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로와 아침식사


저는 아침 자명종 소리로 라벨의 ‘볼레로’를 들어요. 흔히 휴대폰 벨소리, 자명종 소리 같은 것들은 정각에 맞춰 온 에너지를 다해 나를 현실로 잡아 당기는데 반해서 ‘볼레로’는 시작은 부드럽게 연주되는 잠에 빠져 있을 때의 숨소리 같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심장을 쿵쾅거리게 해서 도저히 잠에 빠져 있을 수 없게 하거든요. 왠지 건강에도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마치 수영전의 준비운동처럼 말이죠. 하하하. 제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카라얀이 베를린 필과 연주한 1978년의 녹음이죠. 표지에 나와있는 카라얀의 헤어스타일은 아주 모던하고 멋지답니다.


아무튼 이렇게 부드러운 시작과 함께 잠에서 깨서 저는 화장실로 향합니다. 감미로운 몇 번의 프레이즈의 반복 동안에는 양치질을 하고, 약간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머리를 감고, 방으로 돌아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을 때면 어느덧 오케스트라는 그 정점을 향해서 맹렬하게 달려나가죠. 그리고 최후의 폭발이 있을 즈음에는 저는 식탁에 앉아서 간단하게 차려진 식사를 먹을 준비가 다 되어있지요. 다행스럽게도 다음 트랙이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인 관계로 저는 프랑스 귀족의 식사처럼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항상 맞추어져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런 아침을 맞이한지 3년 째이지만 조금도 이 패턴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입고 갈 옷을 고르기 위해서 망설이다가 ‘목신의 오후에 전주곡’이 나올 때까지 옷장 앞에서 머무른 적이 없었고, 이를 오래 닦거나 해서 쿵쾅거리는 팀파니 소리를 욕실에서 들어 본적도 없지요. 마치 엄격한 ‘볼레로’의 반복되는 리듬에 맞추어 저의 이 아침의 18분 동안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음악이 계속되면 시간도 흐르고, 음악이 멈추면 시간도 멈추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말이죠. 나의 삶을 외부적 요인에 의해 지배 당하는 것 처럼 느꼈습니다. 단순히 습관화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틈 없는 행동 모습이거든요. 이렇게 나선형으로 곡을 작곡한 라벨인 것인지, 18분의 플레이시간을 가지도록 지휘한 카라얀인 것인지, 아니면 다음 트랙으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선택한 EMI의 음반 기획자의 책임인 것인지.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생각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은 결국 네가 선택한 것 아니야?” 하면서 말이죠. 네, 맞습니다. 조금 시간을 들여 살짝 높은 곳으로 올라가 생각해보면 저 자신의 문제지요. 아마 CDP가 고장 나거나 하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질적으로 모든 것은 나 자신으로 귀납되는구나!”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고작해야 잠에서 일어나 17분 간의 시간에 대해서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었지만, 인생 전체를 이런 의문으로 포장하고 살고 있는 사람도 많이 본답니다. 자신의 인생을 항상 다른 사람의 행동의 결과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 이지요. 그리고 그들에게는 고장 낼 CDP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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