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배낭여행 2009 [5]

07.18


짤쯔부르크에서 혹한을 만나다.


설마 여름에 이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배낭 속에 든 옷 중 가장 두꺼운 것이라고는 얇은 홑겹의 아디다스 윈드브레이커뿐. 그나마 이마저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추위에 충분히 대비한다고 터질듯한 배낭안에 우겨넣고는 나의 철저한 준비성에 혼자 감탄했었다. 하지만, 예상치도 못하게 이 마저도 부족한 날씨였던 것이다. 전날 할슈타트에서 짤쯔부르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짤쯔부르크를 향해서 몰려오는 거대한 먹구름을 봤어도 이는 여름에 지나가는 소나기 정도 일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과는 다르니까 조금 더 심해봐야 강풍을 동반한다는 것 정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쌀쌀한 한기에 몸이 뻣뻣해졌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참하고서도 멍한 정신을 수습할 수 없었는데, 당장 하루 숙박 예정으로 체크인했기 때문에 부랴부랴 아침식사를 하고 또 짐을 싸서 나가야했다. 하지만 문 밖은 밤사이에 급속도로 온도가 떨어져 최소한 5도에서 10도 정도의 날씨인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비까지 부슬부슬 오는 상황이어서 선듯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이 들었다. 일단 식비를 아끼기 위해서 최대한 배불리 먹은 후 체크 아웃 시간에 간당간당해서 숙소를 나섰다. 오늘 밤 2시에나 도착하는 야간 열차를 타기까지는 아직도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또 너무 추웠다.


짤쯔부르크?


짤쯔부르크 최고의 관광상품은 무엇일까? 아마 여러가지 들수 있겠지만, 최고는 “모짜르트”라는데 많이 공감할 것이다. 모짜르트는 짤쯔부르크에서 태어났다. 향후에 활동 무대를 빈으로 옮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아직도 그의 생가 등 많은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하루동안 돌아보고 나서야 알게된 이야기 이고, 아침 나절에는 짤쯔부르크에 뭐가 있는지 뭐가 유명한지도 모른채 무작정 실내에서 둘러볼 수 있는 게 없을까 찾아 헤매면서 걸었다. 아니, 24시간 버스 이용권을 전날 구입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래, 성당안은 따뜻하겠지.


뭔지도 모를 건축물이, 그것도 오래되어 보이는 건축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광장에서 내려 아무곳이나 돈을 안내도 되는 성당을 찾아 들어갔다. 흐린 날씨에도 사람들은 어디서 이렇게 쏟아져 나왔는지 바글바글 했는데, 물론 난방같은 것은 있을 턱이 없고 바람만 막아 주는 것 만으로도 주님에게 감사하면서 웅웅대는 소리를 들으며 의자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사람이 몸이 녹인다, 추위에 몸이 언다. 2가지 상태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 3의 상태, 몸의 에너지를 필사적으로 쓰면서 더 추워지지도 더 더워지지도 않은채로 유지만 하는 상태가 있다는 것을 여기서 알았다. 이 성당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바로 그 상태였다. 이왕 얼어죽을거 용기를 내보기로 하고 성당을 나섰다. 기부금을 받고 있는 할머니의 시선이 꽃혔지만, 무시하고 그냥 걸어나왔다.


이 건축물 군집소 뒤쪽으로는 높다란 언덕 위에 성이 한채 서 있었다. 어제 숙소에서도 사진을 찍으러 나갔지만 실패하고 돌아온 이 성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는데 돈!을 내야했다. 아직 젊은 우리들은 걸어 올라가서 걸어 내려올수 있는 방법이 없나 찾아봤지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옛날 일본에서 에노시마를 방문했을때, 걸어올라가는 길 옆에 유료 에스컬레이터를 운영하는 걸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양쪽 옵션이 다 가능했었다. 이런 악랄한 오스트리안들!


일단 언덕배기가 너무 추웠기에 얼른 내려왔다. 이 이후의 일정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나는데, 너무 추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내려오는 길에 엽서를 하나 샀던 것 같고, No Kangaroo in Austria 라고 써진 티셔츠가 가지고 싶었다. 이왕 24시간 무료인거 버스를 타고 아무곳이나 갈데까지 가보자해서 종점을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이 많이 남았다.


동행은 아까 그 성에 미련이 남았나보다. 나는 그냥 안올라가보기를 원했고, 동행은 걸어서라도 올라갈 수 있는데까지 올라가보기를 원했기에 여기서 찢어지기로 했다. 이따 다시 역, 짐을 맡겨놓은 코인라커 앞에서 보기로 했다. 사실 너무 추워서 산을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허리도 심상치 않게 아팠다.


방금 우리가 피신했던 성당이 보인다


최악의 자연사 박물관


나는 너무 추워서 일단 가이드 북에 추천되어있는 자연사 박물관을 들어가기로 했다. 자연사 박물관이 뭐 별거 있겠어 라면서 가이드 북을 의심했지만, 꼭 보라는 추천이 있어서 비싼 돈을 주고, 게다가 줄까지 서가면서 입장을 했다. 줄 서 있는 외국인이 하나도 없을 때부터 뭔가 의심을 하고 나왔어야 했다. 온통 꼬마와 꼬마를 데리고 온 부모들 뿐이고 나처럼 배낭여행객이 이런 곳에 오는 것은 정말정말 드물었다. 전시되어 있는 내용도 전 세계에서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괜찮았을텐데, 그래보이는 것도 영. 어설프게 고개를 좌우로 휘젓는 선사시대 맷돼지 같은 것은 Made in China 일 것 같았다. 사실 여기서 한 2~3시간은 때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시간도 안되서 마지막 전시실까지 돌았음을 알고는 도대체 이제 더 무얼 봐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광장


낮이 되어 그나마 온도가 좀 올라가는 것 같았으므로 자연사 박물관 주위에 있는 무엇인가를 좀 둘러보기로 하고 관광지도를 펼쳐들었다.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가보고 싶은 것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광장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마에스트로의 이름을 딴 광장으로 “뭐 사실 별거 볼거 있겠어?” 했지만 그래도 가봤다, 안가봤다 차이는 있으니까. 게다가 남는게 시간이므로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 이름에 지명이 나와있다


예상대로 분수대가 하나 위치한 조그만 광장이었지만, 음악의 도시 짤쯔부르크에서 20세기의 위대한 지휘자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 도시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 정도면 세계에 자랑해도 된다. 내 똑딱이 카메라로 찍어서 시야가 좁게 나왔지만 저 뒤쪽의 단층 지형이 뭔가 케잌을 정교하게 썰어놓은 것 처럼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를 깎아서 터널을 만들어 놓기도 했는데,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동차가 다니기에는 너무 좁게 깎았다 싶은데다가 입구의 고풍스러운 조각 양식이 오래되어 보이기는 한다.


이런건 도대체 어떻게 깎아 만들었을까?


광장에서 다시 버스를 잡아 타고 넘실넘실 범람할 것 같은 강을 지나 미라벨 정원에 내렸다. 예전 초등학생때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적은 있지만, 그때 배경이 되었던 곳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리는 없고, 그냥 이 곳이 사운드 오브 뮤직을 촬영했던 곳이구나. 하는 명성만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햇살이 화창하고 꽃들도 만개하고 이슬이 초롱초롱하고, 뭔가 새들도 지저귀고 동상의 대리석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한다면 영화의 모습이 떠오를 수도 있겠으나. 내가 도착했을 때 광장의 모습은 질척질척대는 바닥에 들어가기도 꺼려지는 나름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진도 뭔가 구도가 나와야 찍을 만 할텐데, 마치 모짜르트 장례식이 그려지는 아마데우스의 한 장면 같은 날씨여서.


  몇 십 년 전에는 줄리 앤드류스가 뛰어 다녔다


원래 활짝 개인날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역시 이렇게 우중충하지 않다. 사진에 실망해서 방문을 안하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운이 없었던 거지. 하지만 17일간의 여행 내내 이렇게 날씨 때문에 애먹었던 것은 이때가 유일했다. 대부분 날씨는 화창하고 좋았으며 돌아다니기 괜찮은 화창한, 조금은 더운 날씨였다. 짐도 가볍게 꾸릴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여름이 여행다니기는 좋은 것 같다. 물론 선 블락을 엄청나게 사용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음악의 성지


미라벨 공원에서 기차역쪽으로 조금 걸어가다보면, 모짜르트 생가가 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위대한이나, 혹은 아름다운 곡을 작곡한이나, 존경할만한 작곡가라면 다른 사람의 이름이 거론 될 수 있겠지만, 천재적인 작곡가라는 것에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인물은 아직 이 사람이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가는 잘 보존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나는 안들어가봤다) 세계 각국에서 모짜르트의 팬들이 기부금을 보내 이 생가를 유지 발전시키고 각종 사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입구에는 기부금을 보내준 사람들의 명단이 쭉 적혀있는데, 일본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역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일본 다웠다.



모짜르트가 태어났다. 2층에서.


모짜르트 생가를 휙 둘러보고는 다시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해 버스를 타고 역으로 향했다. 역이라면 바람은 피할 수 있겠지. 아직 1시간이 남은 약속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역에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보고 역무원들을 보고 기차 시간표를 보고 코인라커에 짐을 맡기는 사람들을 보고 동양인이라면 더 유심히 보고 우리가 탈 열차는 언제쯤 도착할지 보고 나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일행이 합류하고 근처에 있는 대형 마트에 가서 저녁 요기 거리를 할 먹을 것 그리고 열차에서 간단히 먹을 것등을 샀다. 역시 유럽은 유제품, 맥주, 육류가 너무 저렴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이 나라만큼 육류가 싸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얼마나 행복할지에 대해서 상상했다. 우리나라는 먹을 거에 있어서는 정말 비싼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기초 생활 용품은 저렴하고, 고급 소비재는 비싼 형태가 되어야 복지 국가에 걸맞을 텐데.


노숙자 체험


이제 오늘의 하이라이트 역에서의 6시간 노숙이 남았다. 바람을 간신히 피할 수 있는 벤치에 앉아서 2시에 들어오는 기차를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딱히 둘러 볼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아는 곳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벤치에 앉아서, 혹은 운이 좋다면 누워서 6시간 정도야 금방 갈 줄 알았다. 하지만, 몸이 덜덜 떨리는 추위와 불편한 의자, 그리고 짐을 분실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한잠도 이룰수가 없었다. 더욱이 주위의 노숙자들은 어슬렁 어슬렁 다가와 담배를 달라고 청하고 따뜻한 대합실의 칸막이 공간은 그들이 점거해서 그 냄새 덕분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한번 담배를 주니 보이기만 하면 담배를 달라고 졸라대는 통에 멀찍이 도망가 있어야했다.


오스트리아면 깔끔하고 청결할 줄 알았는데, 역의 노숙자들이 많은 것은 어기다 거기나 같았다. 기차가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명했다면 주중에 어디 머물 공간을 마련해놓았을텐데, 후회는 소용없었다. 아마 이번 여행동안 가장 힘들고 고생했던 시간이 이 짧은 6시간이 아니었나 싶었다. 군에서 비박할때보다 2배는 더 힘들었다. 그만큼 도착한 열차의 6인용 쿠셋이 그렇게 달콤하고 따뜻한 공간이었다. 몸을 누이자 마자 잠에 빠져들어 헝가리로 향하는 덜컹거리는 열차 안에서 죽은듯이 잠들었다. 그렇게 노곤한 몸을 실은 열차는 국경을 넘어 여행의 2번째 나라에 도착했다.

동유럽 배낭여행 2009 [4]

07.17

할슈타트로 이동

  기차를 이용한 교통이 발달되었다고 하는 유럽이지만,  반면, 그 역사가 오래된 탓에 구질구질한 열차를 타야되는일도 많다. 그나마 오스트리아 열차들은 깔끔하고 청결했지만, 이후 동유럽에서 운행되는 열차들은 족히 내 나이는 되었을 듯한 열차들도 많았는데, 열심히 청소를 한다던가, 고장난 곳을 즉시 고쳐야 한다던가 하는 서비스의 개념도 별로 없어서 그냥 감수하고 타야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날 할슈타트로 이동하면서 탔던 열차는 마치 미래의 은하철도를 타는 듯한 최신식의 시설에 방금 출고 된듯한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창 밖으로의 멋진 광경과 더불어 이러한 여행이라면 하루 종일 열차만 타고 돌아다녀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사파리를 하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열차에서 환상적인 창밖 풍경을 감상하다

  할슈타트는 소금 광산을 위해 만들어진 조그만한 마을이다. 아무래도 바다를 접하지 않는 내륙지방에 위치한 오스트리아는 염전 같은 것이 없으므로 소금을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옛날 바다였던 지반이 융기해서 생긴 곳을 파고 들어가 마치 석탄을 캐내듯 소금 덩어리를 캐내는 방법으로 부족한 소금을 구했나보다. 이를 이 마을에서 배를 통해 주위의 대도시로 운반하고는 했다 한다. 마을의 광부를 위한 시설이나, 선착장을 운영하기 위해 생겨난 아주 조그만 마을인데, 워낙 주위의 높다란 산들의 경관이 뛰어나고 호수와 가까이 붙어있어서 다양한 경관을 한눈에 볼수 있는 인형같은 마을이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같은 것을 그리 신용하지는 않지만, 그런 곳에도 등록되어있다고 하고;

산과 물,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

  수많은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찾아들어 지금은 소금광산도 관광지로 변했고, 주위의 모든 집들이 다 민박, 호스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마을을 아기자기 하게 꾸미려는 노력도 한창이고 또한 한편으로는 활발하게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 너무 이곳 저곳에서 길을 보수하고 건물을 확장하고 하는 통에 시끄러운 공사장 소리로 번잡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관리된 부분이 많아 한번쯤 찾아와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보내기에는 적당한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짤츠부르크에서 빈을 향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 조금의 시간을 투자해서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곳에서는 호수 위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나, 산의 푸르름을 몸안에 가득 재충전 할 수 있다.

창문마다 잘 가꾸어진 꽃 

  높다란 건물 사이의 조그만 오솔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으면 조금씩 시간을 거꾸로 돌려 200년, 300년전의 만화영화에서 봤던 유럽의 모습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찾아간 날은 다행히 그리 무덥지 않아서, 조그만 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그렇게 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단, 코인락커 같은 기본적인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준비되어있지 않아서 무거운 짐을 끌고 간 경우 부담이 될 수 있겠다. 사실, 8시간 정도 머무를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식사를 하지 않거나 아주 간단하게 먹을 경우 2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돌아다닐 정도로 손바닥 보다 작은 마을이다. 마을 전체를 빙글빙글 2바퀴 정도 돌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기에, 호수 근처에 있는 벤치에 앉아 가만히 풍경을 보면서 시간을 죽이기도 했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소금광산까지 운행되는 듯한 케이블카도 보였다.

처음으로 등장한 내 사진

  이 곳에서 숙박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호스텔 보다는 민박, 즉 조식도 포함되고 비교적 비싼 가격을 형성하고 있어서 아침의 이곳 모습이나, 밤의 모습을 꼭 보고 싶지 않다면 그냥 근처의 빈이나, 짤즈부르크까지 가서 숙박을 잡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정말, 작은 마을이라 쉽게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배 편으로 마을로 들어가게 되는데 나오는 배 시간을 미리 확인해보고 마을을 돌아다니면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타워 크레인만 없었으면..

짤쯔부르크의 밤

  할슈타트에서 떠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밀 밭 사이를 열차로 한참 달려 짤쯔부르크에 도착했다. 빈에서 떠날때는 화창하고 따뜻했던 날씨가 짤쯔부르크에 도착하자 바람이 불고 비가 부슬부슬, 쌀쌀하게 변해있었다. 처음부터 빈에서의 숙소 이외에는 숙박을 하나도 잡지 않았기 때문에 짤쯔부르크 부터는 도착하는 도시에서 직접 숙박을 구해야 한다.

  우선 열차를 타고 도시에 도착하자 마자 인포메이션 센터에가서 도시의 호스텔들이 나와있는 관광지도를 구한다. 둘째로는 도시에서의 이동을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 관광도시들은 1day pass 라고 해서 하루동안 무료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팔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볼만도 하다.

  아무튼 짤쯔부르크에서 관광지도를 얻은 후 근처의 호스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행 책자에 추천되어있는 호스텔이 가까이 있어서 일단 찾아가 빈 방이 있는지 물었더니 No.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이었던 다른 호스텔에 찾아갔다. 무려 일박에 24유로나 하는 고가 였지만, 더 이상 호스텔을 돌아다닐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비싸도 눈물을 머금고 숙박을 결정했다. 캐밥으로 저녁을 때우고, 빈에서 짊어지고 왔던 밀린 세탁을 하고, 맛없는 맥주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더 이상 밤 늦게 말을 하거나, 걸어다니거나, 술을 마실 수 있는 체력상태가 아니었다. 일단 빈에서의 싸구려 메트리스 때문에 허리가 너무 아팠고, 낮에 배낭을 매고 이동한 상태여서 이미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내일은 짤쯔부르크를 샅샅히 살펴주마!

벽의 make new friends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나는 왜 동유럽으로 떠나는가?

  나는 참 집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학교와 직장들이 항상 집 주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데다 짜여진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하는 타입? 물론 일상을 내가 잘 정돈해서 변화시키는 것은 좋아하지만 여행처럼 내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나를 내버려두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싫어한다, 성향에 맞지 않는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떠나는 것에 대한 동경은 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더 늦으면 가지지 못할 유일한 기회와 마주쳤을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두가지 선택지 중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서 결론을 내기로 했다. 세계 지도에서 내가 가본 곳과 안가본 곳을 색칠할 것도 아니고 또 블로그에 카테고리를 더 만들고 싶어서도 아니고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할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나의 자연스러움을 거스르고 배낭을 매고 비행기를 타게 만들었다.

  나는 그 선택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잃을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젊으니까, 젊기 때문에 고작 손해보는 것은 시간과 돈 뿐이다. 얻는 것은 아직 미지의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고, 경험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것 인지는 순전히 나에게 달려있는 일이다. 일단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경험이라는 보따리 꾸러미를 짊어지고 돌아올 수 있기를, 또 지금의 두근거림이 여행하는 동안 꼭 그만큼의 뿌듯함으로 바뀌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