람은 세상에 있고, 이러한 사람을 정신질환자나 강박증 환자라고 부르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것은 없다. 다수가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뿐이다.

아마 여행이란 말은 끔찍하게 여겨 지고, 세계 일주를 보내는 것이 징역형이 아닐까? 옷의 디자인은 정밀하게 똑같은 옷을 계속 생산하는 것이 기술력과 디자인의 척도이고 유별난 옷은 배척 받을 것이다. 자동차, 철도, 비행기 산업은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TV는 조금도 새로운 시도도 하지 않고 매일매일 똑같은 음악과 뉴스를 계속 반복하겠지. 그래야 시청률이 높을 것이다.

일상이 재미 없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 왜 일상이 재미 없는지 정답을 찾아볼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