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과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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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가격으로 두 잔의 커피를 사는 사람과 하루 밤을 사는 사람이 있다. 두 잔의 커피를 사는 사람들은 훤히 보이지만 하루 밤을 사는 사람은 도통 보이지를 않는다. 가난은 감춰야 하고 고상한 취향은 드러내야 한다.

같은 건물이지만 두 개의 다른 세상이 기묘하게 공존하면서 서로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세상은 2차원의 격자로 세상을 갈라 놓는것에 만족하지 않고 3차원의 계층으로 분리시킨다.  오직 돈 만이 소리 없이, 보이지 않게 이를 넘나들 수 있다.

돈이 무엇이고 부가 무엇인지 사실 잘 느껴지지 않는다. 부는 내가 만족하는 나의 삶의 모습으로, 간접적으로만 확인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삶의 모습이, 내가 자랑하고 싶은 나의 커피가, 소유와 소비로서 증명된 내 삶의 가치가 어디서 왔는지 조금 더 곰곰히 생각해서 알 필요는 있다.

내가 마시는 커피가 위층 고시원에 사는 이들의 노동이 바탕이 되는 것처럼, 현대 사회에서 내가 누린 부는 누군가의 빈이다.

동유럽 배낭여행 2009 [3]

07.16

   빈(Wien)에서의 두번째 아침

   하루, 이틀 하고 말 여행이 아니라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되는 여행이라면 과욕은 금물이다. 먹는 것도 다르고, 자는 곳도 다르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거리도 다르고. 모든 것에 다 적응하느라 온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충분한 휴식 시간도 주지 않으면 병이 나기 마련이다. 아시아나 비행기가 얼마나 편한지 뼈져리게 느끼게 해준 오스트리아 항공에서의 불편한 좌석! 때문에, 허리가 안좋은 상태에서 첫날 무리를 했고, 또 18유로짜리 싸구려 유스호스텔의 더 싸구려 침대 때문에 기동력 50% 상태. 결국 계속 걸어다니던 여행을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여행으로 수정하고, 수면 시간을 충분히 잡았다. 첫날 6시에 나온 것과 달이 둘쨋 날은 9시에 집을 나섰다.

   쉔부른 궁전

   첫 행선지는 쉔부른 궁전이다. 전날에 옛날 궁전, 요즘 궁전, 높은 궁전, 낮은 궁전, 깨끗한 궁전, 지저분한 궁전, 궁전이라고는 지겹게 봤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궁전? 이번에는 넓은 궁전이다. 술래잡기를 말을 타고 해야할 정도로 넓고 깊은 숲이 우거져 있다. 여름에 방문하고, 숲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를 원한다면 꼭 모기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할 정도로 독한 모기들이 많다. 낯가림이 없는 다람쥐들이랑 조금 더 놀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모기들에게 피를 쪽쪽 빨린 미이라가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궁전 뒤쪽에는 이렇게 넒은 정원이!

   장기판의 궁 내부 모습처럼 궁전을 가운데 두고 8방으로 길이 나있는데, 뒤쪽으로 돌아가면 언덕 높은 곳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수 있고 가는 길 내내 아름다운 조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동물원도 있지만, 동물이야 만국 공통으로 굳이 여기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패스. 뭔가 역사적인 유래라던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 살았다는 것. 등의 사실을 쓰고 싶지만 너무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라 아는게 없다. 뒤쪽 언덕을 올라가면 오페라, 뮤지컬의 배경이 될 만한 건축물이 있고 그 곳에서는 빈 시내를 전부 조망할 수 있다. 어제 방문했던 슈테판 성당의 모습도 보인다.

나지막한 언덕이지만 평지로 이루어진 빈 시내를 전부 볼 수 있다.

   호이리게 언덕

   뭐든지 정리가 필요할때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양한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경치 뿐아니라 머리속의 잡다한 것들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쉔부른 궁전의 뒷동산에서도 가능했던 일이지만 조금 더 욕심이 났다. 다시 트램을 타고, 버스를 타고 포도 농장이 빽빽한 호이리게 언덕으로 향한다. 궁전을 걸어다니느라 피곤했지만, 그래도 언제 내릴지 모르는 정류장을 놓칠새라 눈을 부릅뜨고 트램을 탔다. 다행히 빵굽는 냄새 가득한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린다.

트램에서 내려서 버스를 환승

   햇빛은 살인적으로 뜨겁지만, 그늘만 찾는다면 서늘한 날씨다. 여행 내내 선크림을 제대로 챙겨바르지 못해 귀국할 때 쯤에는 소매 속의 살과 소매 밖의 살이 서로 선명한 경계를 두고 대비되고 있었다.  아니 사실 선크림을 제대로 챙겨 발랐다 할지라도 이런 햇빛을 막아내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기는 하다. 따가운 햇볕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드디어 올라탄다. 그나마 버스는 에어컨이 있구나. 오스트리아에서도 지하철, 트램은 기본적으로 에어컨이 없다. 이후 가게 되는 다른 나라들은 더욱 심하다. 다시 또 언덕을 구비구비, 어딘가를 또 들락날락해서 닿은 곳이 한층 더 높은 곳의 언덕. 우리나라에서는 산 축에는 못낄 정도의 큰 언덕이다. 다행히 좋은 날씨 덕택에 멀리까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기만 아니면 포도밭을 거닐어 볼텐데.

플라터 유원지

   사실, 오늘의 일정은 오전의 쉔부른 궁전, 오후의 호이리게 언덕, 그리고 저녁의 시청사에서의 필름 페스티벌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재촉하게하는 모기와 햇살때문에 오후 늦게 시간이 비어버렸다. 숙소로 돌아가 쉬기도 조금 빠른 시간. 결국 부랴부랴 가이드 북을 찾아 적당한 시간안에 방문할 수 있는 관광지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인연도 없이, 아무 의도도 없이 방문. 알고 있는 사전 정보도 없지만, 여행 후에 “나는 여기도 가봤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방문한 플라터 유원지다. 매우 오래된 유원지고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는 것 뿐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한낮의 유원지는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보다 호객꾼들의 외침이 더욱 컸다.

   

특이한 대관람차의 모양. 유명하단다.

시청에서의 필름 페스티벌

   빈까지 와서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못보고 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서 필름으로나마 만나보려고 했다. 여름이 되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빈 시민들은 이렇게 시청사 앞에 큰 스크린을 만들어놓고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것 같이 음악을 감상하는데, 근처에는 국제 음식 축제도 같이 열려서 다양한 국가에서 온 분들이 자국의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동남아, 일본의 음식은 있었지만, 한국의 음식은 없어서 아쉬웠다. 너무 비싼 가격에 다른 나라의 음식도 사서 먹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이 넘쳐났고 사실 관광객들을 위한다기 보다는 시민들의 부킹의 장이 되는듯.

자리를 맡으려 2시간이나 일찍 도착

   오늘의 레파토리는 모짜르트 특집이었는데,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플룻 협주곡레퀴엠이 상연되었다. 전자는 베를린 필과 카라얀의 협연이었고 후자는 빈 필과 역시 카라얀의 협연이었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꽤나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특히 한국 관광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내 자리 바로 앞에 앉은 분도 한국분이셨다. 공연 자체는 괜찮았지만 불편한 자리와 많은 사람들 그리고 숙소까지 돌아갈 교통편이 걱정되어 레퀴엠의 중간정도까지만 감상하고 나와서 숙소로 향했다. 이제 내일은 빈을 떠나 짤쯔부르크로 향하게 된다. 돌아오는 비행기 편에 빈 국제공항을 들르기는 하지만, 이제 빈은 안녕이다. 화려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보잉처럼 찬란한 음악의 도시에서의 밤은 모짜르트의 레퀴엠과 함께 마무리 했다. 언젠가는 꼭 빈에 다시와서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직접 관람해야겠다는 소망을 마음 속에 접어 넣었다.

25년 전의 공연이 다시 부활

동유럽 배낭여행 2009 [2]

07.14

   중국 북경국제공항 경유

   하늘은 뿌옇지만 생각보다는 날씨가 좋다. 흙먼지가 섞인 대륙의 냄새(?)가 난다. 약 2시간의 Transfer 시간. 생각보다 절차도 복잡하고, 시간이 소요된다. 또한 우리처럼 환승하는 승객들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간단한 영어도 통하고 생각보다는 느낌이 좋다. 생각지도 않은 기내식을 먹어서 인가보다. 이 공항은 새로 지은 건물인가? 깨끗하고 모든 것이 최신식이다. 체온이 조금씩 따뜻해지고, 열이난다. 새로운 공기와 기압에 적응하는 느낌이다. 기내에서는 가능한 따뜻하게, 편하게, 수면을 취해야겠다.

   탑승 시작

   좁다란 기내에 틀어박혀 있는 것 보다는 밖에서 최대한 스트레칭을 하고 공기를 들여마시고 나중에 들어가는 편이 좋다.

   울란바토르 상공

   기장이 방송으로 오른쪽으로 보이는 몽고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멋진 경치를 감상하라고 한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말라버린 초원 한가운데 있는 나지막한 도시의 풍경이 펼쳐진다. 보로딘의 음악 “중앙 아시아의 초원에서”가 생각난다. 비행기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먼거리를 짧은 시간에 갈 수 있어서. 혹은 그 속도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백년전까지 모든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해발 8800m가 넘는 ‘하늘’에서의 광경을 강인한 체력과 고통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겸손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이처럼 하늘에서 나와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지표면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까마득한 창공에서 수키로 떨어져있는 땅과 끝도없는 곳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면 나 이외의 다른 부분이 얼마나 거대한지, 그에 압도될 수 밖에 없다. 지상으로의 한계가 있는 View와 하늘로의 한계가 없는 View는 각기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빈 숙소 도착

   역시, 새로운 표지판과 언어, 그리고 건물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명백한 지도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숙소까지는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이미 밤이 되어 도착한 숙소의 풍경에는 하루가 저물어 버린 나지막함만이 남아 있었다.

07.15

   빈, 첫날의 아침

   아침 5시부터 일어나서 6시가 될락말락하는 시간부터 숙소를 나섰다. 비교적 도심 관광지에서 가까운 숙소 덕분에 약 15분 정도를 걸어가면 볼거리가 잔뜩 모여있는 중심시가에 도착할 수 있다.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 거리에 빵을 굽는 냄새와 전차의 종소리만이 가득 차 있었다.

   빈, 구왕궁, 신왕궁

   빈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합스부르크 왕조의 중심도시 답게 오랜 기간에 걸쳐서 증측, 신축된 왕궁들이 다양하게 남아있는데, 이를 돌아보는 것 만으로도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역사나 건축에 대해 조예가 깊다면 다양한 건축물들의 세밀한 차이에 집중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면 실제 궁궐의 방 몇개를 돌아볼 수 있는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빈, 슈테판 대성당

   빈은 구시가가 잘 보존되어있기는 하지만, 최신식의 건축물도 하나둘 들어서고 있는데, 오래된 성당 옆의 이러한 사이버틱한 건물은 수백년의 차이를 한눈에 느끼게 한다.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관광지로서의 가치는 문화의 탄탄한 기반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성당의 거대한 몸집에는 그 세월을 버텨온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화재와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그것이다. 눈으로 이들을 확인하고 건물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성당 특유의 경건함에 발소리마저 조심스럽게하고 살며시 사진을 찍었다.

  

   빈, 미술사 박물관

   왕궁의 하나를 미술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주로 1400년대 이후의 서양회화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왕조에 의해 수집된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도 볼 수 있다. 내부의 휘황찬란한 장식과 벽화들은 왕족들이 얼마나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살았는지 짐작케한다. 이러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남아있어서 이를 또 다른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루벤스의 그림이 여러점 전시되고 있고 이를 통해 그림의 거대한 크기와 내용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박물관을 빠르게 흝어 보았음에도 3시간이 넘는 관람시간이 소요됐다. 아침 일찍 나선탓에 오후 늦게부터 피로해져서 오늘 하루는 이를 마지막으로 숙소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