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배낭여행 2009 [3]

07.16

   빈(Wien)에서의 두번째 아침

   하루, 이틀 하고 말 여행이 아니라면, 적어도 일주일 이상되는 여행이라면 과욕은 금물이다. 먹는 것도 다르고, 자는 곳도 다르고,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거리도 다르고. 모든 것에 다 적응하느라 온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충분한 휴식 시간도 주지 않으면 병이 나기 마련이다. 아시아나 비행기가 얼마나 편한지 뼈져리게 느끼게 해준 오스트리아 항공에서의 불편한 좌석! 때문에, 허리가 안좋은 상태에서 첫날 무리를 했고, 또 18유로짜리 싸구려 유스호스텔의 더 싸구려 침대 때문에 기동력 50% 상태. 결국 계속 걸어다니던 여행을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여행으로 수정하고, 수면 시간을 충분히 잡았다. 첫날 6시에 나온 것과 달이 둘쨋 날은 9시에 집을 나섰다.

   쉔부른 궁전

   첫 행선지는 쉔부른 궁전이다. 전날에 옛날 궁전, 요즘 궁전, 높은 궁전, 낮은 궁전, 깨끗한 궁전, 지저분한 궁전, 궁전이라고는 지겹게 봤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궁전? 이번에는 넓은 궁전이다. 술래잡기를 말을 타고 해야할 정도로 넓고 깊은 숲이 우거져 있다. 여름에 방문하고, 숲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를 원한다면 꼭 모기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할 정도로 독한 모기들이 많다. 낯가림이 없는 다람쥐들이랑 조금 더 놀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지체했다가는 모기들에게 피를 쪽쪽 빨린 미이라가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궁전 뒤쪽에는 이렇게 넒은 정원이!

   장기판의 궁 내부 모습처럼 궁전을 가운데 두고 8방으로 길이 나있는데, 뒤쪽으로 돌아가면 언덕 높은 곳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볼수 있고 가는 길 내내 아름다운 조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오른쪽으로는 동물원도 있지만, 동물이야 만국 공통으로 굳이 여기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패스. 뭔가 역사적인 유래라던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 살았다는 것. 등의 사실을 쓰고 싶지만 너무 준비없이 떠난 여행이라 아는게 없다. 뒤쪽 언덕을 올라가면 오페라, 뮤지컬의 배경이 될 만한 건축물이 있고 그 곳에서는 빈 시내를 전부 조망할 수 있다. 어제 방문했던 슈테판 성당의 모습도 보인다.

나지막한 언덕이지만 평지로 이루어진 빈 시내를 전부 볼 수 있다.

   호이리게 언덕

   뭐든지 정리가 필요할때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양한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경치 뿐아니라 머리속의 잡다한 것들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물론 쉔부른 궁전의 뒷동산에서도 가능했던 일이지만 조금 더 욕심이 났다. 다시 트램을 타고, 버스를 타고 포도 농장이 빽빽한 호이리게 언덕으로 향한다. 궁전을 걸어다니느라 피곤했지만, 그래도 언제 내릴지 모르는 정류장을 놓칠새라 눈을 부릅뜨고 트램을 탔다. 다행히 빵굽는 냄새 가득한 마지막 정류장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린다.

트램에서 내려서 버스를 환승

   햇빛은 살인적으로 뜨겁지만, 그늘만 찾는다면 서늘한 날씨다. 여행 내내 선크림을 제대로 챙겨바르지 못해 귀국할 때 쯤에는 소매 속의 살과 소매 밖의 살이 서로 선명한 경계를 두고 대비되고 있었다.  아니 사실 선크림을 제대로 챙겨 발랐다 할지라도 이런 햇빛을 막아내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기는 하다. 따가운 햇볕에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려 드디어 올라탄다. 그나마 버스는 에어컨이 있구나. 오스트리아에서도 지하철, 트램은 기본적으로 에어컨이 없다. 이후 가게 되는 다른 나라들은 더욱 심하다. 다시 또 언덕을 구비구비, 어딘가를 또 들락날락해서 닿은 곳이 한층 더 높은 곳의 언덕. 우리나라에서는 산 축에는 못낄 정도의 큰 언덕이다. 다행히 좋은 날씨 덕택에 멀리까지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기만 아니면 포도밭을 거닐어 볼텐데.

플라터 유원지

   사실, 오늘의 일정은 오전의 쉔부른 궁전, 오후의 호이리게 언덕, 그리고 저녁의 시청사에서의 필름 페스티벌이 마지막이었다. 하지만, 걸음을 재촉하게하는 모기와 햇살때문에 오후 늦게 시간이 비어버렸다. 숙소로 돌아가 쉬기도 조금 빠른 시간. 결국 부랴부랴 가이드 북을 찾아 적당한 시간안에 방문할 수 있는 관광지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인연도 없이, 아무 의도도 없이 방문. 알고 있는 사전 정보도 없지만, 여행 후에 “나는 여기도 가봤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방문한 플라터 유원지다. 매우 오래된 유원지고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는 것 뿐 흥미로운 것은 없었다. 한낮의 유원지는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보다 호객꾼들의 외침이 더욱 컸다.

   

특이한 대관람차의 모양. 유명하단다.

시청에서의 필름 페스티벌

   빈까지 와서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못보고 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워서 필름으로나마 만나보려고 했다. 여름이 되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빈 시민들은 이렇게 시청사 앞에 큰 스크린을 만들어놓고 마치 영화를 관람하는 것 같이 음악을 감상하는데, 근처에는 국제 음식 축제도 같이 열려서 다양한 국가에서 온 분들이 자국의 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동남아, 일본의 음식은 있었지만, 한국의 음식은 없어서 아쉬웠다. 너무 비싼 가격에 다른 나라의 음식도 사서 먹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이 넘쳐났고 사실 관광객들을 위한다기 보다는 시민들의 부킹의 장이 되는듯.

자리를 맡으려 2시간이나 일찍 도착

   오늘의 레파토리는 모짜르트 특집이었는데, 자세히 기억은 안나지만 플룻 협주곡레퀴엠이 상연되었다. 전자는 베를린 필과 카라얀의 협연이었고 후자는 빈 필과 역시 카라얀의 협연이었다.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도 꽤나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특히 한국 관광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내 자리 바로 앞에 앉은 분도 한국분이셨다. 공연 자체는 괜찮았지만 불편한 자리와 많은 사람들 그리고 숙소까지 돌아갈 교통편이 걱정되어 레퀴엠의 중간정도까지만 감상하고 나와서 숙소로 향했다. 이제 내일은 빈을 떠나 짤쯔부르크로 향하게 된다. 돌아오는 비행기 편에 빈 국제공항을 들르기는 하지만, 이제 빈은 안녕이다. 화려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보잉처럼 찬란한 음악의 도시에서의 밤은 모짜르트의 레퀴엠과 함께 마무리 했다. 언젠가는 꼭 빈에 다시와서 빈 필하모닉의 공연을 직접 관람해야겠다는 소망을 마음 속에 접어 넣었다.

25년 전의 공연이 다시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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