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씨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물론 그렇다는 것에 공감한다. 그래도 내 수준에서, 경제적 능력과 거주지 근처에서 웬만큼 다 돌아다니고, 먹어보고, 가보는 때가 온다. 오래 먹은 나이가 아닌, 내 나이 정도라도 심 봉사 눈 뜨게 만들 정도로 맛있는 것도 없고,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눈 비비며 하고 싶은 것도 없다. 내가 요즘 그렇고 내 주위 남들도 그렇다고 한다.
이런 잠재 심리적 무욕구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괜찮다. 따분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듣겠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증상이 조금 더 심각해지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할 때마다 과거에 해 봤던 것, 먹어 봤던 것, 즐기던 것과 자연스럽게 비교하면서 순수한 체험의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건 어쩌고, 저건 저쩌고 하면서 불평투성이의 평가를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공정한 비교도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 중에 고만고만한 것, 그저 그랬던 것은 선택적으로 모두 까먹어 버린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의 것을 뾰족하게 남은 “첫 키스의 강렬한 추억”과 같은 일생일대의 이벤트와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니 항상 불평과 불만이 9할이요, 1할 정도의 인정할 점을 겨우 찾는 평가가 되어버리고 만다. 1할의 인정 때문에 자신을 공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같이 있는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든다.
이런 노인들을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중년이 되고, 나이 들어가는 지금에야 나조차 그런 사람이 아닐까 두려워진다. 지금부터 조짐이 보이는데, 이래서야 나이 일흔이 되면 늘 불평투성이의 까탈스러운 노인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상상해 보면 내가 몸 불편하고 옛날 추억에 젖어 사는 일흔 살이 되면 세상에는 지금보다 더 마음에 안 드는 것 투성이일 것이다. 늘 옛날이 더 좋았고, 강렬했고, 행복했다고 현재는 과거의 모방이고, 어설프고, 품격이 없다고 말이다. 이 속도와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그렇게 될 것이 뻔하다. 상상하면 화들짝 놀라게 되고, 이것은 정말 그리고 싶지 않은 미래이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고민해 봤다. 많이 고민해보았다. 그런데 물이 흘러 골이 되는 것처럼 생각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건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단기 기억력이 감소하고, 얼굴 피부가 늘어지며 검어지는 것처럼 되돌릴 수 없다. 미래와 과거와의 시소 게임에서 과거가 무거워지면 과거가 늘 이기는 법이다.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늙어 가는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나의 생각을 들키지 않게, 흥이 깨지지 않게 잘 관리해보자. 이를 들키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척하는 것이다. 첫 번째는 이 물이, 이 생각이 흘러나가지 않게 둑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그 역할은 다행히 내 특기인 무거운 입이 해 줄 것이다. 두 번째는 무엇보다 현재가 중요하다고 집중하는 것이다. 정신이 과거, 혹은 미래로 날아가지 않게 현재에 집중해서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말만 조심스럽게 꺼내 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