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방법

모델링(Modeling)

  모델링은 실제에 가까운 모형이다. ‘가까운’은 부정확함을 내포한다. 실제를 똑같이 복제할 수 없기에 모델링을 이용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추상적인 개념으로 모델링되고, 추상적인 개념은 우리 머리 속에서 어떤 상(象)으로 모델링 된다.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개념은 이 과정에서 반드시 단순화, 축약 된다. 따라서 우리 머리 속의 상(象)은 실제와 많은 차이가 있다.

실제

  모든 존재는 영원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떤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변치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은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금이다. 따라서 금은 변치 않는 사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실제의 많은 부분은 그 자체 뿐 아니라 다른 실제와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기도 한다. 금 거래소에서 금의 가치는 초 단위로 변한다.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첫 번째 이유는 위에서 말한 모델링의 과정에서 많은 단순화와 축약이 일어나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인식한 것은 이미 세상의 그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식한 것과 실제가 동일하다는 고집을 피울때 편견과 오해가 생긴다.

문제들

  내가 인식한 것과 세상이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세상을 내 나름대로 해석할 자유가 있다. 많은 노력과 투쟁을 거쳐 이를 말할 자유, 글로 작성할 자유, 이를 배포할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실제와 다른 인식대로 행동한다면 돈키호테가 겪은 문제가 일어난다.

  이분법(二分法)은 모델링의 오류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제를 둘로 쪼개서 생각한다. 좌파와 우파, 우리 나라와 남의 나라, 부자와 가난한자, 남자와 여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중간 어디쯤에 선을 긋고 이를 기준으로 좌우로 갈라 생각한다. 실제를 쉽고 빠르게 모델링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리고 대표적인 동물의 판단 방법이기도 하다. 얼룩말은 사자인지 친구인지 판단해서 도망가야 한다. 1초라도 느리면 잡아먹힐 확률은 그만큼 늘어난다. 인간도 본능적으로 이분법적 판단을 한다.

  대신 이분법은 복잡한 세계와는 잘 맞지 않는다. 우리는 연속적(continuous)인 세계에 산다. 세상을 둘로 쪼개는 것보다 다섯개, 백개로 쪼개는 것이 실제와 가까운 모델링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인식의 정밀함보다 빠른 판단과 간편함을 선택한다. 빠른 판단이 강요되는 현대에는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판단과 행동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만큼의 갈등과 오해를 감수 해야 한다.

  ‘꼰대’는 오래된 인식을 바뀐 세상에 강요할때 듣는 문제이다. 과거의 나의 삶과 현재 타인의 삶이 동일한 가치관에서 모델링 될 때 타인의 삶에서 잘못된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못마땅한 시선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한마디, 두마디 참견하기 시작하면 영락없는 꼰대가 된다. 다른 시대와 세상에서 살고 있는 타인의 삶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다른 세상의 다른 가치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춰버리면 내가 사는 세상이 좁아진다.

노력

  세상을 정확하게 알기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고된 일이다. 우선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이 중 오래되어 현재와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계속 바로 잡아야 한다. 세상을 보는 여러 시각을 익혀야 한다. 나의 인식과 세상이 다르면 모델을 다시 세워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식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고된 노력을 해서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한다고 해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본능은 이분법 같은 간단한 방법을 쓰라고 유혹한다. 이 정도의 엄밀성을 갖추려면 공부가 곧 업(業)인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좋은 방법이 있다. 우리는 비록 생업 전선에서 시간에 쫓기는 일을 하느라 정교한 모델링을 해볼 시간이 없지만 이미 누군가 우리를 위해 해놓았다. ‘책’ 속에 그것이 있다. 물론 책도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 무지에 바탕한 나의 판단보다는 나을 것이다. 책을 바탕으로 나만의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보상

  노력과 근면을 통해 세상을 보는 투명한 렌즈를 가지면 무엇이 좋은가?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의 가치를 높이고, 따라서 나의 가치를 높인다. 앞으로 지식인으로서 나의 가치는 내가 세운 모델이 실제와 같은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독창적인지에 따라 결정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본능이 아닌 나만의 독특한 판단이 중요해진다. 지적 활동이 사회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미래에는 특히 그렇다.

  지식 노동자의 가치는 기업 전체 역량의 기여도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똑같은 모델을 세우고 같은 입력에 따라 같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아무런 기여가 없는 것이다. 그 정확도는 나중에 판단하더라도 어떤 입력에 동일한 판단을 내리는 두 명이라면 기업에서 이 둘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본능이나 지식은 공유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상과 세상을 보는 모델은 공유되기 어렵다. 이는 단편적인 순간의 지식이 아니라 역학(力學)에 가깝기 때문이다. 공유되기 어려운 것은 따라하기 어려운 것이고 나의 독창성이 오랜기간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지식 노동자라는 말보다는 지혜 노동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도 세상을 정확하고 독특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델링’의 가장 큰 목적은 예측이다. 정확한 모델링은 정확한 예측을 가능하게 하며 따라서 잘못된 판단으로 초래한 실패와 비난을 줄여준다. 이는 모델을 발전시켜 나갈 새로운 기회와 시간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자신만의 독특한 주장이 옳은 것으로 입증되었을 때 보다 큰 희열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타인과 구분되는 자기의 주장, 자아를 입증하는 경험이 쌓이다보면 자신감, 확고함이 생기고 이를 통해 스스로의 시각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동력을 얻게 된다.

결론

  세상을 정확하게 인식하려는 노력해야 한다. 이는 시험에 통과한다던지, 단 한번 경험한다던지 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생 동안의 노력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노력이 바쁜 일상을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노력이 생존을 위해 사는 사람이나, 그 보다 높은 목표를 위해 사는 사람에게나, 누구에게나 현재보다는 더 발전된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의 시작점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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