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과 유한

아이를 키우다보면 가끔씩 무한한 기쁨의 순간이 찾아온다. 이는 나의 성취나 행운으로 느끼는 기쁨과는 확실히 다르다. 딱히 기쁠 이유가 없이 그 순간 나와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느껴지는 기쁨이다. 무한하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이 기쁨이 그 ‘존재’ 자체에 기인하기도 하고 또 그런 연유로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기쁨의 순간이 잦아들면 갑자기 걱정이 찾아오기도 한다. 이런 무한한 기쁨의 순간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유한한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아이 둘 중 하나의 존재가 사라지면(내가 그리 될 가능성이 크지만) 이 기쁨 또한 그 이후로 영원히 느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무한한 기쁨은 그 유한성을 전제로 하는구나. 무한한 기쁨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면 이는 아마 진정 ‘무한’한 기쁨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한함에 대하여

새로 이사온집, 그리고 내 방을 꾸미면서 침대를 어떻게 놓을 지 생각해봤다. 창문 옆이 좋았다. 지금까지는 천정만을 보고 잠들었는데, 이제 하늘을 보면서 잠들 수 있게 되었다. 하늘도 별이 촘촘히 박혀있는, 그런 하늘은 아니다. 아파트에서 나온 불빛들로 희뿌연 연기 같은 것이 잔뜩 낀 늘 흐린 하늘이었지만 그래도 그 하늘의 넘어에 있는 무한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바다나 하늘을 볼때 무한을 느낀다. 마주보고 있는 엘리베이터 안 거울 같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무한. 이것을 볼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은 틀림없이 우리 안에는 그와 닮은 어떤 무한함이 존재하고, 평소에는 이를 잊고 살다가 자연에서 이를 일깨워주는 어떤 것을 느끼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바로 그런 하늘과 닮은 무한함을 내 안에서 찾고 싶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가 유한하다는 절대 불변의 명제를 참이라고 생각하고 무한을 찾기 위한 용기 같은 것을 다 잃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 무엇이 “영원히” 가능할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그런 흥미를 가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